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뉴딜정책에서 배울점은?

                                           미국의 뉴딜정책에서 배울점은?
                                                                                            구 자 문 한동대 교수
  대공황 당시 미국은 경제에 대한 국가개입을 최소화하는 ‘자유방임주의’ 노선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공황이 시작되고 경제가 급속히 기울어가자 1932년 대통령후보로 나선 루스벨트는 \’뉴딜(New Deal)\’을 구호로 내걸었다. 뉴딜은 카드게임에서 ‘카드를 바꾸어 새로 친다’는 의미라는데, 이는 미국이 견지하던 자유방임주의를 포기하고, ‘케인즈’의 이론에 따라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경제불황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이 대공황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그 당시 시대상과 자본주의의 발달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고, 그 당시 시민들의 어려움은 영화를 비롯한 각종 매체를 통해서 엿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대공황 극복을 위한 뉴딜정책이 실시됨으로 인해 시장경제에 정부의 개입이 본격화되었다. 뉴딜정책의 핵심은 3R, 즉 Relief(구제), Recovery(회복), Reform(개혁)이었다. 오늘날 미국은 시장원리에 따라 개인이나 기업이 대부분의 생산요소를 소유하면서 자율적으로 경제문제를 해결하고 있으며, 정부는 부분적으로 규제하고 조정하는 방식, ‘수정자본주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1932년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루스벨트는 정부가 경제에 직접 개입하여 생산을 통제하고 소비를 끌어올리기 위한 각종 정책들을 추진하였다. 그는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개입만이 대공황을 이겨낼 탈출구라고 확신했고 의회와 긴밀하게 협조하여, 취임 후 100일 동안 많은 개혁안을 통과시켰다. 그는 은행과 금융권을 바꾸었고, 농업부흥에 힘썼으며, 노조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그는 \’긴급은행법\’을 마련하여 재기 가능한 은행의 구제와 금융제도 정비에 착수했고, 이어 \’관리통화법\’을 마련하여 통화에 대한 정부규제를 강화하였다. 또한 그는 대공황으로 큰 타격을 받은 농민들의 문제해결을 위해 \’농업조정법\’을 마련했는데, 이는 과잉생산된 농산물을 정부가 매입하는 동시에 농업생산량을 조절하여 농산물의 가격하락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어 그는 \’산업부흥법\’을 마련하여 각 산업 부문마다 생산량과 최저가격을 정하였으며 기업간 과열경쟁을 억제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는 도로, 제방, 교량, 공항, 철도 등의 건설로 비숙련노동자들을 포함한 많은 실업자들을 고용하면서 국가 주도의 공공사업들을 벌였다. 그 예가 테네시강 유역개발과 같은 종합적인 지역개발사업인데, 이 대규모 SOC사업들이 전술한 다양한 정책들과 함께 대공황으로 큰 타격을 입은 미국을 ‘구제’하고 ‘회복’시켜 준 것이다.  

  이 같은 정책들의 추진으로 대공황이 어느 정도 진정되고 경제회복의 기미가 보이자 정부는 \’사회보장법\’을 제정했는데, 이는 노인연금과 실업자수당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을 규정한 것이었다. 이어 1936년 재선된 루스벨트는 \’와그너 법\’을 제정하여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인정하였고, 최저임금제와 주40시간 근로제 등을 도입하였다.

  뉴딜정책으로 인해 미국경제는 1933년~1937년까지 4년 동안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때 미국의 GDP는 년간 평균 5.2%의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공공사업들은 국민의 소득과 지출을 향상시키며 내수경기를 진작시켰다. 그러나 뉴딜정책으로 끝이 보일 듯하던 대공황이 1937년을 기점으로 다시 불황에 빠져들었다. 실업율이 다시 20%를 기록했고, 10년 동안 계속 된 흉년이 농민들을 괴롭히며 미국은 다시 심각한 경제불황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처럼 뉴딜정책이 한계에 도달하고 다시 경기불황으로 힘들어졌을 때 독일이 폴란드를 공격하면서 제2차세계대전이 시작된 것이다. 이때 ​미국은 중립을 지키기로 결정하고 연합국 측에 무기수출을 추진했는데, 결과적으로 이 제2차세계대전이 미국경제를 불황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해주었던 것이다.

  전쟁으로 인한 식량수요는 농민들에게 역대 최대의 호황을 주었으며, 전쟁물자수요는 제조업분야 기업들이 실업자들을 대거 고용하며 엄청난 성장을 이루게 하였다. 자동차회사들은 항공기를 생산·판매하기 시작했는데, 폭격기를 1시간에 1대를 생산해낼 정도로 호황이었다. 조선중공업 계열, 알콜, 음료, 섬유, 식품가공 등 불황으로 힘들었던 산업들은 전시수요증가를 통해 다시 호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미국은 결과적으로 전쟁을 통해서 긴 경제공황의 터널을 벗어나게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는 코로나사태로 국내외적인 경제불황을 목전에 두고 있다. 우리의 불황만이 아니라 북미와 유럽의 불황이 우리 경제에 큰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경제불황 하에 코로나사태를 맞게 되어 어려움이 더욱 가중되어 있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 첨예하게 끼여 정치경제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도 ‘한국판 뉴딜’이 발표되었는데, 그 방향과 제반 내용들이 미국의 뉴딜정책의 강점과 한계점을 벤치마킹하면서, 또한 민관산학연의 다양한 의견들을 잘 반영하면서 적정하게 수립·시행되어 이 경제불황의 어려움을 잘 극복해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대경일보 2020년 5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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