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해읍 이야기

흥해읍 이야기

구 자 문 한동대 교수
  흥해읍은 인구 4만이 않되는 작은 지역으로서 51만 인구를 지닌 포항시의 한 부분이다. 이곳에도 많은 마을들이 있는데, 우선 중심지인 흥해도심이 있고 아마 70% 이상의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살고 있을 것이다. 지난 25년여 포항시 흥해읍 남송리에 직장을 두고 있어서 그래도 자주 흥해도심에 나갈 기회가 있었다. 주로 점심을 먹으러 가거나 단골로 다니는 의원과 약국에 다니는 것이다. 점심은 주로 학교에 있는 여러 식당에서 먹거나 지금 살고 있는 인근 장량동에서 샌드위치, 쓰시, 두부조림, 매운낙지 등을 먹게 된다. 하지만 반대방향인 흥해에도 가끔 가는데, 주로 김치찌개나 추어탕을 먹기 위해서였는데, 요즈음은 지인이 오픈한 작은 수제 햄버거집 스웩버거에 가기도 한다. 이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고품질의 생고기 한우버거인데, 준비 시간이 좀 오래 걸려서 미리 전화로 예약하고 간다. 물론 배달을 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요즈음 이곳 흥해 중심을 돌아보니 필자가 자주 가던 식당들 말고도 이 골목 저골목에 다양한 식당들이 꽤 많이 포진되어 있었다.

  이곳 사는 지인을 따라서 지난번에는 포항지역에서 보기 드믄 7번 국도 옆 생선찌게집에서 갈치찌게를 먹은 적이 있다. 이곳에서는 서울이나 내륙지방과는 달리 활어를 중심으로 회를 떠서 먹을 뿐, 전통적인 생선찌게집은 찾기 힘들다. 며칠 전에도 이분과 골목 안쪽 찾기 힘든 곳에 위치한 한 해물집에서 물곰탕을 먹게 되었다. 물곰탕은 심해어로서 고기가 부들부들하고 이곳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었는데, 필자도 몇 차례 먹어 보았지만 그리 감동을 느끼지 못한 편이었는데, 이날 이 집에서 물곰탕을 시키게 되었다. 역시 흐물흐물한 국같은 음식이 큰 그릇에 담겨 왔는데, 오랜만이라서인지 맛있게 먹은 것 같다. 원래대로 뼈며 일부 젤 같은 것들을 일부 남겨 놓았더니, 이분 말이 ‘이것 다 콜라겐인데 않드세요?’ 이분 말대로 좀 더 먹기는 했지만, 다 먹기는 힘들었는데, 이 또한 특색있는 지역음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진 이후에 흥해지역에 재개발/재생사업이 진행되고 있고, 흥해시장도 활성화를 위해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흥해지역은 명칭은 바꾸기도 했지만 신라시대부터 존재해오던 마을이다. 서라벌에 가깝기는 하지만 이웃 청하까지만 해도 고구려의 힘이 미치던 곳이고 흥해 일부에는 두나라 중간정도에 위치한 부족국가들이 존재했다고 들었다. 아무튼 흥해는 동해안에서 보기 드문 넓은 들을 지니고 있고 산기슭 이곳저곳에 부유한 마을들이 많다.

  지난 수요일 오후 필자가 소속된 연구소의 한 연구원과 흥해들에 위치한 두어 마을을 다녀왔다. 처음 간 곳은 덕장 2리로 들판에 있는 마을인데 입구에는 여러 개의 중대형공장들이 세워져 있었지만, 안쪽으로 들어가니 마을회관도 2층으로 잘 지어져 있고, 집들도 근사했다. 한 노인분을 만났는데, 이분은 과거 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 흥해지역 대표위원도 했던 분이라는데, 아직도 농사를 짓고 있고 여기저기에 전답과 임야를 소유하고 있었다. 혹시 잘 쓰지 않는 땅이 있으면 청년들과 무언가 해볼 만한 것이 없는지 살펴보기 위해 방문한 길이었는데, 주변에 아주 괜찮아 보이는 부지가 있어서 이모저모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이왕 간 김에 이분 차를 타고 금장리 골짜기를 타고 올라 몇만 평에 이르는 이분 선산에 갔는데, 경주김씨 한 분파의 묘소들을 7~8대 이상 한곳에 모셔놓고 있었다. 이분 말을 듣고 보니 우리 집안 어른들의 말씀도 생각났다. 묘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면 바쁜 자손들이 언제 다 돌아보느냐? 한곳에 모여있어야 소풍 온 것처럼 날 잡아 만나기도 하는거지. 필자의 능성구씨 판안동파 보령계도 청라면 장산리 청천호수 뒤편 한 산봉우리 아래 여러 대가 자리잡고 있는 것은 그러한 이유이고 필자의 선친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애를 쓰셨다.

  그후에는 산기슭에 자리한 이웃 마을인 덕성리로 갔다. 이곳은 이 대통령 생가로도 알려진 마을인데, 우리는 그 입구에서 한 아름다운 장소를 찾았다. 이곳은 지난번 칼럼에서 소개한 곡강 최씨 문중 여러 파들 중 한 집안의 어른들을 모신 곳이다. 이곳도 산야 몇만 평에 달하는 곳인데, 입구 부근은 친척들이 묘지관리 겸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이처럼 흥해읍 요소요소에는 역사 깊은 집안도 많고. 집안 소유의 산이며 전답들이 여기저기 존재한다. 이를 지키는 종친대표들도 대부분 연세가 들어 이제 새로운 세대로 바뀌는 상황이다. 필자의 고교선배 한 저명한 사업가는 사회에 좋은 일도 많이 하지만 고향인 경남 한마을에 고택을 재건하고 주변을 아름답게 꾸며 많은 이들이 찾고 집안의 자랑이 되고 있다. 모든 집안이 그렇게 할 수는 없겠지만, 다른 나라와 차별되게 우리나라에 잘 남아 있는 우리의 역사이자 문화인 족보며 집안내력들을 잘 보전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필자의 선친께서는 10년전 작고하셔서 청라면 장산리 선산에 묘지가 있는데, 서울 사는 형제들과는 달리 포항에 사는 필자는 자주 가뵙지 못해서 송구스러울 뿐이다. 필자의 장모님은 뒤늦게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시기도 했지만 비교적 젊은 나이인 30년전 돌아가셔서, 그 당시 우리 식구들이 살고 있던 로스앤젤레스 교외 ‘포리스트론’에 모셨는데, 이는 대규모 묘지로서 많은 이들이 모셔지고 많은 식구들이 찾아오는 장소이다. 우리나라도 앞으로는 이러한 대규모 묘지들이 개발되어야 할 것 같다. 그곳이 아름답게 꾸며지고 자손들이 공원 같이 찾아갈 수 있도록… 이날은 흥해도심에서부터 변두리 이곳저곳을 돌아보면서 이곳의 역사와 발전 그리고 선조들의 자취를 생각을 해 본 의미 있는 하루였다고 생각된다.  

영남경제 2022년 10월 23일


코멘트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