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서 몇 개 영화 감상 후 우울해지다

비행기에서 몇 개 영화 감상 후 우울해지다

구 자 문 한동대 명예교수
  인천-로스앤젤레스 비행시간이 갈때는 10시간이지만 돌아올때는 13시간이나 걸린다. 해외여행을 많이 하므로 장시간 비행에 익숙하지만 지루하고 힘듬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복도 쪽 좌석을 택하여 자주 화장실에도 가는 등 일어나 걷기도 해 보지만 기내가 좁고 사람이 많으니 그리 쉽지가 않다. 과거에는 비행기 안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써보기도 하고, 때로는 한잠 자려 노력도 했으나, 요즈음은 좌석 앞에 붙은 조그만 스크린을 통해서 클래식 영화들을 골라서 감상하는데, 두어개 보고 나면 그래도 시간이 빨리 가는 편이다. 이번 귀국 시 밤비행기가 아닌 낮비행기를 이용하니 아침시간이라 공항가는 길이 너무나 막혔는데, 공항 안은 의외로 한가해 수속은 빨랐다. 오전 11시에 로스앤젤레스공항을 출발해 13시간 비행을 마치면 다음날 오후 5시 20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하게 된다. 이륙하고 기내식이 나오고 긴 시간 어두운 기내에서 10여 시간을 보내면 다시 기내식이 나오고 곧 착륙이 가까워진다.

  예전처럼 영화와 다큐멘터리 쪽을 뒤져 보는데, 필자가 주로 보는 것은 클래식 영화들이다. 그동안 보았던 것은 많은데 벤허, 벤허 뉴 버전, 닥터 지바고, 로마의 휴일, 벡투더휴처 등인데, 이번에도 여러 개를 섭렵하다가 새로운 것들이 없어 ‘탐 크루즈’와 ‘켄 와타나베’ 주연의 ‘라스트 사무라이’를 보기로 했다. 이 영화의 주제는 이미 잘 알려졌지만, 일본 정부의 초빙교관이던 미 육군 대위 ‘알 그렌’이 사무라이 리더 ‘카츠모토’와 그가 이끄는 반란군에게 동화되어 그들의 신념과 무사정신을 존중하게 되고 그들과 함께 정부군과 싸운다는 내용이다. 일본의 서구화를 가속화시키고 또한 개인의 영달을 위해 일 황제의 측근들은 사무라이 집단을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알 그렌은 뜻밖에도 사무라이에 대해 연민과 동질의식을 느끼고 있음을 깨닫고 이들과 동조한다. 대포와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수적으로 월등한 정부군과 전투를 치르고 수많은 이들이 사망했는데, 알 그렌과 카츠모토 역시 부상 당한다. 둘은 자신들의 패배를 직감하고 생존한 이들을 재정비하여 최후의 기병 돌격을 가했으나 이들은 제국군의 포격과 사격에 쓰러져 갔다.

  우리 한국을 침략했던 일본 이야기이고, 유명 스타인 탐 크루즈를 내세운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을 찬양하는 듯한 헐리우드 영화였지만, 많은 장면들과 나레이션들이 큰 감동을 주고 있음은 사실이었다. 사무라이 그룹의 리더인 카츠모토가 자기네 가문이 1,000년 전에 세운 사찰을 지니고 있고, 그때부터 황제를 받들었다는 말을 듣고, 이들이 백제계나 고구려계 일수밖에 없다고도 생각했다. 불과 수백년 이전만 해도 황제가는 일본열도의 수많은 지방군웅 세력 중 하나 정도일 정도로 미약했었는데, 18세기 지나며 가장 강한 그룹으로서 황제 칭호와 함께 일본을 통치했었다. 이들 지배계급은 분명 한국계라 생각된다.

  시간이 많이 남아서 다시 고른 영화는 ‘진주만’, 이는 이차대전 당시 일해군 전투폭격기들이 미 하와이를 공격했던 진주만을 배경으로 한 영화였다. 그 당시 미국은 이차대전에 참전하지는 않았으나 중국과 동남아를 침략하고 독일과 동맹이던 일본의 해외 진출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했다. 미국이 그 당시에는 중립을 선언하고 있어서 직접 전쟁을 하지는 않았지만 원유수입을 못하게 하며 일본의 진격을 저지하려 했다. 일본은 미국의 시도에 진주만을 습격하기로 결정한다. 미국 정보기관들도 이를 파악하긴 했지만 정확한 물증이 부족했다. 미 해군은 함선들이 대거 정박된 진주만의 수심이 낮아 일본군이 어뢰공격을 못할 것이라고 안심하고 있었다. 1941년 12월 7일 아침 진주만에 일본군이 기습공격 해올 때, 하와이의 미국인들은 상황을 모른 채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다, 정박한 함정들이 삼나무로 만든 꼬리날개 달린 어뢰를 맞으면서 일상이 깨진다. 이때 두 명의 우수하고 애국심 찬 미 파일럿 둘과 간호사인 한 여인이 이곳에 있었으니, 이들의 운명처럼 전쟁과 함께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영화의 여러 장면들에 이끌리며 감명을 받으면서도 좀 우울한 기분이 든 것은 왜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영화를 만들만한 주제들이 없는 것인가? 물론 고구려를 세운 주몽과 만주를 호령했던 광개토대왕,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 임란때 일본함대를 크게 무찌른 이순신 제독, 일제강점기의 독립전쟁 영웅들, 그리고 근세의 6.25전쟁의 영웅들을 주제로한 영화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오래전 신화 같은 내용이 아닌, 비교적 근세의, 동족이 이념에 갈려 싸우던 좀 다루기 예민한 내용도 아닌, 우리 한국민들의 비참함/추잡함을 보여주는 내용이 아니고 너무 국뽕적인 내용도 아닌, 좀 더 세계인들이 보면서 한국의 역사에 감탄도 하고, 좀 더 받아들이기 쉬운 주제들로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역사에서 그만한 주제를 찾기 힘들 것 같았다.

  근래 국제적으로 유명해진 ‘대장금’ 같은 한국의 드라마, ‘오징어 게임’ 등 히트 영화들이 소소한 즐거움을 줄지언정 우리 한국인과 세계인의 가슴을 울리는 주제라고 할 수 있는가? 이순신 제독을 그린 많은 영화들이 국내에서는 히트를 치지만, 그 당시 조선조정의 비겁한 권모술수, 비참한 국민들의 모습들을 다 그린다면 국제적인 히트를 치지는 못할 것 같다. 고려 때 삼별초의 대몽항쟁과 숨겨진 이야기들, ‘태국기 휘날리며’, ‘인천상륙작전’ 등 동족상잔의 6.25전쟁, 패전으로 공허해진 월남전 당시 한국군의 용맹함, 조선말 외세에 시달리던 미약한 우리 정부와 일제에 나라를 빼앗김 등 주제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제들 속에서도 ‘라스트 사무라이’ 같이 좀 단순하면서도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는 그러한 영화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인가? 아무튼 큰 감동과 함께 영화에 매료되면서도 한국인으로서 크게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영남경제 2025년 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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