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교포 한 이웃 이야기
구 자 문 한동대 교수
평소에도 주변 분들과 격의 없이 대화하는 편이지만, 요즈음에는 만나는 분들과 좀 더 오랜 시간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다. 이는 어색한 분위기를 완화시키기 위한 방안이기도 하지만, 가끔은 이들이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들, 예를 들어 본인의 과거 살아온 삶, 조상들 이야기, 살면서 부딪히는 애환을 들어주고 공감하기 위해서인 경우도 많다. 직업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논문지도하고 취업시켜야 하는 교수이므로 대화의 상대가 학생들일 경우가 많지만, 지금은 그 부담이 많이 덜어진 반 은퇴상태라서, 좀 더 여행도 하고 오랜 기간 습작 중인 컬럼리스트로서의 역할에도 충실하려고 좀 더 다양한 분들과 대화하는 편이다.
이번 미국에서 체재하는 기간 중에는 겨울비가 지속적인 장마에 가까울 정도로 많았고, 집사람이 갑자기 허리와 다리 통증으로 거동이 불편해져서 그 치료차 코리아타운 한방병원에 10차례 다녀오는 등 외에는 바깥출입을 많이 하지 못해서 주로 집에서 청소하고 앞뒷뜰 정리 정도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이번 비에 많은 로스앤젤레스의 집들이 지붕이 새는 등 문제가 컸다고들 하는데, 다행히 우리 집은 2~3년 전 지붕공사를 새로 해 문제가 없었다. 지붕공사는 20~30년만에 한번 하는 게 보통이지만, 10여년이 지나면 새는 곳들이 생겨 대부분 루핑시멘트로 샐만한 곳을 때우거나 일부 지붕을 새 루핑으로 바꾸기도 한다. 필자의 경우에도 방학 때마다 미국집에 오면 지붕이 오래되어 샐만한 곳을 수리하는 것이 하나의 일정이자 과제였는데, 몇 년전 부터는 일부 지속적으로 새는 곳이 생기고 고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비가 심하게 올 때마다 불안했었다.
새로 지붕공사를 하기 위해 여러 곳에 견적을 내 보니 그 비용이 좀 차이는 있지만 만만치 않은 가격이었고, 시정부에 허가도 신청해야 했었다. 이 때 큰 도움을 준 분이 우리 동네에 계신데, 서울 출신으로 대학 저학년때 입대하여 베트남전에도 참전하고, 그후 곧바로 서독광부로 갔다가 나중에 미국으로 이민을 간 분이다. 이분이 직접 히스패닉 지붕공사팀을 직접 감독하면서 지붕공사를 저렴·양호하게 끝내주신 것이다. 이분이 미국에 온 것은 독일에서 파독 간호사분과 결혼하고 아들 둘을 얻은 후였다고 한다. 독일에서 틈틈히 전기기술을 배워 1980년에 미국에 와서는 크고 작은 전기공사로 사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필자가 이분을 알게 된 것은 한인 광고책자를 통해서 조그만 전기공사를 의뢰한 것이 기회가 된 것인데 지금부터 15년은 된 것 같다.
슬하에는 아들 둘과 딸 둘을 두었는데, 이제는 모두들 결혼을 하고 수간호사이던 아내 분도 은퇴했다고 하는데, 이분은 아직도 의뢰가 오는 소규모 전기공사는 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이일 저일로 바쁘신 것 같다. 우선은 베트남전 참전용사이자 그 당시 전투에서 미군들이 제초제로 살포하던 고엽제(Agent Orange) 피해자로서 그 모임 관련 일도 하며 그 협회 모자도 쓰고 다니신다. 그 당시는 누구도 그 폐해를 잘 몰랐기에 비행기에서 이를 살포하면 일부러 온몸에 바르기도 했는데, 그러면 모기 등 해충이 달려들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들마다 증상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은 고엽제 휴유증을 지니고 있는데, 이분은 고엽제 맞을 기회 적은 포병이었음에도 증세가 후에 피부병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미국에 거주하는 베트남전 참전 한국군용사들은 이곳에서도 모임을 가지고 우리 한국의 발전을 많이들 걱정하고 있었다.
이분은 파독 광부 친선모임에도 참여하며, 이번 봄에도 동부인하여 과거 동료들이 살고 있는 독일을 방문할 것이라고 한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매우 가난했는데, 독일로 파견된 우리나라의 광부들과 간호사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오버타임 일을 하며 돈을 벌어 국내로 보내며 우리 한국 발전의 큰 밑거름이 된 것이 맞다. 그 당시의 모습이 과거 한국 대통령의 독일 방문시 찍힌 필름이나 그 유명한 영화 ‘국제시장’을 통해서도 엿본 바 있다. 물론 이분은 한국에도 자주 가는 편인데, 물론 노령층이기도 하지만 베트남전 참전용사라 하여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사회적인 대우는 좋은 편이라고 한다. 이분은 십여년전에 신학교를 나오고 목사안수도 받으셨는데, 본격적인 목회는 하지 않아도 이와 관련된 교회나 신문사의 모임에는 자주 참석하시는 것 같다.
필자는 고교동창회 홈페이지에도 자주 들어가 보는데, 그곳 블로그 난에 미국에서의 사진과 글로 일상을 알리는 은퇴생활을 즐기는 한 선배가 계신데, 매우 유머러스하고 컴퓨터 네트워크 및 보안분야 실력자로 여겨진다. 이분이 미국 중서부를 여행하는데, 한 작은 건물에 북한 인공기가 크게 내 걸려 있어, 일부러 주인을 만나 한반도기라면 몰라도 인공기는 너무 하지 않느냐고 질문을 하니 좀 젊은 주인이 매우 거칠게 대응하더라는 글을 읽은 적 있다. 이처럼 미국은 누구나 자기 의사표현이 가능하고 소위 적국의 깃발도 내걸 수 있는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이다. 그러면서도 세계를 리드하는 강력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월남전 참전 및 독일 광부 출신의 이웃분은 보수주의적 경향의 재미 원로그룹에 속하고 다양한 애국 활동을 벌이는 중이다. 이분 또 하나의 소원은 구한말 주변 강대국들이 우리나라를 지배하고자 벌이는 암투상황에서 변혁세력, 이를 막고자 했던 수구세력, 그리고 조선황제 사이에서 직접 중요한 사건에 관여되었던, 사실상 숨겨져 있던 본인 할아버지의 삶을 좀 더 새롭게 조명하고 알리는 것이라고 한다.
영남경제 2023년 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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