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에서도 직경 큰 대나무가 자란다
구 자 문 한동대 명예교수
얼마전 포항시 부도심격인 장성동의 미개발지 나지막한 산기슭에 위치한 한 오래된 시골집을 방문하고 그 뒤편의 우거진 대나무밭을 돌아보았다.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러한 산야지대가 펼쳐진 것도 이색적이지만 이렇게 광대한 대나무밭은 더 이색적이었다. 필자는 중부 서해안 지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대나무숲을 많이 보고 자랐다. 그때 그곳의 대나무도 직경 2cm 정도의 가는 것들이었지만 대나무밭은 흔한 편이었다. 오래 미국에서 살면서 대나무밭을 본적은 거의 없고, 집 뒷뜰에 필자가 심어 놓은 왕갈대가 직경 5cm에 높이 6~7m로 자라 많은 이들이 이것이 대나무냐 갈대냐 논쟁을 벌이기도 했는데, 많은 이들이 실제 대나무를 본적이 없어서 모두들 이를 대나무라 했지만, 필자는 정답을 알고 있었다.
그후 귀국하여 남동부 해안가 포항에 살면서 대나무를 본적은 그리 흔치 않았다. 여기서는 대부분 가는 화살대 같은 이대/신우대였고, 언젠가 포스텍 뒤편 정원을 지나치며 꽤 굵은 대나무를 본적이 있지만, 산야에서 본적은 별로 없고 보았더라도 직경 1cm 미만의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아주 굵고 키 큰 왕대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곳은 한 집안의 종가집이 물려받아 지니고 있던 야산이었는데, 오래된 집이 있고 배후에 수백년된 대나무숲이 있었다. 지금은 그 집도 조모께서 돌아가시고 비운 채로 둔지 10년이 넘어간다는데, 그집 주인인 환갑 나이 손자분 말에 의하면, 20년 전만 해도 대나무가 가늘었다고 한다. 그런데 기후 온난화 때문인지, 대나무가 커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최근 서너 차례 이곳을 방문했는데, 보통 2~3cm 직경의 대나무들 사이에 직경 7~10cm에 높이 13~14m나 되는 대나무들이 하늘을 찌르듯 솟아 있는 것이었다. 아래쪽은 원래 개천이 있었는데, 이를 복개하여 길로 만들었기에, 대나무밭은 길에서 좀 급경사 산비탈로 계속되는데, 대나무밭이 아마 2~3천평은 되는 듯하다. 이 높다란 산비탈에 직경 큰 대나무들이 웅장하게 솟아 있는 광경은 정말 장관이다. 한쪽을 보니 작은 대나무들을 누가 많이 잘라 간 것 같은데 남은 것은 굵은 것들 뿐이다. 대나무밭 주인 말로는 굵은 것들은 자르기도 힘들고 크게 쓸데도 없어서 가는 것들만 잘라 간다는 것이다. 물론 주인의 허락을 받고 가져가는 것이다.
필자가 대나무에 관심을 가지니 대나무밭 주인이 가져가라고 갈 때마다 굵은 대나무를 1.5m 정도 길이로 대여섯개씩 톱질해 잘라 집앞 마당에 전시해 놓고 있는데, 2~3개 들고 그 옆 골프연습장 주차장에 세워둔 내 차로 가져가는 것도 쉽지 않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내 오피스에 큰 대나무 조각들이 6개, 차 안에도 2개가 남아있다. 이도 주변의 친한 교수들이나 학생들이 호기심 겸 장식용 등으로 가져가서 이 정도 남게 된 것이다. 일반 나무라면 이렇게 쉽게 잘라 쓰지 못할 것이다. 나무 한그루가 목재로 쓰이려면 최소 20~30년 혹은 그 이상이 걸리는데, 대나무는 굵게 새순이 나오면 1년 안에 현재의 키높이로 자라난다. 해가 가면 안쪽으로 두꺼워지는 것이지 겉모습은 그대로 인 것이다. 5월쯤이면 죽순이 많이 돋아나는데, 바빠서 잊어먹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물론 주인의 허락이 있어야 채취할 수 있는 것이지만 요즈음은 우리나라 사람, 특히 젊은 세대들은 이러한 것들 채취에 무관심한 것이다. 물론 죽순이 대나무 순인지 잘 모르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필자는 대나무 애찬론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대나무는 빨리 자라고 용도가 다양한데, 건축자재로 쓰일 수 있고, 전통적으로 바구니, 지팡이 등 생활용품, 장식용 공예품, 피리 등 악기를 만드는데 이용하기도 했다. 예전 영화를 보면 전쟁시 민간인들이 지역을 수호하고자 대나무로 화살, 죽창 등을 만들어 활용하는 것도 보았다. 어떤 이들은 대나무 숯을 만들기도 하고, 대나무마디 안에 쌀을 넣어 대나무 밥을 짓기도 하고, 살아 있는 대나무에 작은 구멍을 뚫고 술을 넣고 한동안 막아두어 대나무술을 만들기도 한다고 들었다. 사실 대나무는 빨리 자라 주변을 아름답게 꾸밀뿐더러 광합성을 통해 산소를 생산하고 미세먼지를 없애는 등 공기정화기능이 크다. 예전에 선조들이 집뒷편에 대나무를 심은 것은 이를 목재/생활용품재로 이용하려고 한 것도 있지만, 촘촘히 막아 산짐승들로부터 거족들을 보호하려 했던 것도 있고, 경사진 언덕이 억센 대나무 뿌리로 얽혀 무너지지 않게 하려던 것도 있었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대나무 고장으로 유명한 전남 담양에는 수많은 넓은 대나무밭이 조성되어 많은 이들이 대나무 숲을 걸으며 음이온을 쏘이는데, 이는 혈액정화 및 피로회복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담양의 대나무는 굵기로 유명한데, 지금은 열대지방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직경 15~20cm, 높이 20m의 대나무도 흔하다고 한다. 이번에 대나무밭 주인집을 방문하면서 겉으로 드러난 대나무 뿌리를 보며, 저것 좀 잘라다 화분에 심어도 되는 것 아니냐고 물으니, 벌써 톱을 가져와 직경 1cm에 길이 50cm의 뿌리 3개를 잘라준다. 이를 아파트 베란다의 커다란 화분에 심고 물을 뿌렸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화분에 맞게 가는 대나무순이 자라날 것 같다. 이 대나무밭 주인집을 방문한 충북 단양의 약초꾼 아저씨는 이 굵은 대나무를 잘라 찻잔을 만들겠다고 했다. 필자는 우선 연필꽂이를 만들어 볼 참이다. 우리 대학 캠퍼스에도 화살대 같은 얇은 이대만이 아니라, 이러한 큰 키의 대나무밭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특히 요즈음 캠퍼스 접경하여 개발업자들이 그 많던 소나무를 다 잘라 버려 휑해진 곳이 있는데, 이곳에 대나무를 심어 울타리를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영남경제 2025년 3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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