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디나 헌팅턴 라이브러리에 가다
구 자 문 한동대 명예교수
파사디나에 있는 ‘헌팅턴 라이브러리(The Huntington Library, Art Museum, and Botanical Gardens)’에 갔다. 아이들이 어릴 때인 30여년 전에 두어번 가보고 오랜만에 다시 가게 된 것이다.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꽃과 숲이 우거진 라카냐다의 ‘디스칸소가든’에는 요사이에도 몇 차례 가보았으나, 20분 거리에 있는 더 규모가 큰 헌팅턴 라이브러리에는 가볼 기회가 나지 않았었다. 이번 미국에 와서 ‘운동하다 다리 다쳐’ 치료 중인 둘째 아이를 돌보느라고 라크리센타에서 칼스배드까지 일주일 간격으로 가고 오고를 반복하느라 어려움이 많다고 생각한 탓인지, 이웃 동네 라카냐다에 사는 집사람의 오랜 친구인 미세스 리 부부가 초대하여 헌팅턴 라이브러리에 다녀오게 된 것이다.
이분들이 우리 집까지 데리러 왔기에 그분들 차에 타고 후리웨이가 아닌 동네 길을 구경하며 운전해 갔는데, 큰 키 나무숲 우거지고 거대한 집들이 줄지어 있는 라카냐다를 지나 파사디나로 접어들게 되고, 저명한 디자인 스쿨인 ‘파사디나 아트 센터 칼리지’를 옆으로 끼고 돌아 좀 가니 미국 최고 수준의 연구중심공과대학 ‘칼텍’이 나오고 곧바로 헌팅턴 라이브러리 정문이었다. 우리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입구 쪽으로 갔는데, 아침 9시가 채 되기 전이라 아직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일반인들의 입장료가 1인당 29불인데, 미세스 리 부부가 연중 멤버십을 지니고 있고 친구도 두어명 같이 갈 수 있어서 우리도 무료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분들 멤버십은 큰아들 데이빗이 부모님들 자주 산책하시라고 이곳에 얼마간 돈을 기부하고 구해준 것라고 했다.
헌팅턴 라이브러리에는 희귀한 고문서 1,100만점이 소장된 도서관, 유럽과 미국의 미술품 수만점을 전시한 미술관, 12개의 주제별 정원이 조성된 120에이커의 식물원이 방대한 207에이커(1에이커=1,250평) 부지에 펼쳐져 있다. 이곳에는 세계에서 많은 이들이 대부분 정원을 구경하러 찾지만, 학술연구를 위해 도서관과 미술관을 찾는 학자들이 많고, USC 및 칼텍과 연계한 역사 및 과학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한다. 이곳은 1919년 설립되어 올해로 창설 105년을 맞았는데, 철도와 부동산재벌이었던 헨리/아라벨라 헌팅턴 부부가 설립한 곳이다. 전 세계를 다니며 희귀도서들을 수집한 헨리 헌팅턴은 아내 아라벨라의 영향으로 예술품 수집에도 열정을 기울여 방대한 소장품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중국정원’부터 감상하기 시작했다. 30년전에는 이 정원이 그리 크지 않았는데, 근래 중국으로부터 기부를 받아 넓은 지역에 거대한 건물, 연못, 다리 등이 건설되고, 많은 꽃나무와 분재들이 심어지고 전시되어 있었다. 아침이기에 그렇기도 하지만 우리와 같은 시간에 입장한 분들은 대개 중국에서 단체여행 온 듯한 좀 나이 든 중국인들이었다. 또한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도 대개 중국계로 보였다. 우리도 여러 건물과 정자에서 사진도 찍고 한자로 써 놓은 건물 이름들을 읽어보기도 하면서 ‘일본정원’으로 갔다. 이곳에는 높은 곳에 일본식 건축물이 두세 채 있고, 벚꽃과 대나무가 촘촘히 심어져 있고, 분재를 모아 놓은 곳도 있는데, 전반적으로 차분한 느낌을 주고 있다.
아침 10시가 지나니 입장객들이 좀 더 많아졌는데, 중국인/일본인 관광객들은 물론이고 산책 차 나온 듯한 미국인들도 많이 보인다. 한국인들도 두어 번 마주쳤는데, 사춘기 아들을 데리고 온 젊은 어머니, 그리고 중년 모녀 산책객뿐이었다. 아마 한국교포분들은 토요일에도 아침부터 일하기 바쁠 것이고, 한국 여행객들은 명품아울렛이나 라스베가스를 선호하지 않을까 싶다. 필자는 한국분들도 하루 시간을 내어 헌팅턴 라이브러리의 테마공원과 도서관, 미술관 등을 관람하기를 추천하는 바이다.
우리는 울창한 숲길로 접어들었다. 동남아 밀림에서 본듯한 2~3종류 식물들이 뒤엉켜 하나가 된 높이 50m에 지름 2m의 나무들이 즐비한 ‘정글공원’이다. 이러한 나무들은 좀 작은 규모지만 포항시 신광면 ‘기청산식물원’에서도 본 기억이 있다. 우리는 정글을 지나 널따란 잔디밭에 도달했는데, 이곳에서는 30여년 전 아이들과 함께 뛰놀던 기억도 나고, 그후 70세 무렵이시던 부모님을 모시고 왔던 기억도 난다. 선친께서는 10여년전 돌아가시고, 모친께서는 고령의 나이로 서울의 요양병원에 계신다. 세월의 덧없음을 느끼고 부모님을 그리며 잠시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우리는 ‘사막공원’으로 향했다. 이곳에는 갖가지 둥굴거나 긴 선인장들이 심어져 있고, 갖가지 다육이, 알로베라, 죠슈아 추리 등도 있었다. 필자는 어릴 때부터 선친께서 틈틈히 가꾸시던 선인장들에 익숙해 있어서, 미국집에도 여러 개 심어 놓았었다. 어떤 용설란은 크게 자라 지붕보다 높은 기둥에 꽃을 피우지만 가시가 억세었고, 손바닥 선인장도 보기는 좋지만 역시 가시가 억세어 혹시 아이들이 찔릴까봐 삽으로 두세개 파 없애는데 꽤 힘이 들었던 생각이 난다. 점심시간쯤 되어 우리는 도서관 및 미술관 건물들 앞을 지나 ‘셱스피어 광장’을 거쳐 구내 카페로 갔다. 여기서 커피도 한잔하고, 간단히 샌드위치를 들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는데, 이곳은 분위기도 좋지만 음식도 품질이 좋은 편이라 많은 이들이 찾는다고 한다. 이날 미스터/미세스 리 부부 덕분에 오랫만에 헌팅턴 라이브러리, 특히 여러 종류의 정원들을 방문하며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좀 빡빡한 필자의 일정 때문에 도서관, 미술관 등 관람은 다음 기회로 미루었지만, 전날까지의 피로가 확 풀리는 유쾌한 시간이었다.
대경일보 2025년 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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