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의 미식축구팀 홀리램스
구 자 문 한동대 교수
미국인들은 스포츠관람을 즐기지만 그중에도 미식축구시즌이면 온 미국이 들썩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도시 아닌 아이오아주에 살때도 농촌의 작은 동네를 고속도로나 지방도로를 다니게 되면, 길가나 지붕에 걸린 ‘Go Cyclone’ 등 플래카드나 큰 싸인들을 보게 된다. 대도시 로스앤젤레스에는 USC와 UCLA팀들이 유명하고 경기가 열리는 날은 교통도 막히고 호텔방 구하기도 힘들다. 축구와 럭비의 특성을 통합하여 미국에서 개발된 미식축구는 미국에서는 ‘풋볼(Football)’로 불린다. 럭비는 1823년 영국에서 시작되었는데, 이것이 미국으로 건너가 미식축구로 변형되어 1869년 11월 럿거스대학과 프린스턴대학이 캐나다 뉴 브른스위크 주에서 최초로 경기를 했다고 하며 1876년에는 미국대학 미식축구연맹이 창설되었다. 30세 가까운 나이에 미국유학을 간 필자는 한국에서 하던 대로 권투, 유도, 씨름 등 개인스포츠들이나 축구/농구 정도 가끔 텔레비전 시청이나 할 뿐이라서 미식축구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었고 대화에 끼어 들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한국으로 귀국하고 한동대에 부임한지 꽤 오랜 세월이 지나던 2007~8년경에 학생들이 미식축구팀 ‘홀리램스(Holy Rams)’를 조직한다고 알려 왔었다. 그 당시 학생들 중에 키 크고 몸집 좋은 미국에서 고교에 다니며 선수였던 사람이 있어, 그를 중심으로 조직되는데, 그는 이미 한국 미식축구 대표를 하고 있었다. 그 당시 경북대가 영남권은 물론이고 전국을 제패하고 있었는데, 그때 그 대학 교수님 중에 과거 미식축구를 했던 분이 고맙게도 사재를 털어 한동대에 미식축구유니폼과 기자재를 제공해 주신 것이다. 그때 또한 한 미식축구 OB분께서 몇 년이나 무료로 한동대 팀 코치와 훈련을 맡아주신 것이다. 선수들이 착용하는 헤드기어와 헬멧은 머리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착용하는 것으로, 헤드기어의 외부는 플라스틱이나 합성수지로 되어 있고, 내부는 스펀지와 가죽으로 외부의 충격을 방지하고 있다. 얼굴 마스크는 헤드기어 앞부분에 설치되어 있는데, 얼굴, 눈, 코, 입 부분을 보호하며, 플라스틱이나 쇠구조물에 고무코팅으로 만들어졌다. 숄더패드는 어깨 부분을 보호하는 장비로 스펀지에 플라스틱 내지 강철로 만들어졌으며, 충격방지를 위하여 3겹으로 되어 있다. 그 밖에 체스트 패드, 힙 패드, 타이 패드, 니 패드 등의 보호장구를 갖추고 경기를 치른다.
명목상으로나마 지도교수가 되었던 필자는 학생들에게 ‘잘하는구나’ ‘다치지 말아라’ 정도의 격려만 해줄 수 있을 뿐이었는데, 우리 학생팀들이 창단 하자마자 강팀들을 꺾으며 영남권에서 바람을 일으킨 것이다. 그 당시 특출한 학생이 있기도 했지만, 해외에서 중고교를 나온 하드웨어 좋은, 즉 몸집 좋은 학생들이 다수 포함되었던 것이 이유이기도 하다. 한두해 후 한동대만이 아니라 포항의 다른 대학, 예를 들어 포스텍에 미식축구팀을 만들어 정기전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에 여러 지역 분들과 의견을 나누기도 했었다. 또한 무보수 코치님을 강사대우라도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학교에 진정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때 학교가 어려운 상황이라 모든 게 불발된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10여년이 흐른 지금도 학생들이 십시일반 팀을 꾸려가고 있으니 대견하기도 하다. 지난 5~6년간의 국가적인 경제사회적 어려움과 코로나 사태 등만 없었다 해도 한동대 미식축구팀 홀리램스가 좀 더 성장할 수 있었지 않았겠나 생각된다.
한국에서의 미식축구는 다른 인기 스포츠 종목들과는 다르게 특기생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동대의 경우도 학생동아리로 출발하여, 누구나 미식축구부 선수가 될 수 있다. 이는 다른 학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수 많은 작전을 지닌 미식축구 경기의 특성상, 각자 룰을 이해하고 연습하며 각자의 역할을 완벽히 수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미식축구는 몸으로 돌진하여 격돌함으로써 용감성을 키울 뿐만 아니라, 경기가 매우 조직적이고 체계적이다. 특히, 공격과 수비를 엄격히 구별하고 있어, 맡은 역할과 책임에 대한 희생과 봉사의 정신을 가져야 하는 스포츠이기도 하다. 그러나 강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인해 서로 부딪혀 크게 다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우리 대학팀의 성적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은 학생들의 연습량과 학교/지자체/OB/지역유지 등을 통한 약간의 지원정도 일 것이다. 물론 다른 학교들은 정식 임용된 감독과 코치들이 대부분 있다고 보면 되는데, 한동대의 경우는 학생동아리 이상의 위상을 지니고 있지 못하니 코치도 없고, 시합시 타고 갈 버스 확보도 쉽지 않다. 그러나 이들 홀리램스 맴버들은 자부심을 가지고 미식축구 토너멘트에 참가하고 학교와 지역을 홍보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45년 광복 이후 미군에 의해 전해졌으며, 1946년 YMCA에서 조선미식축구협회를 창립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하며, 대한미식축구협회도 그해인 1946년 설립될 정도로 유서가 깊다. 그러나 순수 아마추어 스포츠로, 오랜 기간 동안 정부지원이나 대중의 관심이 부족한 열악한 환경이었다. 그러나 이 미식축구팀의 존재는 젊은이들의 아마추어 스포츠로서 심신을 단련하고, 학교와 지역사회를 홍보하며, 또한 국제적으로 한국을 홍보하는데 큰 역할을 해오고 있으며, 그들 나름 열정과 도전정신으로 저변을 넓혀왔다고 생각된다. 현재 국내엔 대학팀 40개, 사회인팀 6개가 활동 중이며, 중·고교의 플래그 풋볼팀 73개도 운영 중이다. 대학팀들의 경우 서울, 중부, 대구경북, 부산경남 지역 협회 소속으로 팀들이 존재한다.
대경일보 2022년 1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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