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곡과 민요 따라 부르며

가곡과 민요 따라 부르며

구 자 문 한동대 교수
  요즈음은 쉬는 시간이라도 노래를 불러볼 기회는 별로 없다. 콧노래야 언제든 흥얼거릴 수 있는 것이지만, 목청껏 불러보기에는 여건이 맞지 않는다. 낮에는 학교건물내 오피스에 있으니 힘들고, 늦은 오후부터는 대단지 아파트 건물 안에 있으니 내 집이라 하더라도 주변에 민폐가 된다. 물론 그렇게 살더라도 시간을 보낼만한 일들이 아주 많기는 하다. TV뉴스도 보지만, 유튜브를 통해서 다양한 소재들을 잠시 잠시 감상하기도 하고, 인터넷 탐색을 통해 궁금한 사항들을 찾아보기도 한다. 요즈음은 ChatGPT를 통해서 전에는 찾아보지 못하던 역사/고고학 자료들을 아주 상세히 질문하며 찾아보기도 하다.

  어릴 때야 집안에서도 동요를 마음껏 부르며 지냈지만, 중학교 때 상경하여 좁은 방 한두 개 얻어 살고 있었으니 큰소리를 내지 못했다. 대학입학후 조그만 아파트에 살게 되어 좀 작은 소리로나마 노래를 부를 수 있었는데, 화장실에서 물 틀고 매일 두어개 씩 빨래할 때는 제법 큰 소리를 내었던 것 같다. 어릴 때 부르던 동요로부터 그 당시 유명하던 팝송들이었다. 푸른 하늘 은하수~, 나의 살던 고향은~, 얼어붙은 달그림자~ 등 우리나라의 동요는 참 구슬프면서도 멋진 것들이 많았다. 1970년대 유행하던 가요나 가곡들도 아, 아 떠나자 고래 잡으러~, 긴 밤 지새우고~, 당신은 모르실 거야~, 먼 산에 진달래 울긋불긋 피었고~, 내 고향 남쪽 바다 등 부를만한 것들이 많았다. 지금이야 세탁기들이 있지만 1970년대에 그런 게 있을 리 없으니 빨래하고 말려 입는 것도 큰일이었으나 노래라도 부르면 마음이 후련해졌었다.  

  그후 미국에 살면서도 대학원생 주택이나 시내 아파트에 살아서 노래는 제대로 못했지만, 교회에서 찬송가는 큰 소리로 열심히 따라 부르고 있었다. 그 후 귀국해서는 노래방에도 가지 않으니 노래할 기회도 없었지만, 한동안 일상이 바빠져 오디오는 물론이고 TV음악도 듣지 않았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몇 년전부터 유튜브를 통해 한국가곡, 미국/유럽 민요나 팝 등을 따라부르는 습관이 생겼다. 물론 아파트 9층 집은 넓지만 창문을 다 닫고서나 가능한 것이다. 처음에는 미국민요들을 영어로 따라 불렀는데, 그 예가 ‘오 대니 보이~ ’,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이런 것들이었는데, 왜 그리 슬픈지 따라 부르며 눈물을 흘리고는 했었다. 어떤 때는 큰 소리로 ‘탐 존스의 딜라일라’, ‘조영남의 제비’ 등을 따라 부르거나, ‘돌아오라 소렌토’, ‘물망초’, ‘슈베르트의 세레나데’, ‘봄이 오면~’ 등을 부르기도 한다. 물론 잘 부른다고 하기는 힘들 것이나, 나름 바리톤 정도의 목소리로 크고 높게 불러보고 있다.

  문제는 필자가 너무 감상에 빠지고 눈물을 잘 흘려서 때로는 노래를 계속해 나가기 힘들 때도 있다는 것이다. 무슨 인생에 큰 슬픔이 있어서 그렇다기 보다는 어릴 때 부터의 습관인 것 같기도 하다. 아주 어릴 때부터 ‘의뭉스럽다’는 소리를 자주 듣고 있었고, 초등학교 시절 반장/회장을 도맡아 하고 있었지만, 우리 집 바로 앞에 위치한 신축극장에서 영화를 보면 이틀 정도는 그 영화 장면들에 빠져 있었다. 중고교를 서울로 가고 그때도 학교에서 단체로 감상하는 영화가 1년이면 5~6차례 되었는데, 그때 ‘대한극장’의 커다란 화면을 통해 외국영화들을 보게 되면서, 예를 들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벤허’, ‘대장 부리바’, ‘바람과 라이언’ 등을 보게되면 하루 이틀은 그 영상과 배우들의 연기를 계속 되새기고 있었다. 이는 대학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때는 영화상영 전 대한뉴우스와 애국가를 틀어주는데, 그 애국가를 들으며 눈물을 흘린 적도 많았다. 더구나 그때는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밑에서’, ‘나르치스 골드문트’, ‘썸모세트 모옴’의 ‘레드(Red)’ 등을 자주 읽고 또래들에게 독후감을 실감나게 설명해 주는 경우도 많았으니, 그때 대학동창들이 ‘너 그런 소녀적 감상으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래?’ 걱정을 듣기도 했었다.

  그러나 필자 스스로는 영화/소설감상 때나 그런 것이지 일상은 그렇지 않음을 애써 변명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슬프거나 잔혹한 장면은 보지 않으려 애쓰기도 했었다. 슬픈 영화보다는 마카로니 왜스턴이나 코미디성 영화를 즐겨보는 습관도 생겼다. 찬송가도 눈물 나는 것들은 좀 피하는 습관도 생겼었다. 그리고 또 많은 세월이 흘렀다. 대학을 은퇴한지도 5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지금도 필자는 그대로 캠퍼스 주위에 머물고 있으며 어릴 때의 감성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으니 좀 우습기도 하다. 아직도 유튜브 노래들을 따라 부르며 눈물을 흘릴 때가 많으니까…

  그동안 우리나라는 참 많은 발전을 해왔다. 한류가 K-뮤직, K-푸드, K-드라마 하는 식으로 예전에는 상상치도 못할 만큼 세계에 알려지고 있다. 이 작은 나라가, 주변의 강대국들로부터 수많은 고통을 받았고 가난하던 나라가 이렇게 선진국으로 발전한 것이다. 우리 한국인들을 보는 눈도 이제는 크게 달라졌다고 본다. 이는 자주 가서 머무는 미국에서도 자주 느끼는 것들이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스페인 밀레니엄합창단이 우리 동요인 엄마가 섬 그늘에~ 시작하는 ‘섬집아기’를 부르는 것을 봤다. 많은 이들이 가사는 잘 모르지만 그렇게 아름답고 구슬픈 노래는 처음 듣는다고 했다. 독일 소년합창단의 ‘아리랑’도 들었다. 너무나 그 목소리와 멜로디가 가슴을 울렸다. 남들만큼 취미생활을 하지도 못하고, 더구나 음악감상을 즐기지도 않으며 독창/합창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항상 컴퓨터 앞에서 무언가를 또닥거리기나 하는, 재미없어 보이는 인생을 사는 듯한 필자에게도 숨겨 놓은 듯한 취미 내지는 습관이 있는 것이니, ‘제멋에 겨워 흥~’이기도 하겠지만, 요즘 하루하루를 지치지 않고 살아가게 하는 큰 활력소일 거라고 믿는다.

영남경제 2025년 1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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