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의 역사유적 이야기
구 자 문 한동대 교수
포항지역에 인간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원시무문토기(原始無文土器) 유적이 동해안을 따라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BC6000∼4000년경 신석기시대로 믿어지지만, 이 시대의 유물/유적이 발굴된 바 없어 보통 청동기시대부터 이 지역에 인간이 살기 시작했다고 가정하고 있다. 그런데 포항시 장기면 산서리 새터 장기천 상류에서 후기구석기시대 석기제작용 몸돌 등이 발견되었다는데, 아직은 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선사시대 인류들이 남겨 놓은 많은 유적 중 가장 특징 있는 것이 고인돌이다. 포항지역에서 수많은 고인돌과 선돌이 조사됐으며 돌도끼, 반달돌칼, 가락바퀴 등 많은 유물들이 발견되는 것으로 볼 때 삼국시대를 거쳐 통일신라의 찬란한 문화가 꽃피기 훨씬 이전인 BC 2000년~1000년경 포항지역에는 큰 규모의 고대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다고 보아진다. 포항에 분포한 거석들을 살펴보면 지석묘, 암각화 및 성혈바위 등 총 335기가 산재해 있다. 기계면 114, 흥해읍 92, 죽장면 8, 송라면 11, 청하면 13, 기북면 3, 신광면 6, 연일읍 11, 오천읍 2, 대송면 1, 동해면 33, 호미곶면 15, 구룡포읍 23, 장기면 3개소로서 고인돌 문화축제를 여는 강화도보다 많다고 한다. 또한 각각 고인돌의 특성들이 매우 뚜렷한데, 북방식이 아니라 남방식이나 개석식 고인돌들이 많다.
포항지역에서는 암각화가 발굴되는 경우가 많은데, 칠포리와 신흥리에는 해변 인근 3곳에 암각화 유적이 있다. 칠포리 곤륜산에서 발견된 암각화는 1989년부터 1994년까지 계속해서 추가로 발견되었다. 이곳 암각화는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문양을 그리고 있는데, 방패형 혹은 인면형 암각화라고 불린다. 성혈이 새겨진 고인돌도 같은 곳에 있다. 성혈을 판 뒤 골을 내어 연결했다. 이는 별자리, 혹은 고인돌 축조 집단의 규모를 나타내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신흥리에서 발견된 오줌바위암각화에는 윷판형, 고누판, 그리고 기하학적인 다양한 모양들이 그려져 있는데, 특히 별자리들이 많이 그려져 있어 석기시대의 천문관측유적으로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구룡포 삼정리에 살았던 청동기시대 사람들은 그물을 이용해 물고기를 잡았고 지금도 삼정리 어민들은 같은 바다에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잡으며 살아간다. 2002년 구룡포에서 호미곶까지 해안도로를 내면서 삼정리/석병리 고분군에 대한 발굴조사를 했고, 어업 관련 유물이 151점이 발굴됐는데, 대량으로 물고기를 어획한 ‘토제어망추(土製漁網墜)’도 그중 하나다. 어망추는 그물 끝에 달아서 그물이 가라앉게 만드는 기구이다.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에는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고래잡이 했던 그림들이 남아 있고, 구룡포 삼정리에도 청동기시대 물고기 형상으로 추정되는 암각화가 남아 있다.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물고기를 말려 먹기도 했을 것이다. 고래사냥으로 고래고기를 먹었던 청동기인들이니 과메기인들 못 만들어 먹었을 까닭이 없으므로 과메기의 역사가 3,000년에 이른다는 주장을 하는 분들도 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는 진한의 12소국의 명칭이 나오는데, 12소국 중 영일만 일대에 근기국이 있었다고 한다. 근기국은 신라의 건국(BC 57) 이전인 기원전 2세기 초에서 1세기 말경, 영일만 일대에 소국을 형성하고 군림했었다. 또한 흥해지역에 다벌국, 기계지역에 초팔국 등 12국으로 표현되지 않은 소국들도 있었다고 한다. 고대부터 많은 사람들이 살았던 포항은 청동기시대에 이미 지배계급이 존재하고 소국이 형성되어 있었으며, 이들 소국들이 모여 연맹체를 형성하고, 중앙 집권적 고대 국가를 형성했던 것이다. 물론 정확한 역사는 아직 베일에 쌓여 있다
동여진 해적의 약탈이 잦자 고려 선종(재위 1083~1094년)때 조정은 동해안에 줄지어 성곽을 쌓는다. 이때 흥해고을에도 읍성을 쌓는다. 고려 말에는 왜구의 약탈까지 더해졌으므로, 고려 공양왕 1년(1389년) 흥해읍성은 방어력이 강한 석성(石城)으로 개축된다. 남/북미질부성은 이때부터 모성(母城)인 흥해읍성의 자성(子城)이 되는데, 해안을 넘나드는 왜구의 약탈 때문에 북쪽 해안가 북미질부성은 조선 중기까지 중요한 방어기능을 수행했다. 흥해읍성은 포항시 북구 흥해읍 성내리에 있으며 포항 장기읍성이나 연일읍성 등 주변 성(城)들이 산성인 반면 흥해읍성은 도심 한가운데 지어진 성으로 지역을 치정하기 위한 관아가 있었다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가 크다. 이 성곽은 지난 일제강점기에 포항축항공사를 핑계로 성곽을 뜯어 항만 매립에 사용하여 지금은 성곽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실정이다.
곡강천은 서쪽에서 출발해 북쪽으로 꺾어지다가 다시 동쪽으로 굽이쳐 동해로 빠져든다. 곡강이란 이름에 걸 맞는 흐름이다. 하천이 굽이치며 깎아낸 기암절벽이 50여m 이어진다. 왜구들이 이 하천을 타고 성곽을 공격하기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이 암벽은 천혜의 자연 해자(垓子) 곡강천과 함께 천혜의 방어망이다. 인근 해안에는 해안을 감시하던 지을산(知乙山)과 오산(烏山) 봉수가 있다. 그러나 조선 말기 북미질부성 또한 전국 다른 성곽처럼 방어기능이 사라지고, 마침내 폐성의 길을 걸었으며 인적이 드문 유적이 되고 말았다. 현재 남미질부성은 인근 아파트 단지 구획정리로 서북쪽이 잘려 나갔다. 나머지 서·남·북쪽만 그나마 형체가 남아 있다.
대경일보 2023년 4월 9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