현대 사회의 네이버후드와 커뮤니티

현대 사회의 네이버후드와 커뮤니티

구 자 문 한동대 교수
요즈음 로스앤젤레스 교외 소도시에 거주하고 있으면서 집안팎을 가꾸기도 하고, 주변을 산책하고, 가끔 아는 분들을 만나 커피도 한잔 하면서 미국과 한국에 대한 공통점과 다른 점 등 다양한 생각을 해 보게 된다. 필자가 사는 곳은 나름 잘 알려진 안전하고 학군 좋은 동네이지만, 주민들은 서로 교류하기 보다는 철저히 개인 생활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냥 동네 이름만으로 묶여져 있는 경우가 많다. 동네 이름이 주택가격을 결정하고, 나름의 보이지 않는 사회적인 지위를 나타내는 등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집에 머물고 있으면 아무도 참견하지 않고 평안하지만, 무엇 하나 사려 해도 차를 타고 외출해야 한다. 이웃끼리는 어쩌다 마주치면 ‘하이’ 인사할 뿐이다.

미국에서도 전통적 마을을 복원하려는 \’뉴어바니즘\’ 운동을 주택지 기획에 도입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고착화된 자동차 중심의 생활 양식과 철저한 개인주의 정서 때문에 도입이 쉽지 않다고 한다. 일부 부유층의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에서는 돈도 있고 시간도 있으니 함께 운동하고 파티도 하며 동네 네트워크를 유지한다지만, 대부분 시민들은 어느 정도 소득 높은 중산층이라 해도 집/자동차 유지와 각종 고정비용에 삶에 여유가 없어 이웃과의 네트워크가 단절된 경우가 많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 한국의 대도시는 물론이고 중소도시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본다,

과학기술과 사회가 크게 변하는 상황에서 현대도시 주택지를 전통적인 네이버후드 개념으로 기획할 이유가 있는가? 이는 현대 도시계획학과 주거사회학에서 가장 치열하게 논의되고 있는 핵심 쟁점이라고 본다. 전통사회와 현대사회의 요구되는 네이버후드가 크게 다르기에 전통적인 네이버후드 개념을 \’그대로\’ 복제하여 현대 주택지를 기획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효율적이지도 않다고 본다. 현대인은 물리적 거리가 아닌 과학기술과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시공간을 초월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 네이버후드는 장소 기반 공동체로서 물리적 공간(동네, 마을)에 귀속되었다. 이동 수단이 제한적이었기에 물리적으로 가까운 사람들과 경제, 문화, 치안을 함께 해결해야 했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지리적 운명 공동체\’였다. 하지만 현대의 네이버후드는 관심사 기반 공동체로서, 주민들은 스마트폰과 초고속 교통망 덕분에 물리적 이웃이 누구인지 몰라도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대신 SNS, 메신저, 플랫폼(당근마켓, 소모임 앱 등)을 통해 취향, 직업, 정치적 성향이 같은 사람들과 연결된다. 지리가 아닌 \’선택적 목적 공동체\’로 바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더 신경 써야 하는 현대의 네이버후드는 눈에 보이는 도로와 건물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인프라와 플랫폼 네트워크에 있다. 현대 도시계획은 전통적 이웃 관계를 복원하려는 향수에서 벗어나 다음 네트워크들을 주거지에 어떻게 심을지 더 고민해야 한다. 1) 플랫폼 및 라스트마일(Last-mile) 네트워크: 배달 앱, 쿠팡, 컬리 등 물류 네트워크가 현대인의 주거지 선택 기준을 바꾸고 있다. 주택지를 기획할 때 주민 간의 사랑방을 만드는 것보다, 택배차량 동선, 드론 배송 패드, 배달 오토바이 소음 차단, 자율주행 로봇 도로를 안전하게 설계하는 네트워크 컨트롤이 더 중요해졌다. 2) 에너지·모빌리티 공유 네트워크: 개별 주택이 고립된 것이 아니라, 마을 전체가 하나의 \’스마트 그리드(지능형 전력망)\’로 묶여 에너지를 주고받는 네트워크가 중요해졌다. 또한, 주차장 대신 전기차 충전 네트워크와 공유 킥보드/자율주행 셔틀이 연계되는 \’모빌리티 허브\’가 주택지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3) 하이퍼로컬(Hyper-local) 디지털 커뮤니티: 현대의 이웃은 골목길에서 만나 인사하지 않고, 동네 기반 앱에서 만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도시계획이 왜 여전히 전통적인 네이버후드 개념을 붙잡고 있는지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 이유는 1) 인간의 신체적 한계와 생존 유지: 디지털 네트워크가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은 여전히 \’물리적 몸\’을 가진 존재라서 집 주변에 걸어서 갈 수 있는 공원, 마트, 병원, 학교가 없다면 삶의 질은 급격히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현대적 네이버후드는 \’정서적 친밀함\’을 강요하기 위해서라기 보다 \’보행 가능한 최적의 생활 인프라 범위\’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된다고 할 수 있다. 2) 도시의 기후 변화 및 재난 회복력: 폭우, 지진, 블랙아웃 등 재난이 발생했을 때 디지털 네트워크는 순간적으로 마비될 수 있다. 이때 생존을 결정짓는 것은 결국 물리적으로 가까운 이웃과의 상호조력 시스템이다. 재난 발생시 멀리 있는 친구보다 동네 상권과 지역 방역망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3) 돌봄의 공백 메우기: 맞벌이 부부의 육아, 고령화 사회의 독거노인 돌봄은 온라인 네트워크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물리적 거주지 기반의 아동 돌봄 센터, 노인정 등 \’공간적 네이버후드\’가 있어야만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현대 도시의 주택지에서 전통적인 \’정서적 이웃 사촌\’을 기대하며 네이버후드를 기획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그러나 인간의 생존, 보행, 돌봄 등을 위한 \’물리적 최소 단위(Hardware)\’로서의 네이버후드는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여전히 유효하며, 그 안을 채우는 콘텐츠는 디지털, 물류, 에너지라는 \’현대적 네트워크(Software)\’로 정밀하게 제어해야 할 것이다. 즉, 전통적 네이버후드의 \’규모(Scale)\’는 가져가되, 그 작동 방식은 완전히 \’새로운 네트워크\’에 맡겨야 하는 것이다.

영남경제 2026년 8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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