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마이카유닉, 자몽, 오렌지, 그리고 한 에피소드

Jamaica Unique, Grape Fruit, Orange, and An Episode

   엇그제 그로서리(Grocery)에 갔었는데, 웬 커다란 쭈굴텡이 과일이 진열되어 있어, 무엇인가 봤더니 자마이카유닉(Jamaica Unique)이라는데, 맛은 그레이프후릇(Grape Fruit, 한국말로는 자몽)과 비슷하다고 했다.  크기는 자몽보다 조금 더 커 보였으나 바람빠진 풍선 마냥 흐물쭈굴했고, 껍질은 연두섞인 연한 노랑인데 불독(Bull Dog) 주둥이 마냥 주름 투성이였다.  과일 천지인 이곳에서 이렇게 못생긴 것을 맛도 별 다를 바 없는 것을 왜 수입해왔을까?

   내가 그레이프후릇을 처음 맛 보았을때는 한국말로 자몽이라는 단어가 없을 때였는데, 난 그레이프후릇과 포도(Grape)를 곧잘 혼동하였다.  웬게 그리 씁쓸한지 별로 익숙하지 못하였는데,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과일 중 하나가 되었다.  껍질을 까서 그 주홍색 물씬한 조각을 한입에 넣어보시라.  예전에는 윗 부분을 잘라내고 그 속에 꿀을 한 두 스푼 넣고 숟갈로 퍼 먹은 적도 있었다.  제각기 식성대로 먹을 것이지마는, 이 그레이프후릇을 특히 운동 후 한 조각 입에 넣어 보면, 그 시원함과 청량감… 이 자몽도 종류가 여럿이다. 오렌지 빛 나는 자몽, 노란빛 나는 더욱 커다란 자몽, 못생긴 자마이카유닉…

   레몬(Lemon)도 자몽과 비슷하지.  우리 어릴 때 화분에 키우던 미깡나무, 기억나니?  참 보기 좋았잖아.  여름이면 미깡열매가 내 주먹보다도 더 큰게 너덧개나 노랗게 열렸었잖아.  지금은 집 뒷뜰에 수 십년 묵은 미깡, 아니 레몬나무가 사시사철 그 크고 노란 열매를 100개씩이나 매달고 있단다.  아직 라임(Lime)과 레몬 맛을 구별 못하는데, 라임은 덜 익은 것처럼 껍질이 진한초록색이지.  레몬과 라임, 모두가 냉수에 즙을 짜서 먹기도 하고, 얇게 조각내어 물잔테두리에 끼워놓기도 하지… 어떤땐 좀더 진하게 즙을 내어 레모네이드(Lemonade)를 만들기도 하고… 미국사람들은 생선을 찌거나 구우면 그 위에 꼭 레몬이나 라임즙을 뿌리잖아..

   이러한 레몬 비슷한게 우리나라의 탱자지.  지금은 별로 없지만 우리 어릴땐 담장에 뒷뜰에 참 많았었지.  노란게 탁구공만한게 열리면, 하나 따서 맛을 보면 너무 시어서 입을 얼굴을 찡그리곤 했었잖아.  씨는 커다란게 왜 그리 많던지.  지금은 우리나라 제주도는 물론 남쪽지방에서 감귤을 키우는데, 영어로는 탠저린(Tangerine)이라고 해서 미국사람들도 좋아한단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과일의 왕은 오렌지(Orange). 그 황금빛 열매.  한 개 따서 한입 베어 물어봐. 그 산뜻달콤풍성한 맛…

   우린 오렌지를 모르고 자랐지만, 서양사람들은 그 오렌지 나무아래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사랑을 속삭이고, 그 오렌지 빛에 오렌지 맛에 세상을 살았단다.  그 오렌지 향기가 바람에 날릴 때는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초봄일텐데, 노소 구별없이 옛추억의 감미로움에 취하곤 하는거야.  모두가 시인이 되고 자연주의자가 되는거지…

   우린 무엇을 회상하며 옛추억의 감미로움에 취해야 하는거지?  젊은시절 다같이 우르르 몰려다니던 호프집의 생맥주잔에서?  아니면 좀더 최근의 연탄숯불구이집 소주백세주한잔에서?  ‘자기야, 우리도 오래잖아 늙어 죽을거야.  우린 땅에 묻혀 곧 흙으로 변할거야.  먼 훗날 1000년후에나 도기장이가 그 흙으로 술잔을 만들텐데… 그 술잔을 마주치며 사랑을 속삭일 그 젊은이들, 우리들의 사연을 단 한편의 에피소드(Episode)로라도 기억이나 해줄까?’  

  하지만 우리 서글픔에 잠길 때가 아니야.  아직은 젊잖아?  지금도 추억거리, 아니 추억 만들 재료들은 주위에 아주 많잖아?  탱자, 레몬, 탠저린, 오렌지, 자몽, 그리고 그 유별난 자마이카유닉까지 기억하고 있잖아.  호프집숯불구이집 치킨조각, 주물럭에도 레몬즙, 라임즙 양념삼아 뿌려가면서, 가끔은 분위기나는 카페레스토랑에서 상큼한 오렌지, 자몽, 때로는 자마이카유닉 한조각 맛보다보면, 10년 20년후, 추억거린 생각보다 많이 모아질거야.  어쩜 한 개의 에피소드는 1000년후 기억될 감미로움일지도 모르지…

(구자문, 아시아위클리, May 2002)


코멘트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