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의미

여행의 의미

구 자 문 한동대 교수
  많은 이들이 여행을 한다. 누구나 살면서 주변을 산책도 하고 구경도 하기도 하기에 어떻게 규정하는지에 따라 여행의 범위가 크게 달라질 것 같기도 하다. 사전을 보면 ‘여행은 자기가 사는 곳을 떠나 유람을 목적으로 객지를 두루 돌아다님’으로 되어있다. 집주변 산책 내지 같은 도시 방문 정도는 포함하지 않고, 자기 사는 곳을 떠나는 게 여행이라고 여겨지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사람의 연령대와 정서에 따라서 여행은 집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된다. 역시 사전을 빌리면 ‘여행은 새로운 곳을 탐험하고,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넓히는 활동’이다. 여행은 삶에 다양성과 즐거움을 주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건강을 증진시켜 준다. 또한 여행은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재고하고 새로운 시각과 인사이트를 얻게 해준다. 맞는 말이다. 매년 해외여행을 여러 차례 하는 필자로서는 여행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인간은 원시시대부터 살기 위해서 종일 돌아다니며 열매를 모으고 사냥을 했고, 적들을 피하고 험악한 기후를 피해서 다른 먼 곳으로 끊임없이 방랑했다고 본다. 이러한 행위도 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때의 여행은 정말 살아남기 위해서이고, 현재와 같은 낭만적인 모습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른 곳으로 이주해서 안타깝게 전멸하기도 하면서 살아남기도 하면서 그곳의 자연과 문화에 적응해나가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내기도 했을 것이다. 우리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어디서 유래했는지 알고 있으며, 몽골과 시베리아의 여러 족속들이 왜 그리 춥고 척박한 지역에 살게 되었는지 알게 되면 안타까운 점이 많은 것이다. 그 후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를 맞이하며 유럽제국들은 새로운 식민지 개척을 위해 많은 이들을 미지의 세계로 보냈다. 10척의 배를 보내면 몇 년 후 2~3척이 살아오더라도 상인들은 큰 이득을 보았고, 국가는 식민지 개척할 기회를 얻었던 것이다. 개발도상국들로서는 이 같은 서구의 정복적인 여행을 좋아할 리가 없는 것이다. 이는 제국주의/식민주의의 한 수단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우리가 현재 생각하는 낭만적인 여행, 즉 바캉스로 불리는 여행은 우리 한국인들로서는 국가경제산업이 발전하고 소득이 크게 증가한 2000년대 이후에나 나타나게 된 것이라고 본다. 제주도 여행보다 더 비싸지 않다 해서 태국, 베트남, 일본 등지로 많이 간다. 어른들만이 아니라 초중등생들도 부모를 따라 해외여행을 하면 출석도 인정해주는 시대이니, 우리 한국이 참 많이 발전한 것이다. 물론 1960~70대 초반 정도에 대학생들 사이에 무전여행이 유행이었다. 이는 정말 큰돈 없이 몸으로 때우며 여행하는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는 옛 교훈이 있었기에 행해지는 것 같았다. 5~10살 위 사촌형들이 극히 제한된 돈으로 무전여행을 하며 서울서부터 제주도까지 걷고 차를 얻어 타며 다녀왔는데, 그 당시에는 제주도의 변소가 돼지우리 위에 있었던 모양이라, 꿀꿀하며 밑에서 바라보는 돼지들 때문에 볼일을 제대로 못보았다고 했다. 한 대학선배는 고물 자전거로 전국을 일주하고 자전거를 분해해서 배에 싣고 제주도까지 다녀왔는데, 밀양 후배네 집에서 피곤해 이불에 오줌을 쌌다던 일화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이 그 당시 젊은이들에게는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새로운 삶의 시각을 얻는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불과 몇 살 차이인 필자는 무전여행 경험이 없다. 소심한 성격 탓이기도 하겠지만 한국경제도 좀 더 성장하여 제대로 기차·버스 요금 내고 식당 밥 사 먹으며 다녔던 여행 기억은 좀 있다. 대구, 마산, 거제도 등을 거쳐 부산으로 가며 타보았던 소형 쾌속여객선이 생각나고, 추운 겨울 눈 덮인 치악산, 고수동굴 등이 생각난다. 안면도 끝자락 한 해수욕장에서 폭풍과 해일로 텐트가 날아가 버렸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 것은 아주 어린 4~5살때 주말 아침이면 모처럼 시간 내신 아버지를 따라 인근 마을을 산책하던 기억이 새로운데, 닭장에서 꼬끼오 울던 장닭과 암탉들, 이슬 맺혀 햇빛에 반짝이던 벼이삭과 호박덩굴들… 모두가 경이롭게 느껴졌었다. 5~6살 때 아버지를 따라갔던 지금은 저수지가 되어 물에 잠긴 할아버지 댁 기억도 난다. 길가 물레방아, 집 뒤 밤나무 숲 등도 생각난다.  

  미국생활을 청산하고 포항에 자리 잡고 28년이 넘어가고 있다. 몸담은 학교가 개발도상국을 돕는 유네스코 유니트윈 국제협력사업에 중점을 두고 있기에 그 일원인 필자도 해외여행을 자주 했었다. 미국에는 식구들이 있으니 자주 다니며, 여행 등의 이유로 일본, 중국, 독일, 프랑스 등에도 몇 차례씩 가보았지만, 개발도상국 사업차 몽골 20번, 베트남 10번, 네팔 10번, 캄보디아 5번, 인도네시아 5번 등 많은 해외여행을 했었다. 1~2주 머무는 경우도 많았고 지역조사, 학자 및 공무원들과 미팅, 심포지엄 개최 등으로 바빴기에 바캉스와 같은 낭만적인 여행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내 삶의 주요 부분이 되었고, 함께 따라 갔던 많은 학생들이 전공과 직업선택에 큰 영향을 주고 있었다. 코비드로 인해 외국에 가지 못했을 때는 주로 경주에서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했는데, 그때 1박 2일 여정 동안 호텔에서 잠자고, 잠시 숲과 호숫가를 거닐면서도 여행의 즐거움을 크게 느꼈던 것 같다. 요즈음 주말이면 절친 미국인 교수부부와 인근 바닷가를 두어시간씩 산책하는데 자주 가는 영일대해변이며 죽천해변이지만 새로운 기분을 주는 중요한 일정이 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새벽부터 맨발로 백사장을 걷고 있고 오후에도 많은 남녀노소 파도와 갈매기를 구경하며 사진도 찍는데, 가까운 곳에서든 먼 곳에서든 생각에 따라 여행의 의미와 가치는 얻어질 수 있을 것 같다.  

영남경제 2023년 1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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