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자유와 행복, 국가체제 모두가 중요하다

개인의 자유와 행복, 국가체제 모두가 중요하다

구 자 문 한동대 명예교수
  인간에게 개인의 자유와 행복추구가 당연히 중요하지만, 이는 단순히 자신의 매일매일을 남의 구속없이 혼자만의 결정으로 꾸려나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여건들, 예를 들어 주거, 식량, 직업 등은 물론이고 주변 인프라, 인간관계를 포함한 다양한 경제사회조직 등이 갖추어져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여건들이 갖추어져 있지 못하면, 개인의 자유가 주어져 있다 하더라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본적인 여건들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이냐? 이는 국가가 있으므로 이루어진다. 또한 외부로부터 방어를 위해서도, 규모의 경제를 지닌 시장경제의 작동을 위해서도 국가는 필요한 것이다. 원시시대라면 씨족이나 부족국가 단위에서도 어느 정도 자유 및 행복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몰라도 지금은 크든 작든 국가 단위 체제하에서나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다. 국가 간에 다툼과 전쟁도 나고, 국가 간에 정치경제사회적 경쟁과 협력이 필요하기에, 국가가 없는 사회는 개인이든 공동이든 자유와 행복이 확보되기 힘든 것이다. 더구나 국가의 바탕이 되는 이데올로기의 다름에 따라 개인의 자유, 인프라의 공급, 그리고 시장작동에 대한 국가의 역할이 다르기에 국가체제의 존재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국가체제 하에서 각 개인이 직업과 소득이 있고, 양호한 주거가 있고, 도시 및 지역인프라가 있다면, 그리고 이러한 것들에 대한 선택의 여지가 있고, 더 좋아지기 위한 꿈이 있는 곳이라면 행복한 사회일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본다면, 각자 개인의 자유와 행복의 추진이 공동체의 자유와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선진국으로 발돋음한 한국에서도, 제일 발전된 국가라는 미국에서도 공동의 그리고 모든 이의 자유와 행복을 보장해 줄 수 없으니 문제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면에서 개발도상국들은 아예 비교되지 못할 정도로 열악할 수밖에 없으니 더욱 문제인 것이다.

  20세기 한동안은 많은 국가들이 자본주의냐 공산주의냐 논쟁하에 피의 혁명과 전쟁을 겪었었다. 착취 없고 누구나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가져감’을 원칙으로 하던 공산주의/사회주의 경제체제는 경제활동에 대한 동기 감소, 소량다원화에 대한 주민욕구 불충 등으로 인한 경제 쇠퇴 등으로 인해 각 개인 및 공동의 자유와 행복을 보장하는데 실패하고, 시장경제를 크게 도입하게 되었다. 한편 이러한 목적 달성에 유리함을 보이며 번영을 지속하던 자본주의 사회도 빈부격차와 커지는 사회인프라 구축을 위해서 정부의 역할이 커지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두 진영이 정도 차이는 있지만 모두 혼합경제체제로 변모되었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는 ‘삼권분립 의회민주주의 체제’냐 ‘사회주의 독재체재’냐 이다. 나라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부패, 부정선거, 권위주의 등 문제들은 저개발국이나 독재체제에서 더욱 크게 존재하고 있다.

  다시 우리가 사는 마을과 시군 지자체로 돌아와 보자.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직업과 소득, 주거의 질 및 가격, 도시인프라 등만이 아니라 언론 및 결사의 자유, 이를 보장하기 위한 법령, 도시발전 관련 중장기계획 수립 및 시행 등이 중요한 것이다. 또한 그 지역사회 나름의 역사문화사회적인 전통, 그안에 뿌리내린 종교활동 등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를 보장해주는 것은 큰 틀인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언급했지만 국가는 이데올로기적 정체성 아래 국가를 독립적으로 유지하고, 서로의 마찰을 줄이며 공동체적 지역사회를 이루기 위한 정치외교, 국방, 경제산업, 후생복지 등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의 관련 법령과 이를 이행하기 위한 제도를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는 다툼과 전쟁으로 인해 죽고 다치는 이들과 난민들을 보고 있다. 우리는 또한 자기 나라의 정치적, 경제적, 환경적 어려움 등으로 인한 인근 내지 먼 선진국가로의 불법이민행렬 등을 보고 있다. 이들이 불쌍하고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도와주고 싶어도, 너무 그러다가는 자기 나라의 경제사회가 큰 문제에 봉착하는 경우가 많으니 딜레마가 큰 것이다. 이는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여러 나라들의 경우가 그러하고, 미국의 경우도 그러하다. 이번 미국의 대통령이 된 트럼프는 이러한 불법이민 방지를 위한 국경폐쇄 등을 포함한 미국 우선주의로 당선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요즈음 불법체류문제로 몇몇 나라와 갈등을 빚고 있는데, 정당에 따라 정책에 좀 차이가 있음도 사실이다. 물론 우리의 입장에서 북한의 난민은 우리 국민이니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예외이어야 한다.

  북한에서 태어나 예를 찾을 수 없는 공산독재체제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언론과 결사의 자유는 물론이고, 이동의 자유도 없으며, 70년 넘는 기간 전쟁준비에 동원되고 있는 북한주민들은 얼마만큼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가? 북한의 직간접적인 지원세력인 중국과 러시아의 상황은 어떠한가? 이들의 경제생활은 북한보다는 낫지만 인권유린, 착취, 이웃 나라 침범 등에서 문제가 큰 독재체제들인데,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들 편들기는 힘든 것이다. 수많은 이들을 위협하고 죽고 다치게 하며 나라를 강국으로 이끌겠다는 리더들을 영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가? 파워엘리트들만 수퍼리치가 되고 대다수 국민은 가난과 감시에 놓인 나라가 행복한 곳인가? 러시아 소설가 솔제니친이 묘사한 ‘감옥에서 잠시 느끼는 작은 행복’이 정말 행복일 수 있는 것인가? 김동인의 작품 광염소나타에서 보듯이 ‘지고의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죄없는 사람을 죽이고 재산을 불태움’이 합리화될 수 있는 것인가?    

대경일보 2025년 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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