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기업의 성장 배경
구 자 문 한동대 명예교수
현재 우리 한국의 삼성, 현대, LG, SK 등 대기업이 각자의 브랜드와 함께 세계에 크게 알려져 있다. 이들이 생산/수출하는 품목들도 자동차, 선박, 핸드폰, 가전제품 등 첨단 기계부터 전자제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한국의 성장을 주도해왔다고 본다. 한국에서 대기업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과 국가 성장에 있어서의 역할은 많은 이들이 연구하는 바이겠지만, 여러 다른 의견들이 존재할 수 있음도 사실이다. 이 시대를 어린 시절부터 보아왔고 관련 분야를 연구해온 필자로서도 이에 대한 나름의 확고한 의견을 가지고 있음도 사실이다. 1948년 건국 이후 한국 정부가 자본주의 시장 경제체제를 채택한 것은 우리나라 경제사의 가장 결정적인 분기점이었다고 본다. 우리 한국은 자본과 천연자원이 극도로 빈약한 상태였다. 1960년대 초부터 정부는 수출지향형 경제모델을 채택하고, 연속적인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행하며 섬유·가발 등 경공업 위주로 시작하여 철강, 자동차, 조선 등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중화학 공업으로의 체질 개선을 추진하고 있었다. 국내 시장이 너무 좁았던 한국은 처음부터 수출지향형 모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글로벌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기업들은 끊임없이 덩치를 키우고 기술을 혁신해야 했다. 한국의 초기 대기업 성장은 정부의 강력한 법적 압박과 파격적인 인센티브가 결합된 ‘탑다운(Top-down)’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1968년에 자본시장 육성법 제정되었고, 1972년에 8·3 사채동결 조치 및 기업공개 촉진법(강제 상장 시행) 등이 이행되었다. 한국의 성장은 대만 등 다른 국가들과는 확연히 다른 ‘선택과 집중’, 그리고 ‘글로벌 시장개척’의 역사였다.
한국과 대만은 모두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렸지만, 발전 전략은 달랐다. 결정적 차이는 ‘대기업 중심’ vs ‘중소기업 중심’이었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대형 브랜드들은 오늘날 한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국가적 자산이 되었다. 비록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과의 양극화나 경제력 집중이라는 과제가 남았지만, 결과적으로 세계 무대에서 글로벌 기업들과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거대한 체급의 기업군을 보유하게 된 것은 한국의 독보적인 경쟁력이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정부가 정책적으로 밀어붙였다 하더라도 목숨 걸고 사업을 일궈낸 민간 창업주들의 도전 정신이 없었다면 한강의 기적은 불가능했다고 본다. 전후 황무지 속에서도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라는 큰 틀 안에서 기업가 정신이 꽃피울 수 있었던 토양이 마련되었기에, 이병철, 정주영, 구인회 등 젊은 창업가들이 무(無)에서 유(無)를 창조하는 꿈을 꾸고 실현할 수 있었다고 본다. 또한 인도처럼 내수 시장에만 주력했다면, 한국 경제에 치명적인 재앙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인도는 거대한 인구 덕분에 내수 중심 수입대체 정책이 유지될 수 있었지만, 한국은 인구도 적고 국민소득도 낮아서, 내수 시장이 턱없이 좁아 공장을 지어 물건을 만들어도 국내에서 사줄 사람이 없었다. 만약 수출을 막고 국내 소비에만 의존했다면, 기업들은 규모를 키우지 못하고 고사(枯死)했을 것으로 본다. 아무튼 우리의 대기업들은 창업 세대의 꿈과 자본주의 체제의 기회, 그리고 독특한 발전 전략이 맞물려 지금의 한국을 만든 셈이다. 대기업의 성공적인 성장은 ‘한강의 기적’을 이끈 원동력이 되었지만, 정부 주도의 압축 성장 과정에서 발생한 대기업 집중지원과 재벌화는 중소기업의 성장 정체와 계열화/종속화라는 부작용을 발생시키기도 했다.
어쨌든 만약 과거 우리 정부의 통치력이 강력하지 못했거나, 대만과 같이 중소기업 중심으로 성장했거나, 수출 주도 전략 대신 수입 대체 전략을 채택했다면 오늘날의 경제 발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는 경제학과 역사학계에서 지금까지도 치열하게 대립하는 흥미롭고도 핵심적인 논제이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만약 한국이 다른 길을 택했었다면 오늘날 세계를 선도하는 글로벌 첨단 산업국가의 지위는 갖추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만약 정부가 강력한 리더십을 지니지 못했다면, ‘자본의 영세성’과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경부고속도로, 포스코, 울산 조선소 등 초대형 프로젝트의 무산을 초래했을 것이며, 산업화의 적기를 놓쳤을 가능성이 높다. 강력한 정부의 밀어붙이기와 국가적 보증이 없었다면, 민간 기업의 힘만으로는 막대한 해외 차관을 빌려오거나 리스크를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1970년대 초반 한국 기업들은 고리사채로 인해 무더기 도산 위기에 처해 있었는데, 정부가 ‘8·3 사채동결 조치’라는 초법적 권한을 휘두르지 못했다면, 기업들은 산업 자본을 축적하기도 전에 금융 비용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을 것이다. 대만처럼 중소기업에 집중했다면, 경제의 안정성과 분배는 훨씬 좋았겠지만, 세계 무대를 호령하는 ‘글로벌 초일류 브랜드’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배경 이외에도 한국인의 독보적인 교육열과 부지런함은 그 뼈대에 살을 붙이고 피를 돌게 한 가장 강력한 엔진이었다. 여기에 미국의 글로벌 시스템과 일본의 경제 발전 모델이 내비게이션 역할을 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미국은 한국이 자본주의 시장 경제 체제 안에서 안심하고 성장할 수 있는 거대한 글로벌 무대와 안보적 환경을 제공했고, 한국 정부와 대기업은 가장 가까운 성공 사례인 일본의 ‘고도성장 모델’을 철저하게 벤치마킹했었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성공은 어느 한 가지 요인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미국·일본의 시스템과 시장’ + ‘정부의 수출지향 전략’ + ‘대기업 창업주들의 기업가 정신’ + ‘국민들의 폭발적인 교육열과 근면함’이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갔기 때문에,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경제산업 발전을 이룩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세계정치경제상황과 극심한 무역경쟁,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국가정책은 자칫 잘못하면 나라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만큼, 힘들게 이루어낸 번영을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유지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가 큰 과제일 수밖에 없다.
영남경제 2026년 10월 18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