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그리고 우리

  건설이라는 단어를 영어로는 construction 이라고 해야 할지 building 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 단어의 의미는 자연위에 인간의 힘과 계획으로 무언가를 이루어 내는 행위라고 생각된다. 작게는 조그맣게 집을 짓고 담장을 치는 것에서부터 크게는 큰  공장을 짓고 큰 항만을 내는 것이 건설이라고 정의 될 수 있을 것이다. 내 어린시절의 기억에 건설이라는 단어는 1960년대 초 고향 앞바다를 크게 제방으로 막아 간척지를 만들던 일들로서 기억되고 있다. 그때 내 부모님들은 우리 고향 앞바다에 넓다랗게 펼쳐진 아직은 소금내 나던 간척지를 우리 것 인양 자랑스럽게  설명해 주셨고 그 간척지공사를 담당했던 사람이 우리고장 출신의 토목기술자라는 이야기도 덧붙이셨다. 내가 지금 비록 그러한  토목기술자가 되지는 못하였지만 그 연관분야에 종사하게 된 것도 그 어릴때부터 키워온 건설이라는 단어의 장대함 그리고 동경  때문이라고 믿는다.

  6.25전쟁의 실상을 직접 겪어 보지 못한 전후세대이지만 50년대에 태어난 40대 초, 중반의 사람들이 모두 그러하듯이 나도 60년대 초반의 궁핍함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철이 들면서부터는 경제개발5개년계획이며 도로를 뚫고 공장을 짓는 건설에 또 건설을 하던 우리나라의 모습을 지켜보며 자라났었다. 월남전에서의 아저씨, 형님들의 승전고를 들으며 자랐고 우리 건설회사들의 해외에서의 활약상을 지켜보며 자라났었다. 그 후 80년대 들어 유학을 가게 되고 적지않은 세월을 외국에서 보내면서도 중동이며 아프리카에서 들려오는 한국기업들의 대규모 프로젝트 수주 소식을 들으며 찬사도 보내고 눈물겨워도 했었다. 우리는 무슨 일이든 이루어 낼 수 있는 민족이다라는 자부심과 우리도 이만큼 잘살게 되었다는 사실들이 그 해외에서의 대규모 건설사업들에서 상징적으로 보여졌던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내가 대학을 다니던 70년대나 유학중이던 80년대와는 또 다른 모습이 되었다. 소득이 1만불을 넘어섰고 도시와 농촌이 자가용으로 메워지게 되었다. 미국에도 유럽에도 어디에서나 \’메이드인코리아\’의 자동차들이 거리를 질주하고 한국을 한국인을 누구나 기억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항상 뿌듯하게 해 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오랜 외유끝에 되돌아온 나에게 고국의 모습은 놀라움을 주기도 하고 안타까움을 주기도 한다.  너무나 무계획하게만 보이는 우후죽순의 고층건물들. 짜증정도가 아니라 아예 약속시간을 포기해야 될 만큼 밀리고 밀리는 교통체증. 계획성 없이 자꾸만 파헤쳐지는 도로들. 지은지 20년이면 헐리고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 단지들. 날리는 먼지 그리고 쓰레기. 이러한 문제점들이 대도시에도 중소도시에도 변함없이 존재하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여도 자세히 살펴보면 여기저기 허점들이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소득이 늘고 사회가 더욱 발전하면 차차 안정된 모습을 보이겠지 자위를 해보나 어딘지 불안하고 쫓기는 듯한 것이 우리의 모습이고 우리의  생활 터전인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물량적인 성장이며 건설에만 힘을 써왔다. 모든 것을 단시일에 이루려 했고 의욕만 앞선 나머지 시행착오 또한 너무나 많았었다. 이제 우리에겐 거시적인 안목과 참을성이 필요하다. 진지한 분석과 계획이 필요하고 표준화된 절차와 기술력이 필요한 것이다.        

  미국의 로스앤젤리스시정부에서 도시계획관으로 주택계획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내 자신 건설과 관련된 여러가지 사안들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도시계획수립절차가 어떠한지, 건축허가과정이 어떠한지, 시공상의 검사과정이 어떠한지… 이 모든 것들이 우리 눈에는 너무나 느리고 융통성이 없어 보였다. 내가 직접 담당했던 환경영향평가과정을 예로 들어보자.  집수리 정도의  아주 조그마한 프로젝트들은 환경영향평가 없이 하루이틀만에 카운터에서 해결되지만 그 이상의 프로젝트들은 간단한, 그래도 3-4주 걸리는 환경영향평가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런경우 전 허가기간이 3달정도 걸리는데 이러한 프로젝트가 로스앤젤리스시에서 1년에 보통 3,000건 정도였다. 또한 대규모 프로젝트나 공론화된 프로젝트들은 정식의 환경영향평가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1∼2년 정도에 걸쳐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하고 다른 절차를  포함하면 전체 허가기간이 때로는 2~3년이 소요되기도 한다. 환경영향평가서는 시정부의 이름으로 용역업자들이 작성하는데  매 프로젝트마다 전담 공무원이 배정되어 하나하나의 문맥까지  회의를 거치며 작성이 되고 또 이를 바탕으로 여러 차례의 공청회도 열리고 전문가들의 회의가 소집되는 것이다. 이러한 프로젝트가 로스앤젤리스시에서 1년에 30~40건이 되었었다. 여기서 다루는 항목들은 한국에서의 환경영향평가와 마찬가지로 교통, 소음, 대기오염, 상하수도의 용량 등 물리적인 것들과 인문사회적인 것들인데, 프로젝트로 인한 이들 항목별로의 악영향들이 세밀한 분석을 통하여 확인이 되고 또 저감방안들이 부여되는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허가가 몇 년씩 연기되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도시시설의 용량, 특히 교통이나 상하수도 등에 무리가 없도록  하기위한 시간적인 배려인 것이다. 이렇게 프로젝트들이 허가가 나면 공사가 시작되는데 전담의 혹은 계약직의 기술직공무원들이 배정되어 하나하나의 과정이 면밀히 검사되며 일이 진행되는 것이다. 이들은 권위만을 내세우지 않으며 모든 것을 교과서대로   논리적으로 꼼꼼하게 일을 진행할 뿐이다. 이러한 지루한 과정들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닐 것이다. 투자가나 건설업자에게 심리적으로 재정적으로 압박을 가할 뿐더러 사업성이 하락하게 되어 프로젝트를 포기해야 할 경우가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시장이 당선된 이후에 건설허가단축을 위한 위원회가 생겨서 각 연관부서의 대표나 대리인들이 2주일에 한번씩 계속해서 1년간 모임을 가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토론이 일의 전산처리나 협조에 관한 내용들이었다. 도시환경에 시민들의  생활에 직접 영향이 미치는 부분들에 대한 심의 과정은 절대로 생략될 수 없다는 것이 기본 철학이었던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지금까지의 조급하게 이루어진 물량적인  건설사업에 대한 반성이 조용하게 일고 있다. 시공상의 하자와 비리에 대한 반성도 일고 있고 도시환경혼탁의 책임에 대한 반성도 일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 \’생태학에 입각한 자원절약적인 도시의 건설\’ 이라는 용어가 많이 이용되고 있고 어떤 도시에서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위원회도 구성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의 도시를 우리의 자연을 3~4년을 예측하지 못할 구제 불능의 도시로 만들지 말고 생태적이고 지속개발 가능한, 사람 살기에 쾌적한 도시로 발전, 유지시키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시민 모두의 환경보존 및 자원절약을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정부에서도 생태도시를 실현시키기 위한 중장기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며 이에 부합되고 또 그때그때의 능력에 맞게 프로젝트를   허가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또한 중요한 것은 건설업계의 문제에 대한 인식과 자발적인 참여이다. 이러한 노력들이 민관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때 우리의 도시며 주거의 질은 좀더 나아 질 수 있을 것이다.

  건설시장 개방을 앞두고 여러가지의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우리는 기술력도 없고 인건비만 높다고 걱정들을 하고 있다. 하지만 어차피 넘어야 할 관문이라면 이 기회에 우리의 모습을 재정비 할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건설업은 어차피 여러가지 복합요소가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만큼 정부와 건설업계가 부단히 노력을 기울인다면 장기적으로도 단기적으로도 살아 갈 방도가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기술투자와 아울러 기술력을 배양하고, 법령과 규제상의 불합리를 재조정 해 나가고, 정책결정도 구태를 벗어나 합리적, 공개적이 되도록 하고, 성실시공을 위한 제도를 정비하고, 관련산업을 육성하도록 하는 등 계속적인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건설교육도 변신되면 좋을 것이다. 대학이 건축, 토목 등 좁혀진 범위의 지식만을 주입시키기 보다는 이들 전공분야와 함께 도시, 환경, 재정 등 연관분야에 대한 소양을 갖추도록 할 것이며, 고학년에서는 프로젝트 위주의 실험 및 실습을 강화하여 현장에서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처리해 나갈 수  있는 인재를 키울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또한 공사를 해나가는 실제적인 주체는 건설기능공들인 만큼, 이들을 위한 교육도 좀더 강화하여 기능, 기술 교육 뿐만이 아니라 장인정신과 긍지를 높여주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건설업계의 이러한 소망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이며 이러한 불합리가 하루아침에 해결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술력에 있어서도 일의 윤리에 있어서도 우리 건설업계는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주먹구구의 운영이나 물량위주의 건설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도시전체에 무리함을 주지 않는 조화로운 건설을 생각해야 하고 주민들이 좀더 안전하고 안락함을 느낄 수 있는 구조물을 완성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는 것이다. 건설업이라는 것은 다른 산업에 비해서 하이테크화가 어렵고 어쩌면  전근대적인 요소들을 가장 많이 지니고 있을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3D 직종의 하나로서 피하려고 들 것이다. 하지만 건설업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미래에도 우리의 도시를 이루어주고 우리의 생활터전을 마련해주는 중요한 요소로 살아 남을 것이다. 우리의 주거를 만들고, 도로를 건설하고, 상하수도를 설치하고, 공항과  항만을 건설하고, 생태적인 도시를 이루어 나가고, 자원 및 에너지의 효율적인 이용을 위해 노력하고, 이것이 건설업의 임무인 것이다. 한편에는 하이테크의 현대적인 감각의 건물이며 구조물이 들어서 있고 그를 감싸는 자연이 그로 인하여 더욱 자연스럽게  보이는 그러한 도시를 우리는 꿈꾼다. 현재의 혼탁하고 천편일률적인 모양새를 지양하고 각각의 도시가 각각의 지역이 나름대로의 특성을 갖추고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 쾌적함 속에서 빛나는 시민정신을 함양할 수 있는 그러한 도시를 우리는 꿈꾼다. 이러한  삶의 터전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우리 건설업계의 현재의 그리고 미래의 임무인 것이다.  (끝)

필자는 충남보령 출생으로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아이오아주립대에서 도시및 지역계획학 석사, 남가주대학에서 도시및 지역계획학 박사를 받았다.  현재 한동대학교 건설도시환경공학부 교수이며 로스앤젤리스시정부에서 부도시계획관, 주택계획 및 경제분석관을 역임했다.  현재 미국도시계획기술사이며 미도시계획학회와 범태평양개발협의회 회원이다.

대한건설협회지 – 월간건설, 199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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