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마켓의 김치
구 자 문 한동대 교수
우리 한국인들은 김치를 즐긴다. 아무리 음식이 좋아도 식사 때 김치가 없으면 속이 답답하고 먹은 것 같지 않다고들 말한다. 이는 필자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에 와서 스테이크, 파스타, 샌드위치, 야채 샐러드 등을 한두끼는 먹을 수 있지만 하루이틀 안에 김치와 밥을 먹지 않으면 어딘가 불편해진다. 지금도 어릴 때 어머니께서 김장하시는 모습, 그리고 평소에도 김치 담그시던 모습이 자주 떠올려진다. 우리 집은 부모님이 매운 음식을 잘 드시지 않으셨기에, 김치도 좀 싱겁고, 백김치나 나박김치 등이 주된 메뉴였다.
그러나 형제자매들이 자라나며, 매운 김치에 맛을 들이게 되고, 지금은 백김치보다 일반 매운 김치를 좋아하게 되었다. 지난 40년간 마트에서 병김치를 주로 사다 먹은 것은 김치 담그기가 좀 번거롭기도 하지만, 다양한 김치들이 미국에서도 비싸지 않게 팔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마켓에 가면 10종류도 넘는 브랜드의 김치들이 진열되어 있고 트레이더 조스 등 미국마켓들에도 한두종류 진열되어 있다. 필자는 한국에서는 크게 맵고 짜지 않은 종갓집 김치를, 미국에서는 오씨네 김치를 자주 사먹는다. 이 브랜드들이 좀 덜 맵고 순한 맛이라서 필자의 입맛에 맞기 때문이다.
필자가 미국에 온 19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미국인들에게 ‘김치-심한 냄새-한국인’이라고 단정 지을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다. 1980년대 후반쯤 필자가 박사과정을 다 마칠 때쯤, 그때 우리 집은 김치를 사먹기도 하고 직접 담가먹기도 할때였는데, 교수와 학생들 식사 모임이 한 교수님 댁에서 있다해서 김치 한통을 들고 갔었다. 그런데 이것이 히트를 친 것이다. 그후 교수님들이 필자와 마주치면 다음에도 김치를 가져오겠냐고 물었다. 김치의 가능성을 발견한 순간들이었다. 학생들은 다들 빈손으로 오는데 무언가 하나 들고 갔다는게 기특하기도 했겠지만, 정말 교수님들이 김치를 즐겼던 것이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김치가 세계에 잘 알려지게 되었다. 일본인들은 자기들의 기무치 보다 한국 김치와 김치찌개를 더 좋아한다. 중국인이나 동남아시아인들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물론 우리 한국인들 같이 어릴 때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김치를 먹거나 김치를 큰 통으로 구입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미국인들이나 유럽인들도 김치를 잘 알지만, 어쩌다 불고기 등과 함께 먹는 별식이라고 보면 된다. 요즈음 김치가 중국이 원조라고 주장하는 중국인들이 없지 않지만, 이들은 우리처럼 김치를 잘 알고 매일 먹는 사람들이 아니다. 물론 비슷한 음식들이 중국 어딘가에 있을 수 있겠지만, 각자 다른 방식으로 발전되어 왔기에 역사서를 들먹이며 어디가 원조다 주장함은 넌센스이다. 물론 우리나라가 고려 때 중화사상에 매몰되어 김치가 중국에서 전수된 것이라는 기록을 역사서에 남긴 것은 참 부끄러운 일이다. 물론 김치만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어찌된 일인지 고려 이전의 역사서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사대사상에 매몰된 삼국사기 정도가 최초의 기록임이 아쉽다. 중국이나 일본의 오랜 기록들을 보고 짐작해보면 우리 삼한에 김치가 존재하고 있었다.
사람은 비타민이나 무기질이 풍부한 채소섭취가 필요한데, 겨울이 긴 우리나라에서 채소를 소금에 절이거나 장/초/향신료 등과 섞어서 새로운 맛과 향기를 생성시키면서 저장법을 개발하게 되었다. 이렇게 개발된 것이 김치이다. 즉 소금에 절인 채소에 소금물을 붓거나 소금을 뿌리고, 이것은 숙성되면서 채소 속의 수분이 빠져나오고 채소 자체는 채소 국물에 침지(沈漬)된다. 여기서 우리 고유의 명칭 침채가 생겨난 것이다. 박갑수(朴甲秀)는 침채가 팀채가 되고, 이것이 딤채로 변하고, 딤채는 구개음화하여 김채가 되었으며, 다시 구개음화의 역현상이 일어나서 김치가 된 것이라고 풀이하였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중국이 김치의 원조라고 주장하는 ‘저’는 김치의 직접적인 기원이 아니라 \’원시형 채소절임\’에 해당한다.
일본의 ‘고사기(古事記)’에 의하면 오진왕[應仁王] 때 백제사람 수수보리가 누룩으로 술 빚는 방법을 가르쳤다는 기록이 있다. 이에 예측컨대, 백제에는 누룩으로 술만이 아니라 김치도 담그고 식용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백제에서뿐만 아니라 삼국 모두가 같은 상황이었을 것이다. 조선시대 중엽에 들어와서 고추가 수입되면서 우리나라 김치에는 일대 혁명이 일어난다. 이러한 우리나라 김치는 중국에도 전해졌다. 1712년(숙종 38년) 김창업(金昌業)의 ‘연행일기(燕行日記)’에는 “우리나라에서 귀화한 노파가 그곳에서 김치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녀가 만든 동치미 맛은 서울 것과 같다.”는 내용이 있다. 또한 1803년(순조 3년) ‘계산기정(薊山紀程)’에 의하면 “통관(通官)집의 김치는 우리나라 김치 만드는 법을 모방하여 맛이 꽤 좋다.”고 하였다. 18세기에는 우리의 김치가 중국에 건너가서 인기를 얻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근대 및 현대의 김치 변화의 주된 요인은 김치 재료의 품종개량과 젓갈 및 조리법의 일반화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각 지방의 기후와 기호에 맞던 수많은 종류의 김치들은 사라지고 있으나, 현대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김치들이 새로 태어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바쁜 미국생활 때문이기도 하고 김치 담그는 법을 몰라서인지, 미국에 있는 한국그로서리에는 한국의 어느 대형 매장보다 김치의 종류가 많다. 3Kg 대형 통김치가 $16~20, 1.5kg 통김치는 $8~10이니, 다른 식품들에 비해 크게 저렴한 편이다. 요즈음은 미국에 와도 김치와 햇반만 있으면 음식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참 미국 살기도 여행하기도 편해진 것 같다.
대경일보 2025년 5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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