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한바퀴 역사 한바퀴
구 자 문 한동대 교수
어쩌다 텔레비전에서 보게 되는 프로그램이 ‘동네 한바퀴’라는 프로그램이다. 낯익은 한 중년 남성 탤런트가 구수한 목소리로 진행하는 데, 전국 이곳저곳을 다니며 지역을 소개하고 대화를 나눈다. 일부러 프로그램을 찾지는 않았어도 채널을 돌리다가 보게된 경우가 7~8 차례는 될 듯한데, 기억나는 것만 해도 서울 만리동, 충북 청주, 경남 진주, 경북 포항 등이다. 물론 그후 인터넷을 통해서 서울 신월동, 부암동, 충남 공주, 경북 경주 등 여러 곳을 돌아보기도 했다. 그러한 장소들을 찾아가면 경치도 보여주지만 이 프로그램의 가치는 오래된 건물과 가게들을 찾아가 그곳 연로한 상인 및 기술자들, 즉 긴 세월 살아온 서민 아버지 어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이러한 고향마을의 구구절절한 모습이 아쉽게도 필자에게는 별로 없다. 부모님을 따라 자주 이사를 했기에 남은 기억은 오랜 사진들에서 유추된 장면들이 짧은 활동사진으로 간간히 보여질 뿐이고 그때의 심정도 크게 기억하지 못한다. 지금 그 장면들에 이야기를 붙인다 해도 그때를 가장한 지금의 생각일 뿐이다. 얼마 전 신문칼럼에 ‘내 고향은 어디인가?’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때도 이러한 아쉬움을 표현한 적이 있다. 그때 언급했던 것은 지금 거주하는 포항의 지역작가 한 분의 어릴 때 이야기이다. 그의 고향에 대한 기억과 경험들을 글로 읽어가며 찬사와 부러움을 보냈었다. 필자에게 고향은 초등학교 이전과 그 후 몇 년간의 기억뿐이다. 아버지께서 일 나가시면 아장아장 큰길가까지 따라가던 기억이 난다. 약간 높은 지대에 자리 잡았던 우리 집은 처음에는 어머니가 아랫집 근처 우물에서 물을 동이에 길어 오셨던 것 같기도 한데, 조금 후 우리 집에도 우물 아닌 펌프가 가설되었었다. 뒷동산에서 동네 애들과 놀던 기억도 나고 그 애들의 이름도 아직 기억하는데, 그 후로는 만나본 적이 없다. 물론 여기저기 전학을 다니다가 최종적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한 곳은 그곳이지만, 그 당시 입시준비로 분주했고, 그후 서울 중고교로 진학하게 되어 고향을 떠나게 된 것이다.
서울이 제2의 고향이 아니냐고?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학교에 다니고 시험 보던 것 이외 동네 생각은 크게 나지 않는다. 세들어 살던 용두동의 작은 방, 좁은 골목, 비오면 진흙탕이던 그곳. 하지만 그 동네에서의 구구절절한 사연은 크게 기억에 없다. 그냥 세월이 지나 대학가고, 군대가고, 미국가서 공부하고, 가족을 이루어 이국땅에서 살아가야 했고… 이것들이 내 기억에 남는 동네 이야기들이다. 필자의 형제자매들만해도 서울에 오래 살면서 그곳이 고향이 되고 동대문시장, 남대문시장, 그리고 다양한 가게와 식당, 또는 도봉산, 관악산, 그리고 주변의 명산들을 주말마다 다니면서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젊은 시절을 해외에서 보내고 귀국해서도 고향이나 자라온 곳 아닌 지역에 자리 잡아 지내고 있다. 물론 이곳도 제2의 고향이 된 것이고 많은 사람과 지역들을 알고는 있지만 어릴 때의 추억을 지니고 있지 못함이 아쉬움이었다.
필자의 고향 옛집은 지어지고 다시 그리고 또다시 지어진지 40년이 넘는데, 지금은 창고로나 쓰일 자그만 건물이 그 옆에 있는데, 그것은 과거 집의 일부로서 남아 있는 것인데, 40년 전만 해도 부모님이 결혼할 때 장만했던 장롱이 그곳에 있었고 1960년대 초반에 아버지께서 마련하셨던 진공관식 전축이 있었다. 한동안 그 집에 살면서 어머니를 도와 배추도 심고 호박도 심던 생각이 난다. 그후 자식들은 중고교 및 대학진학차 서울로 떠나고 부모님만 그 집에 오래 계셨는데, 그후 서울로 오시게 되고, 그 집은 한동안 친척이 살다가 그분들도 돌아가시고, 지금은 필자의 형님이 서울에 살면서 가끔 가보는 별장이 되었다. 지금 필자가 사는 포항에서 운전해가면 4~5시간이면 갈 수 있는 서해안 마을인데, 가게 되질 않는다.
하지만 요즈음 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필자와 거의 같은 나이 대의 한 탤런트의 전국 이곳저곳 방문을 통한 영상과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나라 방방곡곡 마을을 돌아보며 대리만족 중이다. 바로 며칠 전 감상한 것은 남해안 한 섬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 이야기였다. 배를 타고 가야 하는 그곳에서 남편은 돌아가시고, 자녀들은 다 출가해있고, 혼자 농사를 지으며 살고 계셨다 일흔 다섯은 되셨을까? 그곳이 고향이기는 하지만 도시에 살았었는데, 공직생활하던 남편이 몸이 아파 휴양차 낙향해서 살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혼자 남아 그 집, 아니 그 마을을 혼자 지키고 있다. 집이 있고 밭이 있고 장독대가 있다. 그 장독들은 자기 어머니께서 물려 주신 것이라는데, 큰 장독들을 옮길 수 없고 없앨 수도 없어 그 집을 떠나지 못하시는 건지도 모르겠단다.
이 동네 한바퀴 프로그램에 포항도 여러 곳이 소개되는데, 오래된 제과점, 북부시장, 호미곶, 구룡포 일본인거리 등 다양한데, 다른 지역에 비해서 깔끔한 영상으로 처리하기는 했지만 대체로 역사적인 것이 드물고, 오랜 장인들이나 전통제조업들이 소개되지 못하는 것 같다. 물론 시장통 사람들의 구구절절한 사연들은 그런대로 진솔함을 보여주지만, 나머지들은 어딘지 모르게 차별화되지 않은 이야기들 같아서 좀 서운하기도 했다. 우리 포항을 보여줄 만한 것이 그렇게 없는 것인가? 지금은 장년이 된 이곳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면 50년전 포항의 동빈내항, 정어리가 쌓이던 부둣가, 조개잡이, 포스코 자리에 있던 수녀원과 강변마을, 그리고 해병대 훈련 중 보여지던 바닷가와 산등성이 등을 주제로 이야기들이 엮어져 나오지 않으니 아쉽기만하다.
요즈음 한 과제 진행차 포항의 차별화된 관광거리를 찾아내려 고민해보는데, 이것들 마저 제대로 찾기 힘들다. 판소리도 춘향전, 심청전, 수궁가 등 포항에 어울릴 만한 것이 없다. 오래된 절도 보경사와 오어사 이외 없지만, 그들에 얽힌 이야기도 크게는 없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반으로 이어지는 격변시대의 건물들도 남아 있지 않다. 다만 3.1만세운동과 새마을운동이 조금이나마 눈에 뜨이니 다행이다. ‘역사 없는 포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역사 있는 포항’ 내지 ‘특색 있는 포항’으로 탈바꿈하자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도시 곳곳에서 색다름을 발견해 내야 할 것이며 새롭게 창조해 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잘 찾아보자. 오래된 폐허 교회건물을 성곡리 근처에서 본적 있다. 많은 건물들이 줄지어 지어진 한 사찰을 용연저수지 인근에서 본적 있다. 북부시장에는 아직도 일제 강점기 건물들이 낡은 채로 이용되고 있다. 옛철길이 그린웨이로 바뀌어져 많은 이들이 걷고 있고, 불의 정원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고 무언가 스토리를 엮어내야 할 것 같다.
대경일보 2022년 3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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