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년 새해를 맞으며
구 자 문 한동대 교수
새해가 시작되었다. 코비드19 팬데믹상황에 세계인 모두가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한해가 지나고 새해를 맞게된 것이다. 새해인 2021년에는 지난 한해 내내 우리를 어렵게 했던 팬데믹상황이 크게 호전되고 그 이전과 같은 경제사회문화로 되돌아 갈수 있기를 기원한다. 매년초 이맘때는 가족들이 머무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휴가를 보내는 필자이지만 올해는 오랫만에 한국 포항에서 새해를 맞는다. 새해아침 첫해가 뜨는 영일지역 (迎日地域)에서 영일(迎日)하게 된 것이다. 포항은 과거 영일군의 일부였다. 물론 이 영일이라는 명칭은 해를 맞는 지역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영일지역은 삼국시대에는 신라의 근오지현(斤烏支縣)이었는데, 고려 건국 후 940년에 영일현(迎日縣)으로 칭하면서 생겨난 명칭이다.
매년 전국의 해맞이명소들은 새해 첫 일출을 보기 위해 많은 이들이 모여든다. 특히 포항은 동해 넓은 수평선으로부터 붉게 떠오르는 태양을 지켜 볼수 있어서, 더구나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영일(迎日)할 수 있어서 유명해 진것이다.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지난해의 다사다난함을 벗어버리고 새해의 각오를 다지는 습관이 예로부터의 전통이라고 보는데, 요즈음 같은 대규모 축제화한 풍습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라고 한다. 1995년에 방영된 드라마 \’모래시계\’가 열풍을 일으키면서 ‘정동진 해돋이 열차’가 생겨났는데, 이를 통해 새해 첫날이면 정동진의 넓은 백사장이 인산인해를 이루게 되었고, 일년내내 많은 이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그후 전국에 해맞이명소가 우후죽순(雨後竹筍) 생겨났고, ‘해맞이마케팅’을 펼치면서 해맞이풍습, 특히 새해 첫날 해맞이가 우리나라에 크게 자리를 잡게 된 것이라고 한다.
과거 우리나라에 새해첫날 해맞이풍습이 기록에 없었고, 오히려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신년해맞이풍속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이를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우리나라에 해맞이풍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에도 해맞이를 특별히 여기는 풍습이 존재했음을 다양하게 찾아 볼 수 있다. 그 당시에도 동해 낙산사, 해금강 총석정, 지리산 천왕봉 등은 누구나 한번쯤 찾아가고 싶어 하는 일출명소였다. 이곳을 찾았던 많은 이들이 글과 그림을 남겼는데, 조선시대에 가장 알려진 것은 의유당 남씨(意幽堂 南氏)의 \’동명일기(東溟日記)\’이다. 영조 45년(1796) 함흥판관으로 부임한 남편을 따라 함흥에 살게 된 의유당이 동해일출을 보고 쓴글이다. “이윽고 날이 밝으며 붉은 기운이 동편 길게 뻗쳤으니, 진홍대단(眞紅大緞) 여러 필을 물위에 펼친 듯, 만경창파 일시에 붉어 하늘에 자욱하고…”로 시작하는 일출묘사는 그시대 가사문학을 대표하는 문장으로 손꼽힌다.
선조19년(1586)에 선비 양대박(梁大樸)은 지리산에서 일출을 기다리며 한밤에 일어나 날씨맑기를 기원했다. 그 덕분인지 “붉은 구름이 만리에 뻗치고 서광이 천 길이나 드리운” 일출을 보고 \’두류산기행록(頭流山紀行錄)\’을 남겼다. 또 다른 일출 명소인 해금강 총석정을 찾은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도 일출을 기다리며 잠을 설쳤는데, 다행히 어둠을 뚫고 솟아오르는 태양을 목격하고 그 장엄한 모습을 ‘총석정관일출(叢石亭觀日出)’이란 시로 남겼다.
조선시대 화가들도 해돋이그림을 많이 남겼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를 개척한 정선(鄭敾)도 해돋이그림을 여럿 남겼다. 정철은 \’관동팔경(關東八景)\’에서 노래한 낙산사의 일출을 담은 ‘낙산사도(洛山寺圖)’, 서울 남산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그린 ‘목멱조돈(木覓朝暾)’, 강원도 고성 삼일포의 해돋이 풍경을 담은 ‘문암관일출도 (門巖觀日出圖)’ 등을 남겼다. 19세기에 왕실 화원이었던 백은배(白殷培)는 함흥 해안의 거북이 머리처럼 돌출된 절벽 전망대이자 함흥십경(咸興十景) 중 하나인 구경대(龜景臺)의 일출을 그렸다. 거북이 머리처럼 돌출된 구경대 위에 갓쓰고 도포입은 선비들이 손을 뻗어 솟아오르는 붉은 해를 가리키며 감상하고 있다.
사실 일제강점기로 인해 억하심정의 우리 한국인들로서 일장기 내지 욱일기를 보고 기분이 좋을리없다. 하지만 지금 세대 누구도 일출을 보면서 일제(日帝)를 연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들은 그들이고 우리는 우리인 것이다. 바닷가나 높은 산중 마을이 해맞이명소로 자리잡는 것은 나쁘지 않은 현상이다. 많은 방문객들이 해돋이를 보며 새해의 결의를 다지는 것도 나쁜일이 아니다. 특히 포항과 같은 도시가, 또 다른 이름이 영일인 도시가, 더구나 넓고 푸른 동해에서 떠오르는 아침해를 맞을수 있으니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한 것이냐. 더구나 전국의 많은 이들을 불러모으는 영일의 장소로 브랜드화되니 크게 경축할 사안인 것이다. 올해는 코비드19의 영향으로 정기적인 새해해맞이축제는 거행되지 못했지만, 많은 이들 가슴에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찬란한 아침해가 떠오르는, 1년 365일 내내 가슴확트이게 넓다란 동해 수평선으로 부터 아침해를 맞을 수 있는, 그리고 카메라며 셀카로 그 모습을 담을 수 있는 영일의 고장인 포항이 남아 있을 것이다.
영남경제 2021년 1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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