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커피와 카페 이야기

한국의 커피와 카페 이야기

구 자 문 한동대 교수
  우리나라에 커피가 알려지게 된 것은 구한말인 125년 전쯤인데, 나라가 어지럽고 열강의 각축이 심해 조선의 왕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난 갔던 ‘아관파천’때 러시아 외교관들이 고종에게 커피를 소개했다고 한다. 그후 고종은 커피를 즐기게 되었는데, 이를 정부고관들과 나누면서 우리나라에 ‘가베’ 혹은 ‘가비차(加比茶)’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영화나 소설에서 보는 것처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도 가베는 일부 부유 계층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6.25전쟁 발발 이후 한국에 주둔한 미군들을 통해 일반인들도 마시는 기호품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50년대 태어나 1960년대를 초중등생으로 보낸 필자의 경우에도 집에 부모님이 구해 놓으신 인스턴트커피가 있어서, 어쩌다 커피, 설탕, 크림 한 스푼씩에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시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도 서울은 물론이고 지방도시에도 다방이 많이 있어서,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인스턴트커피나 캔분쇄원두로 드립커피를 만들어 팔았다. 중고교를 서울로 유학했기에 고3 늦가을쯤, 입시에 열중하는 와중 주민등록증 신청차 고향에 다녀온 적이 있다. 중간쯤 기차역에 내려서 갈아탈 버스를 기다리는데 시간이 좀 남았다. 그래서 혼자 시골 역전다방에 들렀던 생각이 난다. 빡빡머리 감추려 모자도 쓰고, 가죽 잠바에 약간 색깔 넣은 검정테 안경에, 미제 워커 반짝이게 닦아 신고 갔으니, 다방커피 한잔하고 싶었던 것이다. 1970년대 대학에 다닐 때는 공릉동 학교 앞에 다방이 두어개 있어서 친구들과 커피를 시켜서 설탕 3~4 스푼씩 넣어 마셨다. 그때는 커피 맛을 잘 몰랐는데, 신문에는 다방커피에 톱밥이나 담배꽁초를 섞는다는 기사가 나기도 했었다.

  그후 군입대를 하고 훈련을 마친 후 후방부대에 배치되었는데, 상·병장 시절 에는 짜장면 먹고 커피 마시러 부대 밖으로 외출하던 생각이 난다. 1982년 초 미국으로 떠나 학교도 다니고 직장생활을 했었는데, 그때도 아침이면 미국친구들과 인근 커피집에 가서 베이글 한 개에 모카자바, 과테말라. 수마트라 등 커피를 시켰었다. 미국친구들이 키와 등치가 크므로 커피는 보통 울트라 사이즈를 시키는데, 필자는 이를 아침 8시부터 12시 될 때까지 조금씩 마시던 기억이 난다. 물론 뜨겁던 커피는 에어컨 바람에 아이스커피 정도는 아니지만 꽤 차거워졌었다. 그 당시에 한국에는 커피숍 내지 카페로 불리는 곳은 없었다. 한국에 현대적 커피숍 내지 카페가 도입된 것은 1999년 스타벅스가 도입된 이후라고 한다. 그 이후 카페베네, 투썸플레이스 등 다양한 프랜차이즈 커피숍들이 나타나고 전성기를 누린다.

  우리는 잠깐의 여유를 즐길 때나 피곤함을 달랠 때 커피를 마신다. ‘비알콜성이자 각성효과’를 지닌 커피를 한잔해야 공부나 일에 집중할 수 있다. 어떤이들은 커피가 와인과는 달리 취하지 않고 오히려 정신을 똑바르게 하는 ‘크리스천 음료’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필자는 아침 일찍 7~8시에 오피스에 가는데, 그때 스틱커피 아메리카노 블랙을 한잔 타 먹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점심을 먹고 일하다 오후 3시쯤 되면 좀 지치기도 해서 가방을 챙겨 들고 동네 커피숍으로 간다. 그리고 잠시 원두커피 한잔하며 동네 친구들을 만난다. 과거에는 하루 대여섯잔을 마셔도 문제가 없었으나 요즈음은 오후 늦게 마시면 밤에 잠이 잘 안와서 낮 동안 하루 평균 2잔을 마시는 것 같다. 필자가 사는 포항에도 프랜차이즈만이 아니라 역사 깊은 커피숍들이 여럿 있다.

  한동안은 한국에서 믹스커피가 유행했고 지금도 매출액의 25%를 차지한다. 농장이나 공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잠시 휴식시간에 믹스커피를 즐기고, 러시아 등지에서 한국산 믹스커피가 큰 인기를 얻는다는데, 이는 설탕과 크림이 혼합되어 추위를 이기게 하고 에너지를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필자는 한동안 사무실에서 직접 원두를 갈아 커피기계로 빼먹다가 요즈음은 거름종이에 걸러 마시는데, 시간이 없을 때는 스틱커피 노슈가 아메리카노도 마시고, 더울 때는 교내 커피숍이나 편의점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도 사 마신다. 필자는 지금도 미국에 자주 가는데, 커피전문점이 한국과 같이 많지도 않고 고급화된 곳도 찾기 힘들다. 일본의 경우에도 스타벅스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은 대도시 번화가나 유명관광지에서나 볼 수 있으며, 일반적인 커피숍도 한국만큼 흔하지 않다. 지금 한국의 커피 전문 카페들은 넓은 매장에 시간 압박 없이 마음껏 머물러도 된다는 컨셉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022년 한국의 커피 총매출액은 15조 5천억원에 이르며, 점포 수는 10만개를 돌파했고, 종사자는 27만명이라고 한다. 하지만 서울지역 커피업종의 3년 평균 생존률은 52%라고 하니, 얼핏 수월해 보이지만 커피전문점을 차려서 성공하기 보다는 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CU, GS, E-Mart 24 등 편의점에서도 원두커피를 사 마실 수 있으니 경쟁이 치열한 것이다. 하지만 시민들로서는 동네마다 자리 잡은 다양한 카페들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남녀노소 커피를 마시며, 사람도 만나고, 공부도 하는데, 이곳이 집과 직장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제3의 장소’ 기능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고 필자도 동의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지나친 커피 전문 카페 및 베이커리 카페 창업을 염려하는 분들도 있다. 도시계획가인 필자의 시각을 더한다면, 한국의 카페들은 다양하고 혁신적인 건물 외관과 함께 거리를 더욱 아름답게 하고, 지역의 상징적인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한국의 카페들은 아름다운 인테리어 및 깨끗한 화장실과 함께 외국인들에게도 한국의 선진 됨을 보여주는 장소로 작동한다고 본다.

대경일보 2024년 1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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