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울란바타르 1

길을 떠나다

   마지막 시간까지 이일 저일로 바쁘다가 울란바타르로 떠나다. 서울이 아닌 먼 지방도시에 살기에 국제선 타기가 그리 쉽지가 않다. 포항에서 동대구까지 1시간 15분을 버스로, 5-10분 걸어 KTX역 도착, 1시간 45분 만에 서울역 도착, 그리고 계단을 오르내려서 인천공항행 리무진을 타면 1시간이 걸린다. 11시도 되지 않아 집을 떠나서 오후 4시경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는 몽골항공인데, 1시간쯤 연착하여 오후 7시 30분에 출발하였고, 3시간 만에 울란바타르 칭기스칸 공항에 도착하였다.

  KOICA 멤버인 제자가 마중을 나왔다. 그러나 아뿔사, 날씨가 이리 추운 줄 몰랐다. 옷들을 모두 가벼운 봄옷으로 준비했는데, 4℃라니… 작년 이맘때쯤 그리 춥지 않았다고 기억하며 옷들을 준비했었다. 숙소는 꽤 비싼 곳인데 꼭 시골 여인숙 같은 모습에 놀라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했다. 다행히 Arirang TV채널이 나오기에 잠들기 전의 적적함을 메꿀 수 있었다.  

울란바타르의 첫날

  좀 추워서 잠이 일찍 깬 것인가? 잠이든지 3시간 만에 잠에서 깨어났다. 아직 내 시계로 6시 이전이니 이곳 시간으로는 새벽 5시일 것이다. 방안에는 정적 속에 냉장고 소음이 너무나 크게 들려온다. 하지만 아침은 밝아오고 있다. 주변은 개발초기의 강남과 같이 을씨년스러움의 연속이다. 날씨는 어제 밤에 느끼듯이 꽤 쌀쌀하다. 며칠 전 눈이 와서 기온이 내려간 것이라는데, 아무튼 쌀쌀한 5월의 새벽이 하얗게 동이 터오고 있다.

  어제 짐을 풀었던 호텔이 가격에 비하여 너무 어설프고 주변에 별다른 시설이 없어 호텔을 옮기기로 했다. 1년 전에도 머문 바 있지만 CK호텔이 우리가 활동하기에는 제일 나은 것 같다. 짐을 풀자마자 시내 곳곳을 돌아보기로 했다. 1년 전이나 다름이 없이 거리에는 차들로 가득차고, 흙먼지가 날리고 있다. 도로는 아스팔트가 깔린 곳도 제대로 된 곳 없이 패여있고, 대부분의 길은 자갈밭에 흙먼지이다. 뒷골목에 우연히 들어가 보았는데 자갈, 쓰레기 온갖 것들이 흩어져 있다.

  점심은 툴강 근처의 대형식당인 Seoul Restaurant에서 감자탕을 주문했다. 맛은 좋았는데, 감자가 들어갔으니 감자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지, 쇠고기 덩어리를 뼈채로 집어넣고 김치와 끊인 와일드한 김치탕이라고 볼 수 있겠다. 점심후에는 그 Seoul Group에서 건설 중인 자이승 전망대 근처의 아파트 건설현장을 방문했다. KOICA에 근무 중인 제자가 교회를 다녀와 합류하여 연락을 취하여 양해를 얻은 탓이다. 이곳에서는 조그만 건설현장이라도 감시, 경계가 삼엄하며, 출입 내지 사진촬영을 허가하지 않는다. 이 그룹은 회장은 한국인이고 사장 등 경영진은 몽골인 그리고 한국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곳에서 KOICA단원이었다던 직원의 안내로 견본하우스에 가보았다. 10층 정도의 APT가 여러 동 건설 중인데 최상류층을 겨냥한 듯 70평짜리였다. 최신 부엌, 목욕탕, 거실 등등 한국의 최고급 APT와 비슷하며, 가격은 3억 5천 투그릭 정도라고 한다(1원=1.15 투그릭). 최상류층을 겨냥하여 건설을 하고는 있지만 분양이 되지 않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지난 1년 전에 비하여 울란바타르의 주택가격이 매우 올랐다고 하는데, 과거 5천만 투그릭이던 것이 7천만 투그릭 정도로 올랐고, 괜찮다 싶은 것들은 1억이 넘어버리고 있다. 태일군이 살던 20평 정도의 낡은 APT도 5천만에 팔렸다고 한다.

   주민들의 국민소득이 $1,000에 미치지 못하는데, 주택가격이 너무 높아서 일반 서민들은 APT에 살 엄두도 못 내고 무허가 판자촌인 게르지역에 살 수 밖에 없는데, 울란바타르의 인구는 지난 1년 간 또 많이 늘어서 120만이 되었다.  사람들을 보면 삶의 구차한 모습이 뚜렷하게 엿보이지 않는다. 다들 청바지에 선글라스에 부츠들을 신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사는 곳은 게르요 먼지 쌓인 울란바타르인 것이다. 요즈음 반짝 경기를 타고 한국의 건설업자들이 아파트 공사를 하고 있지만 또한 많은 외국광산업자들이 자원을 캐내고 있지만, 몽골은 별로 나아지지 않고 있다.

  산업이 필요하다. 경제활성화가 필요하다. 주거의 향상(Housing Upgrading)이 모든 계층에 걸쳐 일어나야 하고, 울란바타르의 재정비 사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강사장님은 오랜 사업가답게 실제적인 소감을 피력한다. 이곳 몽골에 필요한 것은 아스콘이고, 보도블럭이고, 레미콘이다. 몰론 벽돌도 필요하겠지만, 그런대로 공급을 받는 편인 것 같고, 도심 재정비가 가장 시급하단다.

  사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24시간에 2-30만장의 벽돌을 유압식으로 찍어 낼 수 있는 최신자동의 기계를 몽골에 도입하기 위해서이다. 황부장이 그간 노력을 기울였고, 강사장님이 우리의 뜻에 동조했기에 수십 억짜리 기계를 한국에서 놀리느니 몽골로 가져와 사업을 시작하려 하는 것이고, 지난 번 여행 때 몽골 수훈 건축가인 미스터 얀진이 조언한 바대로 건축자재공장을 세우려 하는 것이다. 이 기계가 들어오면, 값싼 골재를 활용하여 다양한 종류의 벽돌들을 완성하고 이로 인하여 중국에서 수입되는 값비싼 건축자재 대신에 업자들은 공사단가를 줄이게 될 것이다. 더욱 중요하다고 보는 것은 게르에 사는 사람들이 값싼 벽돌을 이용하여 주거를 향상시키는 것이다.

  잠시 호텔에 들렀다가, 게르지역을 돌아보면서 오래된 라마사원을 방문하기도 했다. 과거의 영화는 오래전 사라지고 넓은 뜰안은 몇 개 작은 건물들만 남아 있을 뿐, 자갈과 흙먼지뿐이다. 하지만 게르형태의 한 건물에서는 동자승이 예식을 진행하고 있고 밖에는 몇몇 몽골인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뒤편의 나무없는 민둥산 꼭대기에는 돌무데기와 푸른깃발이 펄럭이는 서낭당의 모습이 멀리 바라다 보였다.

  과거 중국인들이 몽골을 지배하면서 높은 세금을 부여하며 많은 압박을 가하자 몽골의 지배계층 남자들이 대부분 이를 피하려 라마승이 되었는데, 중국은 교묘히 이들이 결혼할 수 있게 법령을 만들었고 라마사원 근처에 화류계의 성병 걸린 여자들을 배치하였다고 한다. 이들 라마승들이 성병에 걸리고 자손도 제대로 생산할 수 없게 되어, 19세기 말경에는 몽골의 인구가 70만 정도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20세기 들어서며 이들 몽골인들의 민족 자각이 싹트게 되고 인구배가 운동을 펼쳐서, 지금의 280만이 되었다.

  20세기 초반에 몽골은 러시아의 도움으로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하게 되었지만, 러시아인들도 이들을 제대로 돕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들의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하여 성씨(Last Name)를 없애어서, 씨족끼리도 알아볼 수 없게 만든 것이다. 그리하여 모르는 사이에 근친혼도 자주 일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소비에트 유니온이 붕괴되면서 많은 실크로드의 국가들이 독립하면서 1990년대에 들어서 몽골도 자본주의 체재를 받아들이기 시작하였지만,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은 것 같다. 국토는 광활하나 인구가 너무 적다. 사람들은 전통적인 목축업에 종사할 뿐이고 특별한 산업이 자리잡지 못했다. 유일한 광산업은 선진국 회사의 손에 넘어가 있다. 한국인들이 한동안 이들의 싼 임금을 활용하여 봉제공장들을 차렸는데, 모두 철수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낮은 생산성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한국인들의 빨리빨리 습관 때문에 마찰도 많이 일어났다고 보아진다.

  요즈음 꽤 많은 사람들이 해외에서 찾고 있지만, 과거 미국서부의 골드러시(Gold Rush)때처럼, 무언가 일확천금 내지는 무언가 새로운 비즈니스를 찾아오는 것이다. 또한 몽골 인구의 1/10이 한국에 머물고 있다.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며 돈을 벌어 몽골에 되돌아와 집도 사고, 차도 사고, 가게도 운영한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과 국내생산이 거의 없는 생필품 및 건축자재 때문에 몽골의 물가는 살인적으로 오르고 있는 것이다.  

  저녁 6시에 이곳 유력자들을 한 전통음식점에서 만났다. 식사비는 12-3만원이었는데, 양을 거의 한 마리 요리해 주는 것 같다. 다들 구면이고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요즈음 1주일 단위로 한국의 소규모 건설업자들이 정부기관과 면담한다고 한다. 하지만 말뿐이고 진전이 없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우리는 대학연구소를 중심으로 활동을 펼치기에 많은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하며, 울란바타르가 땅 구하기가 힘드니 다른 도시에도 신경을 써볼만 하다고 조언도 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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