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에 몇 주 머물던 미국인 친구를 배웅하며

포항에 몇 주 머물던 미국인 친구를 배웅하며

구 자 문 한동대 교수
  포항에 20년 가까이 살고 있던 미국인 친구가 직장에서 은퇴하고 미국으로 되돌아간지 1년도 않되어 다시 포항을 찾았다. 필자는 이 친구와 20년 가까이 가깝게 지냈는데, 이 친구도 그렇게 생각하리라 믿는다. 이 친구는 속이 깊고, 참을성이 강하며, 남들 모르게 남을 돕는 일들을 많이 하고 있었다. 내내 싱글로 살다가 50대 넘어 교회에서 만난 한국여인과 결혼하고 행복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젊은 시절 기독교 단체에서 일하며 법률대학원(Law School)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었지만, 계속 봉사단체 등에서 일하다가 포항에 있는 한동대 국제법률대학원에 교수로 오게 된 것이다.

  필자와 나이가 비슷하고 한동안 같은 교회를 다니기도 하여 친해지기도 했지만, 필자가 학생들과 진행하는 개발도상국 봉사활동 내지 조사연구사업에도 부부가 대부분 동행하며 시간을 보냈었다. 물론 포항에 있으면서도 일주일에 3번은 점심을 같이하고 주말 오후에는 함께 해변을 걷기도 했다. 필자가 음식 가리지 않고 많이 먹는 일종의 대식가라면, 이 친구는 좀 가리기도 하는 소식가라서, 모든 음식을 같이 먹지는 않았지만, 돌솥밥, 비빔밥, 감자탕, 돼지국밥, 잔치국수 등 한국음식을 좋아했는데, 자기 부인이 밥을 포함한 한국음식을 좋아하기에 배려를 하는 것이리라. 필자도 그 친구도 햄버거/후렌치후라이를 좋아하는데, 그 친구 부인이 동행하지 않을때만 맥도날드나 롯데리아에 갔던 기억이 난다. 이 친구의 모친은 100세에 가깝고 아들을 그리며 귀국을 독려했고, 본인도 고향으로 가고 싶어 했지만, 포항에 좀 더 머문 것은 한국생활에 익숙한 부인을 배려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필자도 그러했다고 나름 자부하고 있었지만, 이 친구는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정성을 다하는 편이었다. 항상 책을 읽고, 수업준비를 하고, 학생들을 만나고 상담했다. 이러한 교수들이 모여 학생을 가르치는 한동대가 창립된지 30년이 넘어가는데, 한동안 자금난 등으로 고생했지만, 이제는 나름 체계가 갖추어지고, 실력 있는 학생을 양성하는 대학으로 잘 알려지게 되었다. 미국 같으면 ‘신 아이비리그’로 불리는 뉴욕의 엠허스트칼리지, 클레어몬트의 포모나칼리지/하비머드엔지니어링칼리지 같은 ‘작지만 강한 대학’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포항은 인구 50만의 중간 크기 도시임에도 글로벌 철강기업인 포스코와 한국의 칼텍(CALTECH)격인 연구중심 공과대학 포스텍(POSTECH)이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우수 사립학교이자 글로벌네트워크를 지닌 한동대(HGU)가 있어 포항을 브랜드하며 크게 알리고 있는 것이다.  

  필자도 미국에 살며 나름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있다가 한국에 오게 된 것인데, 이 친구도 미국에서 높은 소득을 낼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음에도 새로 창설된 지방도시 포항에 위치한 소규모 대학에 오게 된 것이었다. 물론 미국에서 은퇴 후에 몇 년 와서 가르치는 분들은 연금이 상당하기에 큰 걱정이 없지만, 필자나 이 사람 같은 경우에는 미국에서 연금은 거의 기대할 수 없고, 한국 연금체계하에 미국직장 연금의 1/3 정도를 받는 것 같다. 또한 지방도시라서 다른 것은 몰라도 미국 등 해외 가기가 쉽지 않음도 문제였었다. 포항에서 인천공항 가기가 만만치도 않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물론 우리들 보다 더욱 큰 고생을 하며 가난하고 생활환경 열악한 동남아시아, 몽골, 중국, 아프리카 등지에서 선교사나 대학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미국인이며 한국인들도 적지 않다. 필자가 자주 간 몽골의 예를 들면, 열악한 무허가불량주거지 게르에서 힘들게 선교사를 하시는 분들도 있고, 몽골국제대학 등지에서 현지 월세 정도만 받으며 강의를 지속하는 미국인, 한국계 미국인, 한국인들도 있다. 물론 이들이 가르친 몽골인 학생들이 기독교인으로 잘 자라나 자기 밥벌이도 하고, 좋은 시민으로 살아가게 함이 이들의 삶의 목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의 친구 부부는 3주 동안 캠퍼스의 방학 중 미국에 다니러 간 미국인 부부 집에 머물며 포항에서 옛친구들도 만나고, 여러 곳도 다니고, 음식도 먹으며 나름 좋은 시간을 보낸 것 같다. 필자도 자주 만나기는 했지만, 그들도 필자도 미국생활에 익숙해 있어서, 개인적인 일정은 파괴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만나고 여기저기 다녀본 것 같다. 제일 먼저 가본 곳은 새로 뚫린 동해안 고속도로 포항-영덕구간이고 그곳 휴게소였다. 그리고 가본 곳은 포항의 도심해변 영일대해수욕장, 자주 가던 양덕동의 커피숍과 음식점, 그리고 이동 이마트였다. 또한 자주 이용하던 한동캠퍼스 맘스키친에서도 여러 차례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이들은 카페라테, 필자는 아메리카노.

  필자도 2월 중순쯤 로스앤젤레스 비행기 티켓을 사놓았고, 몇 달씩 그곳에 머물기도 하고 다시 포항에 돌아와 머물기도 하며 좀 더 신축성있는 스케줄하에 연구활동을 지속할 계획이라 앞으로도 이들을 만날 기회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이들은 일년에 한번은 포항을 방문하고, 루지에나에서 로스앤젤레스로 놀러 오고도 싶어 하고, 일년에 한번 크루즈를 타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2월 2일이 그들이 떠나는 날이라서 올때도 KTX역에서 픽업을 했지만, 다시 이들을 KTX역에 데려다 주었다. 포항에서 서울역까지 KTX로 가서, 거기서 공항열차를 타고 인천공항까지 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댈러스에 도착하여 다시 루지애나행 비행기로 갈아타야 하는 것이다. 필자도 살던 집을 매각하고 작은 셋집으로 이사해야 했던 시점이라서 이들과 시간을 좀 더 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서로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기에, 또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굿바이 하게 된 것이다.

대경일보 2026년 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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