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평양에는 별이 많구나!”
“아니 남쪽에는 별이 업습네까?”
도저히 이곳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서울을 이해할 방법이 없다.
조심스럽게 대통력 탄핵에 대한 남쪽 사람들의 반응을 물어온다. 짓궂은 생각에 우리 정치 판에 대하여 심하게 비판을 하여본다. 대한민국 국민은 이렇게 정권이나 정부 또는 정치인들을 비판할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줄 심산으로 약간의 오버를 하는데 이 사람들 표정이 그게 아니다. 오히려 측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 볼 때 면, ‘아! 너무나 멀리 있구나… 진짜 전혀 다른 세상, 다른 체계, 다른 판, 다른 Paradigm에서 전혀 다른 사고를 하는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낀다.
평양에 다녀오면 한참동안 기분이 언짢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망가질 수 있을까? 일부러 망가지려고 작정을 해도 그렇게 까지 될 수 없을 것 같다. 한국에서 지어준 공장이 백 개를 훨씬 상회한다는데 그 중 단 한 개의 공장도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단다. 일부러 안 돌아가는 공장을 만들어 주었다는 오해도 할만하다. 2년 전에 들은 이야기다, 그 후에도 많은 공장이 지어졌으리라…
내가 처음 평양을 방문한 것은 2002년 5월이었다. 그 해 초 우리회사 각국 사장들에게 이왕이면 북한을 도와 달라는 부탁 편지에 Braun회장이 관심을 보이며, 금방 백만 유러 어치의 각종 영양 수액과 의료 용품들이 모아져, 북한으로 보내기 위하여 중국 대련으로 보내졌다. 정식으로 물품들을 인도해 주기 위하여 북한 방문을 계획했으나, 일정이 다되었는데도 물품을 대련에서 남포로 실어 나르지 못하고 있었다. 방문을 연기하고 한참을 기다리던 중, EU 상공회의소에서 유럽회사를 대상으로 주한외국인 북한 산업시찰단을 모으고 있어 같이 합류하기로 하였다. 남쪽에서의 방문단의 공식목적은 산업 시찰이었고, 북쪽의 속뜻은 ‘월드컵’을 희석 시키기 위하여 준비한 아리랑축제를 관람시키는 것 이었다. 물품은 대련에 도착한지가 이미 달 반이 넘기고 있었으나, 나의 방문 기간이 끝날 때 까지 끝내 남포로 실어오지 못하였다. 그 후로 그 물품이 어떻게 쓰여졌는지 들은 바 없고, 공식적인 감사의 편지 한 통 받아본 적이 없다.
평야에서는 ‘링거’라 불리 우는 영양 수액이 호텔 내 상점 한가운데 버젓이 진열되어 팔리고 있다. 주변에 몸이 불편한 사람이 생기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어떻게 해서든 수액을 확보하는 것이다. 충분치 못한 영양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영양 수액은 만병통치 약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5, 60년도에 경험했던 일이다. 그러나 일반인이 들어가지도 못하는 고려 호텔이나 양각도 호텔 상점에서 명품처럼 진열해 놓은 수액을 북한 일반 주민들이 구하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상상을 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북에서는 병원마다 환약 등을 자체에서 만들어 쓴다. 기초수액을 포함한 약 공급이 안 되는 북한 내에서의 자연스런 생존 전락이다. 방문했던 평양 산원(산부인과 병원)에서 도 환약생산시설이 있어 볼 수 있었으나, 옆에 있는 수액시설을 구경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먼저 다녀온 사람으로부터 ‘수액을 소주 병에 넣어 환자에게 투여하는 것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꼭 확인을 하고 싶었던 터였다.
상황이 이럴지니 수액공장을 지어달라는 요구가 절실해 보였다.
마침 한국의 ‘K’이라는 비 정부단체(NGO)에서 북한 주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중에 하나인 수액생산 공장을 만들어 준다고 하여, 반가운 마음에 그곳을 방문하였다. 평양에서 개성, 판문점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따라 대동강변 요지에 의료관련 공단을 조성할 계획으로 넓게 부지를 조성하여 놓았다. 단지로 들어가는 길 옆에 새로 조성한다는 단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허물어져가는 축사 같은 건물을 철거하고 있었다.
제약회사 책임자는 의외로 젊어 보이는 여자로, 그 동안 3번의 방문을 통하여 내가 만난 수 많은 북한 사람들 가운데 가장 충성스러운 당원 같아보였다. 열렬히 회사 소개를 하는 모습이 북한 TV 여자 엥커를 빼 닮았다. 정열적인 회사 소개 후 Factory Tour중 신축공사장이라고 우리 일행을 이끌고 간 곳이 놀랍게도 들어올 때 보았던 축사 같은 건물이었다. 철거중이 아니라 신축 중이었던 것이다.
진짜 실망스러운 것은 신축(?) 건물에는 자체 생산한 진흙 같은 벽돌로 벽과 천장만 겨우 가렸는데, 비까 번쩍한 남쪽의 생산 설비들은 이미 다 들어와 각방에 널브러져 방치되어 있는 것이었다. 공사판 먼지에 그대로 노출된 째…. 남쪽에서 이 십여 억원이 투자되었다는 이공장도 태동부터 이미 가동되지 않는 백 여 개 공장들의 실패를 따라 갈 수 밖에 없게끔 운명 지어진 것이다.
우리가 북쪽에 도와주려는 것이 필요한 물건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주는 것이 아니고, 공장 설비하나 가장 싼 가격에 달랑 지어 던져주고 한건했다고 생색이나 내자는 게 목적인 것이 틀림없다.
전형적인 Hardware위주의 발상이다. 북한에는 그러나, 공장을 가동할 능력도, 자금도, 공장을 돌리는 데 필요한 Know-how도, 아무런 Software도 없다. 공장 몇 천 개 지어줘도 Hardware적 접근으로는 북한 동포들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된다. 누가 냈건, 남쪽에서 왔다면 우리 국민의 피 같은 돈의 낭비일 뿐이다.
2002년에 이어 2003년에도 적지 않은 양의 의료용품을 보냈다.
두 번째 물품 역시 어떻게 사용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누가 중간에 빼돌려 팔아먹었건 혹은 고위 간부에게 만 사용되었건 결국 어느 생명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믿음. 아무리 밑바닥 없는 독에 물 붓기라도 북한 동포가 담보로 잡혀있는 한, 독의 벽이라도 적신다는 심정으로 물을 부을 수 밖에 없다는 절박감으로 물품을 보내지만 무책임하기는 위에 돌아가지 않는 공장 지어주고 생색내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북한은 도움을 받을 준비조차 안되어 있는 것이다!
독일회사에 근무하면서 통독, 그 후 몸살과정과 14년이 지난 오늘까지 독일 경제의 발목을 잡는 통일 비용 등을 아주 가깝게 경험한 나는 한국통일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통일을 서두르면 한반도에 큰 재앙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까지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우리 모두가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통일 모델은 국경을 그대로 유지한 채 북쪽의 경제를 서서히 발전시켜 남쪽과의 차이가 최소가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합하는 것일 것이다. 그 동안 남한 기업들은 북한의 싼 인력을 이용하여 한반도의 산업 공동화를 막으면서도 Made in Korea의 가격경쟁력을 되찾고, 북한은 북한대로 남한 경제의 힘을 지렛대로 이용하여 경제 도약을 이룩한다는 언뜻 보기에도 누이 좋고, 매부 좋은 Scenario같지만, 남북한을 다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이 Scenario대로 갈 것이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북한의 선택에 달려있다. 북한이 준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움을 받을 준비, 공장을 돌릴 수 있는 준비, 남쪽 사고의 Paradigm을 이해할 수 있는 준비 등이 그것이다. 남쪽에 별이 없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이번 방문 중에 신선한 희망을 보았다.
“이젠 컨테이너를 보내 달라는 이야기를 차마 못하겠습니다. 대신 책을 보내 주십시오, 경영 서적을 보내주십시오, 선생이 같이 써냈다는 ‘나의 꿈은 Global CEO’책도 꼭 보내주십시오.” 젊은 엘리트 지도자의 말이다.
귀가 의심되었다. 경영서적은 자본주의에 대한 찬사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자유 시장 경제에 대한 찬미이다. 괜찮겠느냐는 물음에 자신 있게 답한다. “성공한 부분 통제 시장경제도 많습니다. 우리도 알아야 합니다. 알아야 우리에 맞는 경제 모델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젊은 엘리트들에게 많이 읽히겠습니다, 걱정말고 많이만 보내주십시오.”
적어도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 불온서적을 보내 달라는 표정은 전혀 아니다.
이번 방북에 Europe-Korea Foundation(EKF)의 Mr. Jean Jacques Grauhar와 Ms. Susana Miranda와 동행하였다. Miranda씨의 방북 목적은 유럽 회사 또는 개인들의 자발적인 도움으로 유럽각국의 유수 대학으로 유학 보낼 북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었다. 2년 전 방북 때 EKF 총재인 Grauhar씨와 Idea차원에서 같이 논의 하였던 것을 그 동안 북한 당국을 설득하여 차곡차곡 현실화 시킨 것이다.
부끄러웠다. 나도 결국 Hardware적 발상에 머물러 구호 물자(?)나 주선하고 있는 사이, 피도 섞이지 않은 이들은 북한의 미래 지도자들의 의식을 바꿔 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2004. 4
필자는 Braun Korea 사장으로서 구자문교수와 중고교 동기임
* Admin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4-06-11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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