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챙기기

건강 챙기기

구 자 문 한동대 교수
  우리는 누구나 건강하게 살기를 원한다. 어릴 때는 잠시 아프면 아픈대로 며칠 앓다보면 다 나아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했었고, ‘건강이 필요하다’ 혹은 ‘죽음이 두렵다’ 등의 생각을 해보지 못한 것 같다. 물론 세월이 지나 그 당시 기억을 다 잊어버렸기에 이러한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지금에 비해서 건강에 대한 걱정은 크게 없었던 것 같다. 어릴 때 아픈 기억이란 감기로 목이 부어서 그리 멀지 않은 보건소에 엄마 등에 업혀 가던 것 정도이다. 보건소 아닌 의원일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종종걸음 치시던 지름길인 산길이 생각나고, 의사선생님이 준 쓴 약이 생각난다. 좀 자라서 중학교 시험을 볼 즈음에는 웬일인지 두통이 자주 나서 입학시험 보러 아버지 따라서 서울 왔을 때, 어디에 묵었고 무엇을 먹었는지 생각은 나지 않지만 두통약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중고교시절은 많은 생각이 나지만 그리 아팠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입시에 바빠 아픈 틈이 없었던 것인지. 그런데 문제는 대학에 들어가서였다. 두통이 도지고 어지러움증이 생긴 것이다. 입시 해방감에 게을러지고, 친구들과 그 당시 유행대로 막걸리/소주를 주량 넘게 마셨기에 그리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좀 과음하게 되면 다음날 두통이 심했다. 물론 술은 30살 정도 결혼 후 딱 끊게 되었으니 문제가 적어졌고 오직 두통이 오는 때는 좀 쌀쌀한 날씨에 창문 열어 놓고 이불을 제대로 덮지 않고 자게 되면 감기기운이 좀 오는 때 정도였다. 물론 두통약을 먹거나 샤워를 하며 따뜻한 물을 뒤집어 쓰게 되면 두통이 사라지곤 했다. 사실 30~40세 전후에는 잠만 잘자고 감기만 걸리지 않으면 두통도 없는 것이니 병원 갈 일은 특별히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막상 소소한 감기는 자주 들고 눈과 코 근처의 안면두통으로 증상이 나타나 두통약이 필수였던 생각은 난다.  

  이러한 두통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직장을 잡았을때도 계속되었는데, 미국의사들은 왜 감기인데 알러지약 ‘컨택’을 먹으면 낫는 것인지 의아해 하기도 했는데, 사실 코 알러지가 심했던 것이고 감기가 코 알러지로 보통 오곤 했던 것 같다. 이러한 증상은 귀국을 했을때도 계속되었는데, 그 당시만 해도 의약분업이 이루어지지 않아 집 근처의 한 약국에서 약을 지어 먹었는데, 두통감기에는 ‘갈근가루’가 잘 맞았던 것 같고, 목감기에는 아마 ‘항생제’를 처방해 주었던 것 같은데 한 이틀 약을 먹으면 낫곤 했었다. 나이가 들면서 극심한 두통은 사라졌는데, 그 이유는 몸이 건강해졌다기 보다는 코감기 등이 올라치면 한 국내 브랜드 알러지 치료성분이 포함된 종합감기약 한번 먹으면 가라앉을 정도였기에 그리 보인 것 같기도 하다.

  그후 문제가 된 것은 혈압인데, 부모님 두분 모두 혈압약을 드셨으니 가족력 같기도 한데, 10년 전 동네 한의원에서 혈압을 재니 160/90이 나와서 잘못된 것 아니냐고 우겼지만 병원에 가서 다시 진단을 하니 마찬가지라서 그때부터 지속적으로 혈압약을 먹고 있다. 또 하나는 꽤 오래전부터 왼쪽 눈밑이 떨리는 것이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좀 차도가 있는 듯하면서도 문제가 남아 있다. 의사나 한의사들은 증상이 그리 심하지 않으니 곧 나을 것이라고 했고, 덧붙여서 ‘적당히 운동 하시고 살도 좀 빼시면 건강도 좋아지고 훨씬 젊어 보이실 거다’라는 말들을 했다. 어떤 분은 ‘컴퓨터 앞에 그만 앉아 계시고 아예 다 내려놓고 노시면 문제가 없어집니다’ 말들 하고 있다. 하지만 하던 일을 멈추기가 쉬운 것인가? 또한 살빼기가 쉬운 것인가? 운동하는 것도 다이어트하는 것도 ‘작심삼일’로 이루어 내지 못하고 있다.

  사람이 살다보면 항상 즐거울 수만은 없고 슬플때도 스트레스 쌓일때도 많을 것인데, 요즈음 다행으로 여기는 것은 어릴 때와는 다르게 매사 잘 웃고 잘 웃어넘겨 스트레스가 잘 해소된다는 것이다. 대학 다닐 때 쯤에야 걱정도 많았고 일부러 철저히 고뇌해보자 다짐했던 때도 있었지만, 천성이 그렇지 못했던 것인지, 철저한 사유는커녕, 당시 유행하던 ‘웃으면 복이와요’ 정도의 TV프로그램을 봐도 배를 잡고 웃었었다. 물론 지금도 그러하다. 정리해 본다면, 필자는 그런대로 건강하게 태어난 것은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어릴 때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입시 등에 시달려 키도 별로 않크고 두통도 심했었는데, 대학가고 군대생활을 하면서 체질이 많이 바뀌었다. 식욕이 좋아져 많이 먹게 되었고, 근육도 꽤 불어났고, 직장생활하면서 살도 많이 붙게 되었다.

  이제 은퇴하여 명예교수로서 한두 과목만 가르치는 등 시간은 많아졌지만, 문제가 있다면 아직도 식욕이 왕성하여 음식을 너무 빨리 먹어 치운다는 것이고, 운동도 적당히 해야 하건만 ‘집콕사무실콕’으로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거나 유튜브 등을 보면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여동생들은 ‘그 나이에 운동 않는 것은 작은 오빠 뿐이야’ 채근하지만, 아직 일 욕심 많고 가족과 떨어져 사는 필자로서는 일상을 콘트롤하기 쉽지 않다. 다만 와이프가 진작 먹으라고 사준 비타민 등을 전혀 먹지 않다가 지난 몇 년간은 챙겨 먹는 것이다. 이는 오메가3, 마그네슘, 루테인, 밀크사슬 등인데 큰 덕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필자는 천성이 게으른 듯 낙천적이면서도, 성질 급하게 큰 소리도 내고, ‘노’하지 않고 순발력 있게 이일 저일 잘 해내고 있다. 운동않고 건강 챙기지 않는 것 같아 보여도, 남들이 보면 좀 황당해 보일 것 같은 인문사회적 목표를 두고 노력도 하며 100~125살 수명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는, 어떻게 보면 아직 좀 덜 성숙한 사람임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영남경제 2022년 7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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