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교외 촌락들을 돌아보며

오래된 교외 촌락들을 돌아보며
구 자 문 한동대 교수

  날도 더운데 아이스커피나 한잔하자고 한 동네친구가 자기 부동산 사무실로 초대를 해서 대충 일과를 마치고 들러보니 맛좋은 복숭아를 한박스 구했다며 여러 개를 봉투에 담아준다. 복숭아 몇 조각 맛을 보며 이 좋은 과일을 구한 곳이 어디냐고 묻기도 하다가 이왕 시간 내어 만났으니 과수원 있는 교외지역 동네들을 한바퀴 돌아보자고 의견을 모으게 되었다. 이곳 포항은 도농통합시로서 교외지역이 넓고 역사깊은 농촌마을들이 수없이 존재한다. 오래된 교외지역에 집터를 두어 개 보유한 지인을 초빙하여 셋이 차를 몰아 그 집터를 포함하여 오래된 농촌마을들을 여럿 둘러 보았다. 지난 25년여 이 도시에 살면서 교외마을들을 가끔은 들른다고 생각하는데 갈때마다 처음오는 듯 새로운 모습들이 발견되는 것 같다.

  이곳 흥해읍은 동해안 치고는 제법 넓은 들이 있는 곳이라 과거부터 많은 이들이 이곳 저곳에 여러 마을들을 이루고 살고 있었다. 이 흥해라는 이름은 1,100년전 고려 태조때 나타났지만, 이 마을들의 역사는 2,000년전 삼한시대까지 거슬러 갈 수 있는데, 최근 100년간은 영일군에 속하다가 1995년부터는 도농통합시인 포항시에 편입되어 있다. 이 흥해읍에는 덕장, 덕성, 용천, 금장, 남송 등 많은 마을들이 있다. 물론 인근에는 신광면, 청하면 등 면 소재지들이 있고 역시 수많은 소규모 마을들이 형성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농촌지역의 인구가 줄어들어 산간지역은 폐촌이 될 정도로 사람이 줄었지만 이 지역은 그래도 철강산업도시이자 항만도시인 포항시의 일부라서인지 아직도 많은 이들이 거주하고 있다고 본다.

  이들 지역마을들은 포항에서도 신도시이자 부도심에 해당하는 ‘장량동’처럼 격자형 도로에 고층아파트들이 즐비한 곳이 아니라, 지형 그대로 집을 짓고 살아오던 마을들로서 의외로 오래된 집들이 많고 길들도 좁고 꾸불꾸불하다. 이곳에 사는 이들도 다들 차들을 지니고 있고 운전해야 하기에 길들은 대부분 포장이 되어 있는데, 문제는 차 한 대 다닐 정도로 길이 좁다는 것이다. 차를 잠시 세울 공간도 없지만 마주치는 차량들이 어찌 서로 피해가야 할지 궁금하다. 과거에는 모두들 걸어 다니고 우마차만 있었으니 이러한 길이며 동네형태라도 사는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제대로된 현대식 상하수도가 없어도 우물이 있고 하수며 오수도 배출량이 적으니 도랑이나 둠벙을 통한 자연적인 정화작용에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이 부근에도 빌라형 주거단지가 지어지는 곳도 있고, 전망좋고 밭이 딸린 단독주택을 지어 이주하는 분들이 적지는 않아서 여기저기 토지정리 내지 토목공사가 진행되는 곳들이 많다. 하지만 우리가 이날 들른 곳은 분명 수백년 혹은 그 이상의 오랜 역사를 지닌 동네로 오래된 기와집도 있고 사당도 있는, 그러나 요즈음 새로 고쳐지은 집들도 있는 수십가구 이상이 모여있는 동네인데, 도랑 옆으로 포장된 도로가 차 한대 경우 다닐 정도라서 매우 위험해 보인다. 이곳 사는 이들은 문제없다고 이야기하고 실제 그럴 수 있다고 보나 주변에 익숙하지 못한 외부인이 운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동네들을 주제로 학생들과 좀 더 연구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작은 마을들의 역사는 어떠하며 어떠한 설화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가? 이러한 마을들을 어떻게 보전하고 사는 이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인가? 포항시 홈페이지나 포항시사를 들여다 보아도 마을의 내력이라는 곳에 한두줄 짧게 어떤 동네와 어떤 동네가 1914년 합해져 이름이 무엇으로 바뀌었다 정도의 언급만 있을 뿐이라 안타까움이 크다.  

  바삐 살아가는 직업을 지닌 현대인들이, 비록 지역에 관심 많은 학자라 할지라도 이러한 연구, 아니 연구라기 보다 개인 취미의 자료를 얻으려 해도 시간을 여유롭게 가지고 차는 멀찌감치 세워두고 배낭에 중절모 쓰고 등산지팡이라고 짚고 동네도 돌아보고, 사진도 찍고, 동네분들과 이야기도 해보며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다. 아무도 이러한 동네들에 관심을 갖지는 않을 것인데, 한가지 생각 나는게 있다. 몇 년전 도시재생사업 심의를 할 때 돋보이던 ‘우각리마을’이 떠오른다. 그때 발표자는 그 지역에 터를 잡아 귀촌한 여성분으로서 그곳의 이야기를 모으고 그 동네사람들과 모임을 만들어 그 지역의 역사 및 활동에 관한 책도 펴내는 것을 보았다. 이러한 분들이 마을에 있으면 그래도 나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일년에 한두번 있는 도시재생사업/마을가꾸기사업들이 모든 이에게 보조를 해줄 수는 없지만 지역의 역사와 발전방향을 그래도 정립해 나갈 계기를 마련해주는 게 아닌가 싶다.
  
  이러한 역사적인 마을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길도 넓어지고 주차장도 생겨난다면 그리고 이를 계기로 좀 더 많은 이들이 주거지에 투자하게 된다면 현대적인 모습의 교외마을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니까. 그렇지 못하다면 대부분의 마을들은 거주자가 줄고 낙후되고 버려지고 헐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두를 통해 얼마 남지 않은 역사적인 모습의 마을들이 다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역사적인 모습을 보전하면서도 이곳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은 없는 것인가? 길을 꼭 넓히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찾아들고, 주택에 투자하더라도 나름대로의 디자인 가이드라인에 맞춰 투자되어 역사적인 마을의 모습을 간직할 방법은 없는 것인가?

영남경제 2021년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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