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대학에 합격을 했지만 나는 대학생활에 흥미를 잃고 있었습니다. 중고등학교를 서울에서 다니기는 했지만 나는 세련된 서울내기도 못되었고 조금은 우악스러운 소위 지방명문고 출신도 아니어서 그리 눈에 띄지 못하는 존재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신입생들에게 미팅약속이 줄을 이었고 당구며 포커며 잡기들이 유행이었는데, 나는 그런 것들에도 선뜻 뛰어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대학에 들어와 확 풀어진 자유로움과 중고시절의 잡지나부랭이 통독 속에서 제멋대로 자라난 나름대로의 불만과 걱정 때문이었는데, 얼핏보면 대단히 철학적이기도 했습니다. 내가 대학에 왜 왔던가? 철저히 회의하고 사유한다는 것은 어떠한 것들인가? 도대체 한국사회에 희망이 있는 것인가? 그러나 이러한 불만과 걱정들은 그냥 생각에 그칠 뿐이었고, 나의 일상은 게으름과 안일함에 휩싸여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즈음의 일과는 첫 시간 수업이 시작될 시간쯤에나 일어나서 만원버스 타고 한두시간 걸려 학교에 가고, 점심시간에는 학교 앞 중국집에 우루루 몰려가 짜장면을 곱배기로 먹고, 방과후에는 판돌이하던 친구다방에서 시간을 죽이고, 저녁에는 몇몇 “낭만적염세주의자”들과 “한잔의 술”에 취하던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어느 곳에서도 어느 방법으로도 허전함을 채우지 못했고 아쉬움과 몽롱함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나의 이러한 생활은 한 학기 내내 계속되었고 형편없는 성적표와 함께 방학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부모님에게 나는 아직 착한 아들이었기에 방학 때는 몇 주씩 시골집에 내려갔고 부모님께 터무니없는 응석과 투정을 부리곤 했었습니다. 몇 달 내내 둘째 아들의 근황을 보고 받아 익히 알고 계셨던 부모님께서는 이 나사 풀린 둘째 아들을 바로잡고자 나 모르게 작정을 하고 계셨습니다. 방을 같이 쓰자는 아버지의 제의를 나는 어쩔 수 없이 동의했고 그 다음날부터 당연히 곤란함을 겪게 되었습니다. 의례히 늦게 일어나고 먹고 자는 생활이 방학이었는데, 아버지께서는 6시에 기상하시고 나보고는 일어나라는 말씀도 없이 이불 개시고 체조하시고…….. 이삼일 후부터는 나도 따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학교를 그만 두겠다는 말을 들으시고 그럼 내가 무얼 하겠느냐고 심각히 물으시기도 하셨는데, 나는 대뜸 작가가 되겠다, 산에 들어가서 한 일년 요양을 하겠다 주장을 했는데, 아버지께서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그럼 누가 밥을 먹여 준다든?” 되물으셨던 기억이 납니다.
개학이 되며 나는 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는 나와 나이가 동갑이나 좀 늙으스레 보이는 정치학과 1학년생이었습니다. 같은 버스를 기다리다가 알게 되었고, 자주 마주치며 친해졌는데, 그는 크리스찬으로서 연설도 잘했고, 사회의식도 남달랐고, 고물자전거로 제주도를 포함하는 전국일주를 해내는 행동파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강권에 의해서 어릴 때 다니다 그만둔 교회를 다시 가보게 되었고, 그가 권유하는 서클활동에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나의 섬세한 감수성을 칭찬해 주면서도 지나친 감상주의를 꾸짖기도 하였고, 생각뿐인 나 자신의 나약함을 곧잘 지적해 주었습니다. 그때 그는 너무나 완벽해 보여서 그는 나에게 정말 본 받고 싶은 “데미안”이었습니다. 그러나 “싱클레어”는 조금은 부끄러움 때문에 그에게 고마움을 표현해 내지 못하고 있었고 또 한 학기가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속에서 나는 좀 더 부지런한 자신감의 소유자가 되어가고 있었고, 어리광쟁이가 아닌 좀더 독립적인 둘째 아들이 되어가고 있었고, 좀더 열심히 교회활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후로도 기복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 이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가게 된 것도, 한동대학교에 비젼을 가지고 동참하게 된 것도 대학일년생이던 그 시절에 이러한 사랑과 도움 속에서 그 기반이 이루어 졌다고 생각됩니다. 지금은 80이 되신 부모님의 그때 그 사랑과 심정을 내가 부모 된 지금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 그 친구, 그후로는 오랫동안 만나지도 못했고 어쩌면 나의 이러한 추억에 깜짝 놀라며 의아해 할지도 모르지만, 그는 지금도 내가 본받고 싶고 감사함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끝)
한동신문, 2000.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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