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떠나 살면 고국을 그리게 되는지

누구나 떠나 살면 고국을 그리게 되는지  

                                                                          구 자 문 한동대 교수
  얼마 전 한국을 떠나 외국에 오래 거주하던 분들과 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요즈음은 교통수단이 발달 되어 마음만 먹으면 고국에 언제라도 방문이 가능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에 있던 분들이다. 지금 한 부부는 중국 오지에 거주하다가 20여년 만에 큰맘 먹고 한국에 유학 온 아들 방문차 귀국했는데, 코로나19의 여파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24년 만에 처음 한국에서 맞이하는 봄이라서 캠퍼스에 만발한 벚꽃을 볼 수 있어서, 그리고 녹음 우거진 아름다운 여름을 맞을 수 있어서 감격스럽다’고 했다.    

  필자도 미국에 오래 살았기에 고국에 대한 감정은 꽤 유별났다고 생각되지만, 지금은 귀국 후 20여년의 세월이 흘렀고, 가족 일부가 아직 그곳에 살고 있어서 일년에 두어 차례씩 오가고 있으며, 다른 나라들도 자주 방문하는 편이라서 지금은 그 같은 감격을 지니고 있지 못한 것 같다. 물론 발전되어 가는 조국과 몸 담은 대학의 발전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끼고는 있다.    

  또 한분은 남편 유학차 미국에 머물다 귀국하신 분인데, 10여년 동안 미국 중남부에 살면서 남편이 학교가면 홀로 남아 많이 울었다고 했다. 차차 적응했지만, 유학생들과 큰 도시로 나가 한국음식만 먹고 와도 몇 주가 뿌듯했고, 한국 한번 다녀오면 몇 년이 평안했다고 했다. 필자도 ‘아이오아’에 살 때 유학생친구들과 주도인 ‘드모인’까지 운전해가서 그곳에 있는 한국식 중국집에서 짬뽕을 먹은 적이 있었다. 같이 간 대학동창이 대구출신이었는데, 그 중국집 주인이 대구출신 화교였고 서로 대구억양 사투리를 쓰며 크게 반가워했었다. 그 중국집 옆에 대규모 쇼핑몰이 있고, 그때가 크게 빅세일을 하는 기간이라서 유학생이며 교포들이 그곳에 쇼핑가면서 그 중국집에 다들 들렀는지, 그날 짬뽕을 200그릇 이상 팔았다고 주인이 좋아하고 있었다.

  사실 우리가 자주 드나드는 미국이라 하더라도 어떤 분들은 일하며 먹고살기 바빠서 20~30년 고국을 방문하지 못하는 분들이 적지 않음이 놀랍기도 하다. 요즈음 한국이 잘살게 되어 그렇지 몇 십년전만 해도 우리 고국은 가난했고 이민을 가도 재산 전혀 없이 맨바닥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대다수였기에 다른 것들 신경 쓸 여유들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고 본다. 지금이야 어느 도시든 한국음식점이 있지만, 그때는 미국의 대도시 이외 대부분 지역에 한국음식점이 없는 경우가 많았고, 간혹 한국에서 이민 온 화교들이 운영하는 중국집이 있어서 가끔이나마 한국식 중화요리를 맛보며 즐거워했었다.
      
  또 한분은 아주 어린 시절 미국에 이민을 가서 성장한 분으로 지금은 40대 중후반의 나이가 되었는데, 미 해병 꽤 높은 계급과 지위를 가진 분으로 이 지역에 주둔하게 되어 같이 만나 식사와 다과를 함께 하게 된 것이다. 이분은 미국만이 아니라 아프칸전쟁에도 참여했고 필리핀 등지에도 주둔했었는데, 어릴 때 고국을 떠나서인지 고국에 대한 사소한 기억들은 많이 지니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미국에서 성장하며 소수민족으로서 다사다난함이야 대부분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것이지만, 한국인임을 커 갈수록 크게 느끼고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크게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들과 나눈 대화의 첫 주제가 의외로 과일과 가요였다. 우리가 보는 아삭아삭 달콤한 배를 먹는 곳은 한국과 일본뿐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서양배라서 작고 표주박 같으며 물렁물렁 달콤하다. 중국에서도 한국과 같은 배는 없고 서양배 같은 것이 있는데 더 작다고 했다. 그곳 사람들에게 한국배를 설명해도 잘 모르는데, 한국배맛이 무척 그리웠다고 했다. 또한 감나무 이야기도 했다. 한국의 홍시감이며 단감이 무척 그리웠다고 했는데, 감의 북방한계선이 우리나라 서울 정도인지 미국, 중국, 유럽에서도 감이 나는 곳과 않나는 곳이 뚜렷해서 북방에 살고 있으면 감을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는데, 그게 그렇게 먹고 싶다고들 했다.  

  한 부부는 한국에 있을 때 트롯트는 듣지도 않았고, 그곳에 드물게 전국노래자랑 해외편이 스타디움에서 열려 많은 이들이 모여들고 눈물을 흘리는데도 왜들 저러나 했었는데, 요즈음 한국에 트롯트 열풍이 불고 몇 차례 들어보며 이제는 완전히 가사와 멜로디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이제는 이게 고국의 노래라고 감정이 사무친다고 했다. 한 여성 분은 중국 만주지방에 살았는데, 애들을 키우며 힘들게 부부가 살았는데, 어느 날 고국이 그리워 울다가 잠시 시장에 갔는데, 갑자기 낯익은 멜로디가 들려 따라가 보니 한 불켜진 노래방에서 들려오는 노래가 알고 보니 ‘눈물 젖은 두만강’ 이었다고 했다.  

  함께 모였던 사람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한국인의 동족의식은 세계 누구들 보다 남다르다’. ‘한국인은 조국을 헬조선으로 부르다가도 고국을 떠나면 고국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애국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제는 한국이 발전하고 먼 외국에도 한국인들의 방문이 잦을뿐더러, 한국노래들이 K-pop으로 알려지고, K-beauty, K-medical, K-food 등으로 한국의 문화와 상품들이 더욱 알려지고 있으니, 예전 같이 고국을 그리워하며 엉엉 울리는 없을 것 같고, 더욱 자랑스럽게 한국인의 DNA를 자랑하며 어디서든 잘 적응해 살아갈 것 같다.  

영남경제 2020년 7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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