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동길을 다시 걸으며…

  몇달전 걸었던 항동길을 다시 걷는다. 집주변 빌라안의 큰 나무들은 가지치기를 심히해서인지 단정함 보다는 을씨년스러움이 더하다. 담장밖의 항동저수지도 겨울 가믐탓인지 보통의 절반정도만 물이 남아있다. 여름내 낚시꾼들을 유인하던 붕어며 가물치는 어디서 이겨울과 가믐을 견디는 것일까. 뚝 가장자리는 타버린 자국만이 남아있다. 어느새 나는 철길로 그리고 약숫터로 향하는 길을 따라 걷는다. 몇십년 그린벨트덕에 이렇게 산이며 논밭이 남아 있는거라지만, 푸르름으로 뒤덮였던 여름과는 달리 알몸을 들어낸 대지는 너무나 안타까움만을 전해준다. 겹겹이 묻혀진 폐비닐 조각들,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들… 여기저기 엉성하게 답장을 친 조그만 텃밭들 그리고 주변의 오두막… 대부분이 무허가 경작이며 무허가 건물일텐데, 봄여름가을에는 일부 주민들에게 푸성귀를 공급해주고 소풍터를 제공해 줄 터이지만, 가끔씩 산책을 하는 일반 시민들에게는 난개발에 대한 않타까움만을 보여주는 것 같다. 자연이 자연 그대로 남아 있질 못함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구정전날의 오후라서 등산객이며 산책객은 드믄편이다. 어쩌다 마주치는 사람들은 대부분 부부들 같이 보이는 40대 후반 내지 50대의 사람들이다. 남자건 여자건 혼자인사람들은 묵묵히 걷기만 하는데, 남녀 둘이 걷는 사람들은 나이에 아랑곳없이 들뜬 목소리들이다. 엿듣지 않아도 여자분들의 별 내용 없는 듯한 그러나 평소에 잘 하지 못하는 듯한 표현들이 귀에 들어온다. 철길에 올라서며 늘 하듯이 선로위를 걸어본다. 2미터 못가서 떨어지고 다시 해보니 5미터는 가겠다. 로맨틱하게만 보이는 철길 침목위를 걷는게 부츠형 구두를 신은 탓인지 영 불편해서 곧 다른 길로 벗어났다. 저 멀리 오두막 철창안에서 사납게 짖어대는 개들은 누군가 복날용으로 기르는 것들일 것이다. 이곳이 곧 대규모의 생태공원인 \’서울수목원\’으로 탈바꿈 한단다. 그렇게 되면 주변의 산야가 좀 더 정리되게 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테마공원도 들어서게 되니, 과거의 모습과는 다른 좀 더 번듯하고 번잡한 서울의 모습을 띄게 될 것이다.   
  며칠전 약간의 비가내려 약간은 질어진 비탈길을 오르다 보니 한무리의 사람들이 보인다. 이곳이 약숫터이다. 플라스틱용기들을 두어개씩 줄 세워놓고, 잡담에 열중해 있다. 아무래도 수돗물보다는 좋은 물이겠지. 꼭 좋은 물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산보삼아 물을 뜨러 이곳에 오는 것일 것이다. 그 옆에는 가건물같이 커다랗게 지어놓은 \’배드민턴 동호회 모집\’이라고 현수막을 붙여놓은 장소가 있어 크게 웃고 떠들며 운동에 열중인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길을 돌아서 난 다시 산길을 내려온다. 옛무덤들이 일부는 옮겨지고 일부는 남아있는데, 몇몇 앞에는 이장하라는 경고판들이 붙여져 있다. 돌본지 오래된 무덤들이라서 무덤가에도 무덤위에도 꽤 굵은 아카시아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공기는 꽤 맑은 듯한데, 눈에 보이는 어수선함들 때문에 조금은 우울한 마음으로 산길을 돌아, 서울 경계를 넘어 부천경계안에 있는 동네로 들어섰다. 유한공대, 유한공고를 끼고 돌아 다시 서울경계안의 성공회대학 열린 울타리안으로 들어섰다. 1936년에 지어졌다는 유한양행 \’유일한\’씨의 빨간벽돌건물을 구경하면서 집으로 되돌아왔다. 부모님이 사시는 이 그린빌라도 극히 일부 사람들이 재개발 연판장을 돌리기도 한다는데, 대부분이 반대를 한다고 한다. 나도 반대다. 겨울이라서 조금은 을씨년스러움을 보이고는 있지만, 곧 봄이되면 온갓 꽃들이 피어나고 프르름으로 가득한 동네가 될 것이다. 나는 이곳이 꽤 오래된 1984년 지어진 지금은 땅값 때문에 도저히 짓기 어려운 한국 저층 집합주택의 좋은 예를 보여주는 곳이라고 본다. 오늘은 꽤 먼길을 걸었다. 몇 달만의 서울 나들이이고, 몇 달만의 항동산책이였고, 오랫만에 꽤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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