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에 제2의 이스라엘 건국?

극동에 제2의 이스라엘 건국?

구 자 문 한동대 교수
  유대인은 \’유대지역의 사람\’이라는 뜻을 지니는 민족명이다. 한자로는 유태인(猶太人)이라고도 한다. 이스라엘인(Islaelite)은 좀 더 넓은 의미의 민족명인데, 요즈음 유대인이라는 말보다 더 쓰이며, 현대 이스라엘국의 국민을 의미하기도 한다. 유대인은 기원전 10세기부터 기원전 6세기까지 존속했던 국가인 유다왕국의 후손으로 간주되며 이스라엘인의 한 지파였으나 후에 이 명칭 자체도 이스라엘인을 함께 지칭하고 있다고 한다. 유대인 집단 내에서 스스로를 다른 민족과 구분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준은 다름 아닌 유대교 신자 여부이다. 유대인들 간에 피부색 같은 특징으로 인한 차별이나 배척이 없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유대교로 개종하는 순간 민족이나 혈통 같은 건 무시하고 \’우리는 한 조상을 모시는 가족\’이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한다. 2천년 이상 지속된 디아스포라를 통해 수많은 나라에 흩어져서 살다 보니 유대교의 전통을 지키며 종교의식과 윤리규범에 따라 살면 유대인이라고 인정해주는 것으로 보아진다.

  시온주의 운동에 뿌리를 둔 이스라엘은 건국할 때부터 논란을 불렀다. 오스트리아 언론인 테오도르 헤르츨은 1897년 8월 29일 스위스 바젤에서 최초의 세계시온주의대회를 소집하고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을 건국한다는 계획을 세운다. 시온주의는 전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시온으로 돌아가 국가를 세우자는 운동이다. 이후 유럽, 러시아 등에서 핍박받던 많은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땅으로 본격 이주하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유대인들에게 건국의 기회를 제공했다. 팔레스타인을 위임통치하던 영국이 유대인과 팔레스인들에게 각각 모순된 약속을 한 점이 분쟁의 근원으로 작용했다. ‘벨푸어 선언’은 1차 세계대전 중인 1917년 11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을 위한 민족국가 건립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영국 정부의 입장이 담긴 서한문 내용으로, 당시 영국 외무장관인 아서 벨푸어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 선언 이후 팔레스타인 영토로 이주한 유대인 수가 크게 늘었다.

  영국은 유대인의 힘을 활용해 미국을 참전시키려고 벨푸어 선언을 내놨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는 영국이 1915년 아랍 민족에게 약속한 \’맥마흔 선언\’과는 상충된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 아랍 민족에게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보장하기로 한 선언이다. 결국 유엔은 1947년 11월 팔레스타인을 분할해 아랍국가와 유대인 국가를 각각 세우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스라엘은 이 결의안을 받아들였지만, 아랍인들은 거부했다. 결의안에 따르면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유대인이 소유한 땅은 전체 토지의 약 6%에 불과했지만 분할 후 유대인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56%를 차지하게 된다. 아랍인들 입장에서 유엔 분할안은 매우 불평등했다. 유엔의 분할안으로 이스라엘 땅으로 규정된 지역에서도 아랍인들은 떠나지 않았고 이스라엘은 군사작전 등으로 아랍인들을 추방하는 작업을 벌였다.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4일 아랍권의 반대에도 텔아비브에서 건국을 선포하면서 쐐기를 박았다. 이스라엘이 건국할 때 팔레스타인인 약 70만명이 다른 곳으로 쫓겨났고 이스라엘의 영토확장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난민은 530만명으로 늘어났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현재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중동의 대표적인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그런데 아직도 러시아 극동 시베리아에 유대인 자치주가 남아 있다고 한다. 이 주에 유대인들의 인구가 전체의 1%에 불과한 실패한 유대인 자치주라고 보아지는데, 2016년 알렉산드르 레빈탈 유대인 자치주 지사는 \’반유대주의 시달리는 유럽 유대인들을 수용할 준비\’가 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면적은 경남북도를 합친 정도이며, 이스라엘 면적의 1.5배이다. 이 유대인자치주는 1948년 5월 중동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전인 1934년 5월에 수립되었다. 이 자치주는 스탈린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그의 첫 번째 제안은 이미 확립된 유대인 공동체를 가지고 있었던 크리미아에 소련 유대인들을 정착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이미 그 지역 타타르 족,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 정착민 등과의 관계가 험난했기 때문에 폐기되었다. 대신 소련은 시베리아 남동쪽에 중국의 하얼빈 인근에 위치한 스위스 크기의 작은 땅을 결정했다. 스탈린은 시베리아 지역에 젖과 꿀이 흐르는 유대인의 땅을 약속했다. 그러나 그 곳은 젖과 꿀이 흐르지 않았다. 대체로 늪지대로 이루어져 있고, 혹독한 자연조건과 기후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 이들은 나라를 잃고 그곳에 정착해있던 우리 고려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건국된 후 유대인들이 이곳에 올 이유는 크게 없어졌고, 대부분 미국이나 이스라엘로 떠나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중동과 동아시아 지역에서 한국의 중요한 협력 파트너 중 하나이며, 전통적인 우방이다. 하지만 표면적인 부분에서는 한국과 이스라엘 관계는 이슬람권 국가들 때문에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아랍국가 및 이슬람권은 석유나 가스 같은 귀중한 자원에 의존하는 한국으로서는 눈치를 봐야 하며, 14억이 넘는 무슬림 시장권에 대하여 한국기업들도 중요 순위에 두고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스라엘도 한국이 왜 이런 선택을 하는지 알고 있고, 한국에서도 많은 아랍권 국가들이나 이란이 경제적으로는 한국과 교류하지만, 뒤로는 북한과 협력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양국 관계는 별 탈 없이 우방으로 지속되고 있다.
  요즈음 세계적인 경제력과 정치력을 갖춘 유대인들이 시베리아의 유대인 자치구를 부활하고 싶어한다는 루머가 있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중국인들의 국경침범 및 점유를 두려워하는 러시아도 이 극동 시베리아 지역의 발전 계기를 만들기 위해 이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한국과 협력하여 이곳을 제2의 이스라엘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중국과 각을 세우고 있는 영국도 이를 돕겠다는 루머도 있으며, 이럴 경우 역시 중국팽창을 저지의 큰 축이자 유대인들이 큰 힘을 지니고 있는 미국이 반대할 리는 없는 것이다. 비민주적인 행태를 일삼는 중국의 팽창에 맞서는 미주 및 유럽국가들의 노력과 맞물려 이 제2의 이스라엘 사업이 이루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통해 극동 시베리아가 크게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들이 결실을 맺게되면 러시아가 선호하는 우리 한국기업들이 SOC, 주택 등 지역개발에 참여할 기회가 있겠지만, 그 성공 여부를 떠나서 이러한 움직임이 우리 한국에는 큰 도움이 되는 것이며, 환동해권 활성화에 매진하려는 경북도에도 큰 힘이 될 것이다.    
    
대경일보 2022년 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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