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해외 동포들은 누구인가?
구 자 문 한동대 교수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통해 그 나라를 알게 되기도 했지만, 그곳 주지사중 한명이 Kim이라는 성을 가진 한국인 2세라는 사실이 매우 반가웠다. 진작 고려인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동포들이 구 소비에트연방공화국(소련)지역에 살고 있음을 알았지만,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으로 어려운 때에 한 동포가 젊은 나이에 그곳 주지사의 직무를 맞고 있고 차기 대통령 후보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말을 듣고 대견하고 기쁘기도 했다. 고려인들은 1930년대 까지만 해도 두만강/연해주 지역에 거주하던 우리 동포들이었는데, 그곳에 살던 이유는 이 지역이 한국인들이 우리 땅으로 생각하고 오래전부터 살던 지역이었고, 일제탄압에 못이겨 한반도를 떠나 피난해 살던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련의 최고 권력자 스탈린이 일본 스파이들과 비슷하게 생겨 보인다는 핑계를 내세워 1937년 9월 나름 세력을 구축하고 있던 한인 지도자급 2,000명을 처형하고 나머지 한인 172,000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킨 것이다. 그 당시 열차에 실려가고 낯선 곳에 내팽겨쳐져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고 일부가 힘들게 살아남아 고려인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이들은 움막을 짓고 가져간 볍씨로 농사를 지어 이 지역이 소련에서 쌀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지역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지금도 카자흐스탄의 곡창지대가 되어 있다. 이들은 열심히 일했고 자녀교육에도 힘을 쏟아 카자흐스탄지역에서만도 전체 고려인의 35%가 대학졸업장을 지니고 있고, 노동영웅칭호를 받은 이가 67명, 산업/건축/문화/교육 등에 걸친 분야에 명예노동자칭호를 받은 분이 1,156명, 그리고 대기업 CEO 중 많은 이들이 고려인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많은 고려인들이 이들 독립된 국가들에서 시민권을 받지 못하고 쫓겨나 러시아로 가게 되었는데, 이들 중 일부는 모스크바 등 러시아의 대도시에 자리잡아 살고 있고, 일부는 선조들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블라디보스톡이 있는 연해주까지 오게 되었다. 물론 아직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에 남아 있는 이들도 있고, 이번에 보는 것처럼 우크라이나에도 남아 있는 것인데, 여러 여건으로 인해 무국적자가 10%에 이르고 이들 대부분이 극빈자라는 것이다.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역사도 그리 만만치 않게 어려웠었다. 이들 중 1917년 러시아 공산혁명 이후 숙청된 이들도 많았고, 쫓겨서 동부 시베리아로 이주하거나 추후 스탈린에 의해 강제로 옮겨진 이들도 많았다. 그들 중에는 유태인들도 많이 포함되었겠지만, 우크라이나 사람들도 상당수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이때 특기할 사항은 그들이 낯선 땅에서 그 지역 한국동포들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1922년 러시아 적백내전때는 백군난민 5,000여명이 선박을 통해 원산에 피난·상륙했었다. 이들은 적대적인 일본수용소에서 힘들게 지내다 대부분 미국 등 다른 나라로 이동하거나 추후 소련으로 송환되었는데, 일부는 한국에 남았다고 한다. 포항의 한 지인이 연해주 하산에서 농장을 경영하며 수시로 일군들을 모집하는데, 그중에는 고려인들도 있다고 한다. 이들은 재산 없이 그곳으로 돌아와 아주 허름한 집에 가난하게 사는데, 이러한 농장의 일용직 고용이나마 이들의 삶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러시아 극동의 농민들이 대체적으로 가난하지만, 이들 고려인들은 나라를 잃고 이국땅 이곳저곳 떠돌며 더욱 어렵게 살아왔는데, 지금까지도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례만이 아니라 세계에는 우리 동포들의 어렵던 사연들이 널려있다. 한동안 KBS에서 방영하는 브라질, 멕시코, 쿠바 등 라틴아메리카의 우리 동포들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을 보았던 적이 있고, 중국과 러시아의 동포들의 이야기도 자주 들어 보았다. 필자가 자주 가는 미국에는 대도시에 코리아타운이 크게 자리잡고 있고 언어문제, 인종차별 등 어려움 하에서도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자녀들을 잘 가르쳐 내는 동포들이 많다. 이는 브라질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일본에도 많은 우리 동포들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크게 성공한 이들이 많이 있다. 물론 아직 차별의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세월이 바뀌고 조국이 크게 발전함에 따라 살아가기가 좀 더 편해진 것 같다. 하지만 20세기초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있다가 멕시코나 쿠바로 갔던 동포들은 아직도 어려움 속에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 하나 가슴 아픈 사연은 남태평양 ‘티니안 섬’에 살고 있는 일제 강점기 노무자로 끌려갔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우리 한국인들과 거기에 살아가고 있는 자손들이다. 이들은 원주민 여성들과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았고 아직도 King(Kim), Sin 등 한국계 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또한 한국인으로서 발전된 한국에 대한 자랑과 그리움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 한국은 강대국에 둘러싸인 약소국으로 갖은 침략과 수모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금은 발전된 나라로 변모되었다. 하지만 작은 한반도 안에 분단된 국토를 지니고 있으며, 인구 또한 줄어드는 추세에 있다. 이럴 때 우리도 이스라엘 같이, 하다못해 중국인들 같이 강한 해외동포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면 좀 더 안정되게 외교, 경제산업, 이민정책 등을 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가끔 인터넷상에서 해외동포들을 ‘한국계’라고 칭하는 것 조차 싫어하는 분들을 보지만, 이제는 그러지 말고 우리의 동포범위를 좀 더 폭넓게 하여 전세계적인 강력한 한민족 네트워크를 구성해 나감이 좋을 것 같다. 더구나 구 소련과 태평양 등지에서 고생하는 동포들은 좀 더 도와주고 원한다면 한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대경일보 2022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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