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개발 딜레마

지속가능한 개발 딜레마

구 자 문 한동대 교수
  지구온난화를 중심으로 환경문제가 세계적인 이슈가 되어 있다. 각 도시와 지역별로는 대기질과 수질오염을 중심으로한 환경오염 심화로 인한 갖가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고, 국제적으로는 지구온난화를 필두로 사막화, 황사발생, 물부족, 대기 및 수질오염 등 문제들이 커지고 있으며, 이들을 해결은 못하더라도 속도를 늦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이는 환경친화적인 개발 내지 지속가능한 개발의 실천이다. 환경이냐, 개발이냐? 이 말은 환경보존과 경제개발의 딜레마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때 경제개발론자들은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 경제개발은 환경부담 없이 이루어지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개발을 추진 안할 수도 없고 환경오염을 줄여야 하니 딜레마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환경을 희생할 수밖에 없다’라기 보다 ‘환경도 살리고 경제개발도 제대로 추진하자’기 위햐 고민해야 할 것이므로, 개발을 하되, 한정된 자연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해 진정 환경친화적인 개발을 해나가자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발전(持續 可能한 發展) 또는 지속 가능한 개발(Sustainable Development)은 환경을 보호하고 빈곤을 구제하며, 성장을 이유로 자연자원을 파괴하지 않는 경제성장을 창출하기 위한 방법들의 집합을 의미한다. 지속가능개발은 미래세대가 그들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기반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현세대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발전이라고 정의하는데, 이는 현세대의 필요를 충족하되 미래세대의 가능성을 파괴하지 않고, 인간사회가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자유롭게 발전의 기회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개념이 공식적으로 처음 알려진 것은 1987년 개최된 세계환경개발위원회에서 제시된 ‘우리들 공동의 미래(브룬트란트 보고서)’를 통해서였다.

  이후 지속가능발전은 오랜 기간 다양한 논의를 통해 환경뿐 아니라 경제사회분야 전체의 지속가능성 유지와 관련된 것으로 폭넓게 해석되는 추세이다. 인류의 생산과 소비방식에 대한 문제의식은 산업혁명 이후부터 지속되어 오다 1950년대 대형 환경사고들로 인해 그 심각성이 대두되었고 산업활동이 인간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초반에는 이와 관련된 다양한 저술이 출간되었다. 생태계 파괴의 구체적인 과정을 보여주거나, 지구 전체를 하나의 생태계로 보고 그 안에서 인간의 활동방식이 적절한지에 대해 검토하거나, 인간사회를 중심으로 경제활동과 여타 영역과의 관계에서 오는 문제를 조명함으로써 인간사회와 생태계, 인간사회와 경제활동의 연계성을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우리나라만 해도 오래전부터 ‘지방의제21’을 제정하고 이를 따르기 위해 많은 애를 썼었다. 지금은 이러한 활동이 ‘지방의제21’을 따른다기 보다 각자 생활과 사업 진행하에 지속가능한 개발을 실현하기 위해 애쓴다고 할 수 있다. 유엔에서도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 ‘밀레니언 골’의 일부를 지속가능 개발을 위해 목표로 잡아 놓았었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2030’에는 이를 크게 늘려 놓아 빈곤퇴치, 남여차별 폐지 등 17개 목표에 169개 실행분야를 포함하게 되어 우리 인간사회가 추진하는 대부분 일들이 지속가능한 개발의 범주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지속가능발전은 개념에 대한 일관성 있는 설명이 아직 부족한 실정이며 포괄성을 지닌 개념의 특성상 정치적 논리 혹은 주류에 의해서 오도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다.

  버먼(Berman)은 지속가능발전 개념의 오용을 단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포괄성으로 규정한다. 지속가능발전이라는 개념이 지나치게 광범위하여 모든 항목이 이 개념 하에 포함될 수 있는데, 이는 지속가능발전의 구체적인 실천적 방안에 대한 토대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맹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요즈음 우리는 ’지속가능’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앵글만(Engelman)은 지속가능과잉 현상이 오히려 지속가능발전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며 ‘지속가능’이라는 형용사가 본래의 의미와 달리 ‘다른 방도 보다는 환경에 좀 더 유익한’과 같은 의미로 변형되어서 쓰인다고 지적한다. 물론 그는 생태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지속가능한 개발도 개발이므로 좀 더 생태적인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맥락에서 이야기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사회는 환경과 개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데 성공해야 한다고 믿는데, 문제는 이 두 가지가 상반되어 딜레마적인 상황을 초래하는 것이다. 어느 한쪽을 택하기도 중간을 택하기도 그 결정이 쉽지 않은 것이다. 예를 들어, 낙후된 전남 해안 개발이 활성화되자 도청과 도민들은 대개 좋아하지만, 환경보전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크게 높아져서, 지역개발이 제대로 추진되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고, 국회에 상정된 연안권개발특별법을 둘러싼 공방이 가열되면서 개발논리와 환경보전 주장이 부딪쳐 파열음이 일으키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해안 풍력발전, 인공섬 산업용지 조성, SRF입지 및 운영 등 포항에도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물먹고 물마시며 청산에서 살아야 함’이 궁극적인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 그러한 삶이 현대 도시에서, 글로벌 경쟁력 하에 살아남기 위해 가능이나 한 것인가? 지속가능한 개발을 어느 정도로 규정해야 할 것인지가 쉽지 않은 과제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추진해 나가야 한다. 어렵고 시간이 들더라도 국제적 협정과 국내외 사례들을 참조하면서 민관산학 담론을 통해 의회민주주의적 결정과 동의과정을 통해 우리에 맞는 대안을 결정해나가야 할 것이다.    

대경일보 2023년 8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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