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단적 우울함에서 언제나 벗어나게 될까?

이 집단적 우울함에서 언제나 벗어나게 될까?

구 자 문 한동대 교수
  요즈음 하루하루는 우울함의 연속이다. 내 자신만의 우울함이라기 보다는 사회 전체의 집단적 우울함이라고 보아진다. 아무래도 코로나19로 인한 육체적·심리적 억압이 가장 큰 요인일 것으로 보아지며, 그와 연관된 경제사회문제들이 또 다른 요인들일 것이다. 우리 소시민들의 가장 큰 문제는 먹고사는 경제적인 것인데, 동네의 수없이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았고 닫기 일보 직전인 경우가 많다.

  이외에도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요인들은 다양할 수 있지만, 요즈음 공통적으로 크게 염려되는 것은 정치사회 관련 사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파생된 팬데믹상황에서 전염병 전염방지·극복을 이유로 관련 국가정책들이 강 기조로 바뀌고 있고, 이것이 사회적 집회, 교회출석 및 소모임, 경제활동 등에 영향이 클 수밖에 없고, 또한 이와 겹쳐서 정부의 정치경제 관련 정책방향이 과거와 다르게 다소 급격히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필자의 직업이 이러한 사회적인 이슈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성격을 지녔기에 그리고 아직 직장이 있고 수입이 어느 정도 있기에 대범하게 거시적인 문제들을 염려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날그날 장사하고 막일을 해서 먹고사는 많은 소시민들은 이러한 거시적인 문제들을 생각할 틈도 없이 코로나19로 인한 사업의 어려움 때문에 먹고살고, 애들 교육 등의 어려움으로 매우 힘들 것이다.

  아직 아이들이 제대로 독립 못한 필자로서도 경제적인 걱정이 없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이들이 미국에 머무르고 있기에 코로나19와 그 여파가 더욱 걱정이 되는 것이다. 가장 발전된 강대국인 미국에서 좀 안정되어 간다는 지금도 하루 3~4만명의 코로나19 발병자가 생기고 20만명 가까이 사망했으며 확진자가 600만명이 넘는다. 아이들이 있는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지난 몇 달째 경제사회행위가 금지되어 있다. 가게를 열 수 없고 교회도 갈 수 없다. 식품구매차 마트에 가도 줄 세워 몇 명씩만 들여보낸다. 당연히 마스크를 써야 한다. 이러한 불편,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고 이로 인한 경제적인 불황이 문제인 것이다.  

  필자에게는 아이가 둘인데, 코로나 팬데믹상황을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사회문화활동이 크게 위축되었다 해도 젊은이들의 문화는 좀 다르다 할 수 있기에 전염가능성 등 걱정이 많다. 지금 미국에서는 코로나19 여파로 직장잡기 어렵고, 집값을 제대로 못내는 이들도 많고, 셋집이 비어도 새로 들어올 세입자가 없는 형편이다. 다른 때라면 직업 찾아 좋은 학군 찾아 이사를 오가는데, 지금은 움직일 생각들을 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게 걱정이다.

  우리나라도 올 초에는 무더기 발병이 생기고 적지 않은 사망자를 내기도 했으나 그 후로는 비교적 잘 조정되는 편이라서 세계의 모범방역국으로 우리 정부의 업무수행이 성공적이었음을 칭찬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요즈음 정부도 국민들도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아니 될 정도로 ‘언제 또 폭발적인 전염이 시작될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 속에 있다. 지속적으로 변신하는 이 바이러스의 백신이 언제 발명·생산되고, 언제 과거 같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누구도 장담 못하고 있다. 동네에는 빈 가게들이 수두룩하고 더 늘어만 간다. 손님이 없으니 버텨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지역의 불황은 진작 시작된 것이기도 하다. 불황에 지진이 나고, 코로나19사태가 터지고, 부동산 및 기업 관련 정책들까지 다소 크게 변하며 어려움이 겹친 것이다.  

  그 전에 발생한 세월호 전복으로 많은 생명들, 특히 수학여행가던 어린 학생들이 수없이 희생되고, 선장은 도망치고 구조마저 제대로 되지 않아 온 국민이 분노했었던 일이 있었다. 필자의 경우도 이로 인해 2~3년은 우울함 속에 있었던 것 같다. 그 당시 지역의 고교며 대학 동창회들도 거의들 만나지 않아 부실화된 상황을 목격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대통령이 구속되고, 그 여파로 지금 정부가 들어서게 된 것인데, 생각해보면 우리 한국같이 이러한 정치사회적 변화가 다이나믹하게 벌어지는 나라도 없을 것 같다. 국민들도 이성적이라기보다는 감성적인 면이 강하고, 장기적인 결과보다는 단기적인 상황과 기분이 중요한 나라며 국민임을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어서 빨리 코로나19백신이 발명되고 모든 국민들이 접종하고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 갔으면 좋겠다. AI며 Bio발전 등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첨단 문명을 너무나 믿고 있었음도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첨단문명을 구가하는 많이 배우고 아는 듯한 우리 현대인들이 이러한 질병 하나에 훅 무너져 버리니 우울해지는 것이다. 자꾸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산위로 밀어 올리기를 반복하는 희랍신화에 등장하는 \’시지포스의 고역\’에 우리 인간의 삶을 역설적으로 위대하다고 비유하는 이들도 있고, 우리 인간이 사회의 한 부분으로 기계부품같이 가동될 뿐이라고 평가절하하는 이들도 있는 터이나, 두 주장 모두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할 뿐이다. 우리는 우선 이러한 어려움이 닥치고 이를 극복해 나가야 할 이유와 능력이 우리 사회에 분명 내재되어 있음을 믿어야 할 것이다. 또한 우울함에서 벗어나 정확한 현황파악을 바탕으로 그 원인규명과 해결방안을 찾아가며 당면한 어려움들을 극복해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영남경제 2020년 9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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