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문제 명쾌히 답할 수 없는 이유
구 자 문 한동대 교수
국제적으로도 국가적으로도 어려움이 겹쳐 있는 요즈음 각 가정의 먹고사는 문제, 즉 직장·수입창출, 주거, 자녀교육 등의 문제해결이 쉽지 않음을 대부분 시민들은 몸소 겪으며 인식하고 있다. 지난 2년여 코로나 팬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주기적으로 닥쳐오는 국내외적인 경기하락 등이 겹쳐 있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지난 5~6년에 걸쳐 많은 주요 경제사회정책들이 자주 바뀌고 있었기에 더욱 어려움이 컸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작은 반도에 비교적 적은 인구를 지니고 있기에 역사적으로 주변 강대국들의 침입도 많았고 경제·사회·문화적 어려움이 말할 수 없이 컸었지만 이렇게 한국인으로 살아남아 지난 50~60년 급속한 성장을 이루어 세계10위 경제력과 IT, 자동차, 조선 등 첨단제조업 분야의 국제적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작은 국토와 부족한 자원을 지닌 국가로서 원유·천연가스를 비롯한 자원을 수입하고 공산품들을 각 나라로 수출해야 하는데, 바로 주변에 중국, 러시아, 일본 등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국제관계와 국방에 힘을 쏟을 수밖에 없고 눈치를 없는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어려움은 시민생활에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는 주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주택은 인간 삶의 기본필수요건인데, 어느 도시화된 사회에서든 ‘살만한 거처(Decent Housing) 마련이 쉽지 않다. 이는 선진 된 북아메리카나 유럽의 도시들에서도 그러한데, 소도시에서는 문제가 적은 편이지만 대도시에서는 주택중간가격이 서울 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비싸고, 젊은이들이나 저소득층들이 주거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 주택문제가 ‘Affordability(주택가격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로 집약되고 있다. 우리 한국에서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도시들이나 인구 100만 이상의 지방 대도시들의 경우 주택문제가 심각하다, 하지만 10만~50만 혹은 50만~100만 중간크기 도시들의 경우에도 문제가 적지 않다. 한국의 경우에는 Affordability 는 물론이고 주택의 질과 연관된 정성적인 문제 또한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얼마전 서울의 가장 화려한 도심이라는 ‘강남’의 물난리 여파로 알게 되었지만, 서울의 5%에 이르는 가구들이 영세한 건물의 반지하에 거주한다는 것이다. 물론 옥탑방을 포함한 낡고 협소한 주택에 거주하는 가구들을 포함하면 그 비율이 수십퍼센트에 이를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서울을 위시한 대도시에서 주택가격이 2배에 이를 정도로 급격히 상승했는데, 그 이유는 다양할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가 주택가격급등 및 가수요를 막기 위해 1~2년 사이에 양도소득세·종합부동산세 인상, 주택융자제한 등 관련 정책들이 국민담론 형성기회 크게 없이 갈팡질팡하듯 수십 차례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보며, 이로 인해 주택경기 위축 및 가격상승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본다.
이제 정권이 바뀌고 좀 더 시장친화적인 정책을 구사하고자 정부가 노력하고 있지만 뒤바뀐 것들을 하루아침에 바로 잡지는 못하고 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인플레이션이 심각해져서, 주택경기 자체의 회복이 쉽지 않은 것이다. 많은 이들이 주택시장 활성화를 바라고 있고 이를 위해 좀 과도하다고 할 수 있고 너무 자주 바뀌어 온 부동산 관련 세제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또한 적지 않은 이들이 이를 바라지 않는 듯한데, 주택가격이 더 오를 수 있고, 소득과 주택시장의 양극화 염려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정치가들이 이러한 이유만을 정책개정의 이유로 삼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 국가로서 시장경제의 원활한 작동을 제1원칙으로 하며 정부의 관여는 되도록 줄이는 것이다. 물론 정부가 ‘원활한 시장작동’을 위해, ‘필터링’이 좀 더 잘 작동하게 하기 위해 관여를 하게 되고, ‘시장경제로부터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 장애인, 노령층 등을 위해 정부가 직접 의료 및 주택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과 관여의 정도는 ‘이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공산주의·사회주의에서는 정부가 시장에 더욱 깊이 관여하며 주택을 직접 생산·분배하고자 하며, 주택은 ‘경제재’가 아닌 ‘사회재’로서 개인이 이득을 내면 않되는 것이다. 하지만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에 눌려 사라져가고 있으며, 과거 공산주의 국가들은 자본주의를 크게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러시아며 중국을 ‘국가자본주의’ 내지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부르기도 하지만…
필자는 여기서 크게 무엇이 옳고 그른지 명쾌히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한 나라의 정당들의 정강이 겉모습 내지 겉으로의 주장이 어떠하건 이렇게 다를 수 있음을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5년 동안 모든 것을 바꾸지 않으면 않될 정도로 이념 차이가 큰 것이 염려되는 것이다. 본 칼럼의 제목은 주택시장 어찌 될 것이냐에서 출발했는데, 그 대답에 명쾌히 답할 수 있는 정치가는 우리나라에 없다고 보며, 좀 더 근원적인 이념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논쟁이 지속될 것이라고 본다. 우리 국민들도 좀 더 자기에 맞고 시대에 맞는 이념을 택해야 하고, 한 정당이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정책들이 가시적인 성과를 이룰 때까지 어느 정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면 무엇도 이룰 수 없음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라고 본다. 작금의 세계정세, 경제산업분야의 무한경쟁과 국방력을 바탕으로한 힘의 다툼 하에서 우리가 작은 국토에 작은 이슈에 크게 흔들리는 나라임을 감안한다면, 피땀 흘려 이루어 낸 우리의 번영이 순식간에 무너질 수도 있음을 염려해야 할 때라고 본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택이 국가적으로 가장 중요한 정책의 근간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주택은 한 나라의 근간 이념을 가장 잘 나타내는 상징적인 요소 중 하나로서 제대로 된 길을 찾아가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본다.
영남경제 2022년 8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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