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구씨라는 것이

   내 이름을 소개할 때마다 거의 빠짐없이 듣게 되는 말들이 있다.  “엘지그룹과 인척관계가 아니신가요?”  “구씨는 모두 친척이라지요?” “내 친구도 자자 돌림인데….”  “요즈음은 구씨들이 참 많은 것 같군요.”  “똑똑한 사람도 참 많은 것 같구요.”  이러한 말들을 듣는다는 것은 요즈음 우리 구씨가문이 자식들을 잘 낳고 길러내어서 가문이 융성해짐을 나타내는 증거가 아닌가 생각된다.  내 어릴 때인 이삼십년 전만 해도 구씨가 드물어서 한 학교에 한 두명 정도 있을 뿐이었고 구씨라는 성을 원로 코미디언인 구봉서씨로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당연히 질문도 구봉서씨와 어떻게 되시나요 정도였었다. 그런데 지금은 경제계에, 학계에, 문단에, 또 정치계에 이름을 날리는 구씨들이 적지않다. 또한 각종 국가고시에 몇 명씩은 꼭 끼이는 것이 구씨들이고 드라마, 소설, 만화의 주인공으로 우리 구씨라는 성이 일종의 독특한 캐릭터로서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가상의 구씨를 만나건 실제의 구씨를 만나던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번 더 읽어보고 한번 더 이야기라도 나누어 보려는 것은 비단 나 뿐만이 아닌 구씨 대부분의 체질이리라.  
  대학 교양과정부때 나는 집이 멀다는 핑계로 한 두시간씩 지각을 일삼았는데 그때 매일 내 대리 출석을 해준 사람은 다름 아닌 같은 반의 이름이 “구자”로 시작되는 친구였었다. 부탁한 것도 부탁 받은 것도 아닌 상태에서 그 같은 행동은 대리출석이 유행이던 그때로서도 참 파격이었고 후에 내가 번번히 고맙다고 인사를 하자 그 친구 말이 “피는 물보다 진하다 아이가.”   구씨라는 같은 성 때문에 나에게 도움을 주었던 그 친구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십여년이 지난 지금 내가 지금 근무하고 있는 대학에도 구씨 성을 가진 학생들 여럿이 있는데 나는 가르치는 교수이고 그들은 학생이지만 처음 이들의 이름을 보면서부터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해 하기도 했었고 지금도 마주치면 왜 자주 찾아오지 않는지 핀잔을 주게도  되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이십 여년 전 그 친구의 공식인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사실을 아직도 실감하고 있는데 요즈음의 학생들은 어떠한지 사실 궁금하기도 하다.
  십년 하고도 또 그 절반의 세월을 미국에서 살면서 마주쳤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친했고 지금도 친밀함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대라고 한다면 나는 역시 두 구씨가족의 이름을 댈 것이다. 애초에 아무런 연고가 없던 사람들이 단지 구씨라는 인연으로 만나서 형제며 삼촌같은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는 것이다. 한 구씨가족은 내가 식솔을 거느린 유학생으로 돈이 없어 쩔쩔맬때 내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노력하면서 한동안 식료품을 공급해 주기도 했었고, 내가 직장을 잡아 자리를 잡았을 때는 자기집 일같이 기뻐도 했었다. 한 구씨가족은 이웃한 동네에 사시던 삼촌뻘의 아저씨와 딸인데, 스스럼없이 방문하여 생활상담이며 인생상담을 하곤 했었다. 특히 이들은 우리 가족이 오랜 미국생활을 청산하고 귀국을 하는데 있어서 그 어려운 결정을 결정적으로 도와 주셨던 분들이며 집을 처분하고 가구를 처분하고 심지어 쓰레기를 내다버리는데 까지 도움을 주셨던 고마운 분들이다. 그분들도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공식을 알게 모르게 따르고 실천하던 사람들이었던 셈이다.      
  내가 태어난 충청도 보령에서는 구씨하면 심성좋고 머리좋은 집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칠팔십년 전통의 초등학교에서는 우등이 줄줄이 구씨들이었고 구씨 집안의 딸들은 머리좋은 아이 낳기로 유명해서 나이차기 전부터 혼담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대대로의 가난 탓인지 착하디 착한 심성 탓인지 세속적인 출세를 한 사람은 드물어도 법 없이도 살, 소박하면서도 연륜의 인격과 품성을 지닌 우리문중 어른들이 지금도 그 고장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집안의 많은 젊은이들이 외지로 나가 있지만 명절이면 어김없이 찾아들고 인사를 나누게 되니 그곳에서 구씨는 문중의 대소사에 모두다 열심인 전통있는 집안으로 알려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공식이 이곳에서는 더욱더 강하게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구씨라는 것에 애착을 가지고 구씨가 유별남을 자랑하는 것이 남들의 눈에는 우습거나 유치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을 나쁘다고 할 수야 있겠는가? 이러한 삭막한, 이해타산의 현대생활 속에서 이러한 행동이 하나의 애교이며 정겨움이며 보람일지언정 지탄을 받아야 할 대상은 아닌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내가 구씨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낄 것이고 자랑을 할 것이며, 마주치는 구씨들과 좀더 정다움을 나누려 할 것이다. 어차피 나는 구씨로 태어났고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터득하고 있는 사람이니까. (끝)

具  滋  文, 능성회보,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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