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추석을 맞으며

2025년 추석을 맞으며

구 자 문 한동대 교수
  그 무더웠던 폭염의 을사년 여름은 어느 날 갑자기 끝이 났다. 서늘한 바람이 아침저녁 불어오더니 이제 가을이 완연하고 추석이 일주일 후로 다가오고 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이니 올해는 양력 10월 6일인데, 예년보다 좀 늦은 편이다. 하지만 올해는 제헌절, 한글날, 그리고 대체공휴일까지 겹쳐 근래 보기 드문 7일간에 이르는 긴 추석연휴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긴 미국 출장에, 움직이기 귀찮을 정도의 무더위에 책 읽고 글이나 쓰며 ‘책상 콕’하다 보니 컨디션 난조까지 겹쳐 한동안 부모님 계신 서울에 다녀오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5박 6일 일정으로 일찌감치 왕복 비행기표를 끊어 놓았다. 추석 귀성이 아닌 역귀성 내지 귀경이라는 말을 써야 할 것 같다.    

  추석은 우리나라 최대의 명절로서, 어릴 때부터 경험한 추석 풍경들이 뇌리에 생생하다. 서울역의 미어터지던, 머리 위에서 긴 장대로 사람들을 정리하던 모습, 서로 자리 잡으려 달리던 모습, 만원버스 같이 혼잡하던 완행열차, 그리하여 10시간을 갔었다. 추석날 아침은 조부댁에서 차례를 지내고 고향 동네 어른들을 만나 뵈었다. 그 후 5~6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경제산업과 사회문화가 크게 변모되고 우리의 라이프스타일도 크게 변모되어 추석연휴 풍경도 크게 바뀌었다. 예전에는 차례를 지내야 하니 어떻게든 고향을 찾았고 조부모님, 여럿 장년이 된 자식들, 그리고 손자손녀들이 차례상 앞에 모였지만, 지금은 어른들이 대부분 돌아가시고, 몇 않되는 자식들이 추석을 맞게 되었는데, 모두들 자녀를 한둘이나 두게 되었으니 어차피 조촐한 차례가 되게 마련이다. 이제는 추석연휴를 맞아 해외여행을 떠나는 이들도 많아졌다. 필자는 만 100세 되신 어머님과 70대 중반을 넘어가는 형님이 있는 서울로 추석을 쇠러 간다. 큰 집에서는 추석날 아침 차례 준비로 바쁘지만, 추석날 저녁은 출가한 여러 자매들과 자식들이 함께 모여 함께 식사를 나누는 전통이 유지되고 있다. 모두들 서울이나 근교에 살고 있지만 필자만 좀 멀리 떨어진 포항에 있고, 더구나 식구들은 더 멀리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다.    

  추석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 일본, 베트남 정도가 같은 날짜에 쇠고 있는 것 같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좀 늦은 11월에 추수감사절이 있는데, 우리와 스타일은 좀 다르지만 비슷한 배경에서 탄생한 것일 것이다. 우리나라 추석의 기원을 보면 고조선 시기부터 이미 풍농(豊農)과 조상 숭배 의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부여에서는 음력 10월에 영고(迎鼓)라는 제천행사가 있었는데, 수확을 마친 뒤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풍악과 춤으로 즐겼다고 한다. 고구려에도 10월에 동맹(東盟)이라는 제천행사가 있었고, 역시 농사와 관련된 제사와 잔치가 있었다고 한다. 마한/진한/변한에서도 음력 10월에 제천의례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신라에서도 추석과 직접 연결되는 기록이 있는데, 유리왕 때 가배(嘉俳)라는 행사가 있었고, 두 편으로 나뉘어 노래와 춤 솜씨를 겨루고,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음식을 대접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성행했으나, 여전히 추석은 세속적으로 큰 명절로 지켜졌다. 임금도 백관과 더불어 잔치를 베풀었고, 민간에서는 성묘도 하고 강강술래, 줄다리기 등 놀이가 행해졌다. 조선시대는 성리학 사회로 들어서면서 추석의 성격이 조상 제사와 성묘 중심으로 정착되었다. 햅쌀과 햇과일로 송편을 빚어 차례상에 올리고, 친척들이 모여 나누어 먹었다. 농악, 씨름, 활쏘기, 강강술래 등 민속놀이도 성행했었다. 그리하여 조선 후기로 갈수록 설·추석·단오가 3대 명절로 자리 잡았다.

  추석이 음력 8월 보름으로 정해진 것이 신라 때부터라고 하나, 햅쌀과 햇과일로 차례를 지내기에는 좀 이른 감이 있어, 우리나라의 계절과는 좀 안맞는 듯도 하다. 현대의 추석도 여전히 조상 제사와 가족 모임이 핵심이나, 도시화·핵가족화로 인해 간소화되는 추세이다. 대표 음식은 송편, 전, 적, 나물, 술, 과일 등이다. 1960년~1970년대만 해도 추석이며 음력설 때 서울역의 귀향 행렬은 어마어마했었다. 물론 지금은 기차와 버스가 미어지기는 하지만 자가용 운전이 많아지니 고속도로가 매우 혼잡해지고 보통 5시간이면 충분하던 서울-부산이 10시간 이상이 걸리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시스템이 좋아졌다고 보지만, 10여 년전만 해도 서울 집에서 고속도로 진입로까지 가는데 5~6시간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요즘은 가족끼리 여행을 가거나, 코로나 사태 이후 ‘온라인 차례 서비스’ 이용도 늘고 있다.

  중국도 같은 날이 중추절이라 월병(月餅)을 먹고, 둥근 달을 보며 가족의 화합을 기원하는데, 주(周)나라때 부터 달에 제사 지내던 풍습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며 지금은 법정 공휴일로, ‘달맞이·등불놀이·가족 모임’이 핵심이다. 더 특징적인 것은 중국은 인구도 많지만 국토가 넓어서 귀성길이 며칠씩 걸리는 대 장정이며, 이에 관련된 에피소드도 많다. 물론 추석휴일도 10일은 되어야 할 것 같다. 일본의 중추(中秋)는 달맞이 의례 정도가 남아 있다. 음력 8월 15일을 주고야미(十五夜)라 하고, 달을 감상하며 스키미당고(月見団子)와 억새 풀(스스키)을 장식한다. 이날은 농경 감사 의미가 있으나, 한국·중국처럼 큰 명절은 아니다. 베트남의 중추절(中秋節)은 어린이들의 명절 성격이 강하다. 아이들은 등롱을 들고 행렬놀이를 하며 사자춤를 즐긴다. 유대교·이스라엘에는 한국식 추석은 없지만, 가을 수확을 기념하는 초막절(Sukkot)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장막 생활을 했던 것을 기념하고 추수감사하는 것이다. 마당에 초막을 지어 며칠간 생활하며, 레몬, 종려나무 가지 등 4종 식물을 흔들며 기도한다. 미국의 추수감사절(Thanksgiving)은 11월 넷째 목요일인데, 가족들모여서 칠면조를 굽고 파이 등을 만들어 먹으며, 가족 상봉과 풍요감사가 핵심이다. 유럽은 기독교적인 지역 추수축제(Harvest Festival)가 주를 이룬다.

2025년 9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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