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전 연해주에 누가 살았을까?

1,000년전 연해주에 누가 살았을까?

구 자 문 한동대 교수
  연해주는 러시아 극동지역으로서 우리에게 심리적으로 먼 곳이지만 지리적으로는 비교적 가까운 곳이다. 한반도 국경인 두만강을 건너면 연해주인 것이다. 연해주는 러시아어로는 프리모르스키(Primorsky Kray)인데 그곳의 중심지는 블라디보스토크이다. 이곳은 18세기경에는 청나라의 영토였는데, 그후로는 러시아의 영토가 되어 있고, 지금도 동해로의 진출을 노리는 중국이 호시탐탐 노리는 지역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이 지역은 서기 698년부터 926년까지 동북아시아의 강국으로 위용을 떨치던 고구려를 이어받은 발해의 영토였다. 고구려는 기원전 37년에서 서기 668년까지 이 지역과 만주를 지배하던 우리 민족의 고대국가 3국 중 가장 강성한 국가였다. 물론 그 전에는 고조선이 그리고 부여가 이 만주지역을 통치하고 있었다. 부여는 실제적으로 한국 고대사의 기둥을 이루는 삼국 중 두 나라 고구려와 백제의 모태국가로서 기원전 1세기 쯤 이미 제대로된 국가를 이루고 있었고 그 주변인 북만주와 두만강 일대에는 말갈, 읍루, 옥저, 여진 등 여러 부족들이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산발적으로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고구려로 흡수되었고 추후 발해의 일원이 되었다. 고구려는 장수왕 이후 고려로 불렸는데, 발해도 이를 이어받아 고려로 불렸다.      

  아쉬운 것은 발해의 멸망 이후 만주와 두만강 일대를 포함한 연해주 지역이 우리나라 영토에서 그리고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곳은 한동안 빈 땅으로 버려지다가 만주족의 일파이자 우리 민족과도 가까울 수밖에 없는 청나라가 건국하며 차지하게 되고, 말하자면 중국의 영토가 되어 버린 것이다. 고고학적 자료에 의하면 연해주에 최초로 살았던 사람들은 고아시아인들과 퉁구스인들이었다. 그들은 5~6만 년 혹은 그 이전의 구석기 시대에 이주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의 일파는 추후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등을 거쳐 한국인과 만주인이 되고, 이제는 러시아 영토가 된 연해주와 시베리아에는 아직도 나나이, 우데게, 에벤키 등 퉁구스어를 사용하는 국가를 이루지 못했던 부족들이 거주하고 있다.

   해동성국으로 불렸던 발해는 이 지역을 통치하였던 고구려의 후예와 퉁구스 계통의 말갈족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만주와 한반도 북부만이 아니라 연해주 지역을 넓게 차지하고 있었다. 발해의 멸망 후 이 지역은 서기 1115년부터 1234년까지 여진족 금나라가 지배했는데, 그들은 당연히 퉁구스계의 민족이다. 유목과 농업이 그들의 경제적 기반이었지만 야금, 조선(造船) 등의 산업도 발달 되어 있었다. 그후 만주족 청나라는 서기 1636년 건국되었으며, 1644년부터 1912년까지 300여년 동안 중국대륙을 통치했다. 청나라는 만주족 출신의 아이신 기오로 가문 (Aisin Gioro Hala, 愛新覺羅氏)에 의해 세워졌다. 그 지도자인 누르하치는 몽골족들을 만주족 군인에 편입시켜 만주족과 몽골족을 포괄하는 군사적-사회적 시스템 팔기제를 창설하였고, 이후 분열되어 있던 만주족들을 통일한 뒤 1616년에 후금을 건국하였다. 그의 아들 홍타이지는 명나라 군대를 랴오뚱반도에서 퇴패시키고 1636년에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만주에서 새로운 왕조를 세우게 되었다.

  17세기 중엽 러시아 제국이 아무르강 방면으로 남하하면서 청나라와 충돌하였다. 1689년에 양국은 네르친스크 조약을 체결해 스타노보이 산맥을 국경으로 정하고, 연해주는 계속 청나라에 속했다. 그러나 제2차 아편전쟁(1856~1860년)으로 청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러시아제국은 남진하여 1858년 하바롭스크를 건설하였다. 러시아가 해안지방을 획득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으므로, 러시아는 1858년 체결한 아이훈 조약으로 아무르강(헤이룽 강) 이북 지역을, 1860년에 체결한 베이징 조약으로 우수리 강 동쪽인 연해주를 차지하였다. 1859년부터 1882년 사이에 95개의 정착지가 건설되었는데,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도 이 시기에 건설되었다. 현재 연해주의 주민들은 대부분이 러시아인이나,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한국인(주로 고려인 카레야스키), 일본인, 중국인, 우데게족, 오로치족, 나나이족, 타타르족 등 여러 소수민족들이 거주한다. 그 주변의 러시아 영토인 사할린섬은 과거 일본영토였으나 2차대전 종전 후 일본인들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고 징용으로 끌려왔던 한국인들이 귀국 못하고 살아남아 큰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데, 최근에야 한국으로 귀향길이 열렸다.

  오늘 필자가 연해주를 주제로 칼럼을 쓰는 이유는 근래의 국제정세 때문이기도 한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피폐해지고 있고, 연해주지역의 주민들이 독립을 요구하거나 다른 나라로 편입을 원하고도 있기 때문이다. 일본도 사할린 반환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중국은 연해주를 끊임없이 원하고 러시아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이를 수 있지만, 미국 등 여러  서방국가들이 중국의 팽창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남북으로 갈려는 있지만 한국은 5,000년 역사상 가장 번영함을 누리고 있고, 미국과 서방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와도 최근 전쟁 와중에 좀 관계가 나빠지기는 했지만 한국-러시아 무비자협정도 있고 러시아인들이 의외로 한국을 가장 좋아하는 나라로 꼽는 상황에서 연해주나 사할린의 한국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환동해경제권의 허브항만도시를 모토로 내세운 우리 포항시와 경북도가 누구보다도 이 지역의 정치경제에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본다.  

영남경제 2023년 8월 27일  


코멘트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