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0년대의 인간과 사회는 어떻게 변할까?
구 자 문 한동대 명예교수
AI의 빠른 발전으로 2030년대로 접어들면 물품생산, 도시 및 지역 인프라, 정보통신 및 교통기관 등이 크게 바뀌게 되어 우리 인간사회가 크게 바뀔 것이라고 한다. 수 많은 AI로봇이 공장에서는 조립 노동자로, 회사에서는 업무 전담 비서로, 그리고 가정에서는 가정부 및 동반자로 큰 역할을 하면서 사회 전반의 생산성이 크게 올라가기에 사람들은 여가가 크게 늘어나고 대부분의 직업들도 지금과는 달리, 공장에서는 매니저/의사결정자,예술가, 문필가, 철학자 등이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또한 여러 미래 예측가들은 이때는 대부분 상품가격들이 크게 떨어지고 풍부히 공급되므로 화폐의 역할 없어질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발전이 2040년쯤 이루어져 세상은 모든 이가 풍요를 누리는 파라다이스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한다. 하지만 파라다이스로의 변화는 급격히 진행된다기보다 점진적/파편적으로 진행될 것이며, 각 단계마다 큰 사회적 진통을 겪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이들도 있다. 이를 3단계로 나누어 보면, 1단계 기술적 풍요기(2030~2040년대): AI와 로봇이 노동을 대체하며 식량, 에너지, 의료 등의 비용이 획기적으로 낮아진다. 2단계 제도적 과도기(2050~2070년대): 세계적으로 모든 이에게 기본 소득이 주어지고, 일자리 잃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원한다면 새로운 직업/역할이 주어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가/지역, 정치/자본권력, 종교/신념 등 사이에 극심한 갈등과 전쟁이 발생할 수 있다. 3단계 글로벌 파라다이스(2080년 이후 ~ 22세기): 국가, 종교, 이데올로기 간의 갈등이 종식되고, 전 지구적 자원 분배 시스템을 AI가 공정하게 관리하며 비로소 완성될 것이라고 한다.
한편 모두에게 적용되는 진정한 파라다이스가 현재처럼 빈부격차 심하고, 종교/이념이 다름을 포함한 이해관계로 인해 국가/지역 간의 다툼과 전쟁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 2040년이건 2080년이건 AI가 발전한다 한들 해결되겠느냐는 의심은 여전히 존재한다. 모든 인류가 그러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해도 이를 이루는데 수백년이 더 걸릴지도 모르는 것이다. AI가 인간을 뛰어넘어 자체적인 판단과 기술로 인간사회를 제어할 것이라고 예측하고들 있지만, 최소한 반세기간은 AI로봇이 인간에 의해 콘트롤 될 수 있을 것이므로 이를 통제하는 소수의 기업이나 독재 권력이 악용할 경우 낙원이 아닌 통제 사회(디스토피아)가 될 위험이 있다. 파라다이스로 가는 길의 진짜 걸림돌은 기술의 부족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사회제도이다. AI가 만든 막대한 부를 상위 1%가 독점한다면 다수의 삶은 큰 고통이 될 수 있음이 당연하다. 한편 파라다이스는 서구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 기독교인, 무슬림 등에 따라 혹은 소득수준이나 인종에 따라 정의가 다를 수 있다. AI가 어느 한쪽의 가치만 대변할 경우 문화적 학살이 일어날 수 있다. AI/로봇 구동에는 막대한 전력과 데이터센터가 필수적이나, 개발도상국은 전기가 부족하여 그 혜택에서 소외될 수 있다. 서구권 중심의 AI 가치관에 반발하여 중동, 중국 등은 자신들의 종교적 규범과 정치체제에 맞춘 ‘파편화된 AI’를 구축할 수도 있다.
아무튼 미래 예측가들에 따르면 2030년대를 지나 2040년대에 이르면 AI로봇이 제조, 물류, 가사 노동 등을 거의 대체하며 AI가 인간을 크게 뛰어넘어 자가증식 발전하기에 인류의 삶이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한다. 낙관론자들은 AI가 이성적/합리적/인정적으로 세상을 조정하기에 이때 우리 인간은 진정한 자아실현과 건강한 장수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난 인류 역사상 가장 창조적이고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는 창작과 유희의 시대로서 생계를 위한 억지 노동이 사라지고 인간은 예술, 철학, 스포츠, 과학적 탐구 등 순수한 열정을 위한 활동에 몰두할 수 있을 것이다. AI 기반의 맞춤형 의료와 노화 역행 기술로 질병 없이 100세를 넘어 150세 이상 청년의 몸으로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출퇴근, 직장 내 갈등, 경제적 불안 등이 사라지며 현대인 질병의 근원인 스트레스가 전멸할 것이다. 그러나 비관론자들에 따르면 인간은 무기력증과 존재 이유의 상실이 큰 해로 다가올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노동이 사라진 삶이 인간을 정신적으로 파멸시킬 것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오랫동안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기여하는 노동’을 통해 자아존중감을 얻었을 것인데, AI가 모든 일을 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무력감과 쓸모없다는 감정에 시달릴 수도 있다고 본다. 목적의식이 사라진 긴 시간을 채우기 위해 가상현실(VR), 마약, 자극적인 오락 등 쾌락주의에 빠져 육체와 정신이 빠르게 황폐해질 수 있다고 본다. 이 말은 기술 덕분에 육체는 오래 살지만, 매일 아침 눈을 떠야 할 이유가 없는 ‘살아있는 유령’ 같은 삶이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세상에서 인간이 행복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분명 사회적·개인적 차원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보다. “일하지 않는 자는 가치 없다”는 산업화 시대의 도덕관 보다는 존재 자체로 존중받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가족, 종교 내지 동호회 단체, 다양한 가상 커뮤니티 등 타인과 깊게 연결되고 교감하는 활동이 삶의 새로운 중심축이 되어야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편으로 더욱 중요해지는 것은 우리 인간이 일부라도 AI를 조정하고 협상할 만한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당연히 AI/로봇 제작 및 프로그래밍 관련 기술능력을 지녀야 하며, 전반적인 정치경제사회를 크게 보고 이해하며 올바른 정책방향을 제시할만한 능력 등을 지닌 그룹들이 각 사회에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좀 진부하다 여길지는 모르지만 자칫하면 1949년 조지 오웰이 쓴 ‘1984’의 내용과 비슷하게 AI와 작당한 소수의 귀족과 노예화된 무력한 인간그룹으로 나뉘어질 수 있음도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대경일보 2026년 9월 27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