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운동 재점화 및 세계화 방안
구 자 문 한동대 명예교수
새마을운동은 1970년에 시작된 우리나라의 농촌부흥운동이다. ‘근면·자조·협동’을 기본정신으로 내세우며, 민관이 협력하여 집과 마을을 새롭게 가꾸며 농가소득을 향상시키고자 했던 우리의 역사 유산이다. 과거에도 농촌계몽, 4H 등 농촌개발운동이 없지는 않았지만, 1970년에 시작된 새마을운동은 과거의 것들과 다르게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거국적으로 추진되었다. 1950년대 태어나고 1960년대를 초중등생으로 보낸 필자로서는 1960년 5.16혁명 이후 마을마다 ‘재건(再建)’이라는 표어를 붙이고 ‘재건’하면서 인사하던 때를 기억한다. 1970년부터 새마을운동이 추진되며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로 시작하던 새마을노래를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에 필자는 서울에서 중고교를 거쳐 대학재학 중이었는데, 방학 중 고향에 내려가면 온 마을이 새마을운동으로 떠들썩하던 모습들을 잘 기억하고 있다.
마을사람이 공동참여하여 돌을 나르고 정부가 지원한 제한된 규모의 시멘트/철근과 함께 마을 길을 넓히고, 관개시설을 조성하고, 공동우물터를 정비하고, 지붕/부엌을 개량하고, 논밭에 객토작업 등을 하고 있었다. 1970년만 해도 농촌인구 및 농업종사인구가 총인구 및 총고용의 60% 정도씩을 차지하고 있었고 농민들의 생활은 피폐했었다. ‘농공병진’을 내세운 한국정부는 제조업과 중화학공업 발전에 힘을 쏟는 한편, 농촌개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고, 농민들도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욕구가 결합되어 새마을운동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당시 정부는 새마을운동을 통해서 농촌주민들이 마을인프라 및 주택개량, 농산물 증산 및 농가소득 향상을 이루어 나가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동기를 부여하고, 기술적/물질적 도움을 제공했다. 또한 마을지도자 육성과 주민계몽을 통해 협동의 중요성과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고취시켰다.
새마을운동이 주민의 자발적인 노력이 아닌 군사정권의 ‘동원된 근대화’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없지는 않다. 그 말이 꼭 틀린다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사실 초창기에는 정부 주도의 성격이 강하기는 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주민들의 자발적 노력에 의한 정신운동이자, 지역개발 및 소득증대운동’으로 변모되었다고 본다. 그 당시 벌였던 일들이 집과 마을 정비, 수확 높은 통일벼 재배, 비닐온실 재배 등을 통한 소득 증대, 헐벗은 산에 식목, 산비탈 사방공사 등 많다. 물론 한국정부는 경부고속도로 건설, 이중곡가제 채택, 지방 거점도시 육성, 수출지향 정책 수행 등 다양한 국가정책을 함께 추진했었다. 아무튼 새마을운동은 농촌에서 태동되어 지역발전을 크게 이끌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후 새마을운동은 도시로 직장으로 확산되어 부지런히 일하고, 질서를 잘 지키고, 서로 협동하며 궁극적으로 한국경제산업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본다. 세계사에서 전후무후한 압축성장으로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발전되었고, 많은 나라들의 발전모델이 되고 있는데, 그 발전의 원동력 중 하나가 새마을운동이었다고 본다.
새마을운동은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발전을 기원하는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참조 및 실천해가야 할 개념이라고 보아진다. 새마을운동은 농촌의 기본 인프라나 주거환경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하는 개발도상국에서 정부가 최소의 자금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며, 주민들 입장에서는 자기 마을을 스스로 협력하여 개량해 나간다는 자조정신 실현의 장이 되는 것이다. 또한 다툼, 전쟁, 환경오염, 빈부격차 등의 문제에 시달리는 세계의 모든 도시와 지역에게 치유방안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시대는 바뀌었으나 공동체 정신, 근면, 자조정신 등은 지금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근래의 화두인 환경친화적 개발, 자원절약적 생활, 빈부격차 해소 및 커뮤니티 활성화를 추진하는 모든 나라들에게 새마을정신은 크게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다고 본다. 2000년 이후 한국정부는 국제사회에 새마을운동을 지역사회개발운동의 성공사례로 홍보했고, 새마을운동중앙회 등을 통해 아프리카·아시아 개발도상국들에 새마을운동을 적극 보급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새마을운동 관련 기관 및 지자체들이 개발도상국에 단원들을 파견했었다.
필자도 한동새마을아카데미 원장으로 2010년경부터 중국 공무원 및 전문가,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지의 공무원과 외국인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10여 차례 3박 4일 일정의 새마을아카데미를 열었다. 이때, 새마을운동의 역사/이론 강의, 개발도상국 학생들의 사례발표, 그리고 문성리 새마을기념관, 오도리 사방공원, 농업기술센터, 포스코 등을 방문했는데, 이들은 진지하게 보고 느끼며 질문도 많이 했다. 필자는 지금도 ‘유네스코 유니트윈’ 사업의 일환으로 몽골, 네팔, 인도네시아, 가나, 르완다 등 개발도상국가들을 방문하는데, 그 당시 새마을운동의 자취들을 찾을 수 있다. 지금은 국제개발협력에 있어서 한국국제협력단, 농촌진흥청, NGO 등의 활동이 두드러지는데, 새마을운동이라는 명칭이 사라져 있어 아쉬움이 크다. 새마을운동 세계화를 추진하겠다면, 1) 시대가 바뀌었어도 새마을정신을 통한 커뮤니티운동이 크게 가치가 있음을 학문적으로 정립할 필요. 2) 새마을운동이 전국 농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역사임으로 각 마을의 숨은 이야기 발굴. 3) 새마을운동을 통한 농촌개발이 단편적인 사업이 아니라 농촌 인프라 및 주거 향상, 농업기술 및 농산물 생산성 향상, 자조적인 공동체 실현 등 커뮤니티 개발 방향을 종합적으로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함. 4) 해외 새마을운동 사업들이 시작만 해놓거나 단기사업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진행·발전시킬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함. 5) 한국국제협력단 등의 사업들이 새마을운동을 직간접적으로 품고 있다고 보는데, 좀 더 새롭게 새마을운동을 내보일 수 있어야 함 등이 중요하다고 본다.
대경일보 2024년 1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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