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수목원의 역할
구 자 문 한동대 교수
시민들이 쉽게 갈 수 있고, 2~30분은 산책할 수 있는, 갖가지 나무들, 집 주위에서 항상 보지만 무심코 지나치는 이름 모를 나무들을 포함하여 많은 종류의 나무와 꽃들에 이름표가 달리고 가끔은 꽃말까지 새겨진 수목원이 있다. 꽤 넓어 보이는 저수지는 역사가 오래되어 수초도 많지만 월척 물고기들이 많다. 낚시하는 이들이 없으니 물고기들이 더욱 번성하는 것이다. 여기저기 새들이 먹이를 찾고 있는데, 15~20년전 이 수목원이 조성되기전만 해도 그린벨트지역인 이곳에 철새인 청둥오리들이 떼지어 몰려오고 있었다.
햇빛이 나지만 며칠간 내린 비로 아직은 축축한 나무와 수풀 사이 난 작은 포장도로로 꽤 많은 이들이 산책하고 있다. 수목원 밖으로는 높고 낮은 아파트, 빌라, 학교 등이 보이지만, 이 수목원은 주변의 꽤 높다란 산맥과 연결되어 새와 토끼들은 물론이고 사슴들도 살만한 녹색 생태계가 꽤 길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이 수목원은 일종의 테마공원이면서도 대도시에서 보기 드문 자연생태계의 보고라고 할 수 있는데, 부모님 댁 근처에 위치해 있어서 서울 갈 때마다 시간 내어 찾아오는 곳이다.
다음날은 새벽 내 비가 내려서 부모님댁 빌라의 맨 아래 반지하 방에서 홀로 듣는 빗소리는 창가 플라스틱 창 지붕 때문에 더욱 크게 들려온다. 하지만 오전 9시를 넘어서자 비가 개이고 해가 나서 간단히 챙겨 입고 썬글라스에 모자를 쓰고 수목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아침이니 커피 한잔 빠질 수 없지. 수목원 입구 쪽 부속건물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작은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 한잔 시켜 들고 호숫가 벤치에 앉았다. 늦가을이지만 계절이 늦게 찾아온 탓인지 물가는 푸른 빛이다. 수초와 주변의 수림대가 푸르게 비에 젖어 있다. 새 우는 소리가 들린다.
서울의 좀 교외지역이라고 볼 수 있는 곳이어서 내가 사는 포항 교외 부도심이라고 볼 수 있는 양덕동 인근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포항은 서울과 같은 1,000만 도시가 아닌 50만의 중소도시이며 수도권에서 먼 동남해안에 위치한 도시인데, 도심과 부도심이 좀 혼잡하다고 할 수는 있어도 주변의 산야가 녹지대로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이들 도심과 부도심에 제대로 가꾸어진 공원이나 수목원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이곳에도 시민들이 자주 방문할 수 있고 편안함과 교육적인 효과를 줄 수 있는 서울푸른수목원 같은 잘 가꾸어진 공원들이 한둘 생겼으면 좋겠다.
물론 포항 도심에 환호해맞이공원 같은 넓은 도심 녹지공원이 있고, 교외지역에 전국에 알려진 기청산농원과 경북수목원이 존재하지마는 시민들의 활용도 면에서 가치가 떨어지는 편이다. 물론 많은 이들이 자주 방문할 수 있느냐는 차원에서의 평가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환호해맞이공원의 일부라도 좋고, 한동대와 에코프로단지 중간 쯤에 위치한 천마산/천마지지역 등을 서울푸른수목원과 같은 곳으로 조성해도 좋을 것이라고 본다.
요즈음 지속가능한 개발과 지속가능한 사회를 언급하는 분들이 많고 종합적 내지 포용적 개발개념을 자주 사용하는데, 지금까지 힘써 왔던 분야만이 아니라 주변의 연관된 분야들도 함께 생각하자. 경제만이 아니라 문화사회적인 부분들도 함께 생각하자. 주류를 이루는 그룹들만이 아니라 가난하고 대우받지 못하는 그룹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이들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자. 혹은 생태계의 각 요소들이 서로 Win-Win 할 수 있는 사회를 조성하자는 의미라고 본다.
이 수목원을 걷다 보면, 평소에도 그러하지만 명절 때는 더욱 많은 이들이 가족들과 함께 찾는 것 같다. 이왕 친지·가족들이 만날 김에 좁은 집안에서 먹고 마시지만 말고 함께 걸으며 경치도 감상하며 가족들끼리의 우애를 다지자는 것이리라. 고부간의 갈등도 형제들끼리의 어색함도 함께 걸으며 사진도 찍어주며 가족들 간의 관계회복의 장이기도 할 것이며, 결혼식 전에 친구들끼리 모여 사진을 찍으며 행복한 결혼을 축하하는 장소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이곳은 빈부격차도 남녀 차이도 보이지 않는 평화로운 포용적인 장소이기도 할 것이다.
90대 중후반의 고령이신 필자의 어머님도 몇 년전만해도 휠체어를 타고 식구들과 함께 이곳을 방문하시기도 했는데, 주변의 아름다운 꽃과 수목들을 보시며 좋아하셨고 사진 찍기도 좋아하셨다. 요즈음은 몸이 좀 편찮으셔서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계셔서 안타까움이 큰데, 가끔 날이 좋을 때 식구들과 수목원까지는 가지 못하지만, 거주하시는 빌라촌 내 도로를 휠체어를 타고 잠시 돌아보시기도 하신다. 빌라촌이 약간 높은 언덕배기에 위치해서 멀리 수목원이 내다보이는 곳도 있는데, 동행한 여동생 말에 의하면, 수목원 주변에 몇 년 사이 높다랗게 세워진 아파트들을 보시고, 예전과 다름을 알아채셨는지, 저것들이 무어냐고 물으시더라고 했다. 그곳까지 가보시면 좋으실텐데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아무튼 이 수목원이 알게 모르게 많은 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것이다. 이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이 도시의 자연생태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포항의 도심과 부도심에도 이러한 수목원이 생겨나기를 기대해본다.
대경일보 2021년 10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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